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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Dec 06. 2021

맘 곳간,  사랑으로 빵빵하게!

어무이,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골목골목으로 이어진 조용하고 감성 돋는 작은 마을.

큰 다리가 놓이고 찻길이 생기면서 들쑤져지기 시작했다. 도로와 물렸으면 보상받아 이사 나와 버릴 텐데, 어무이 댁 옆 옆집부터 도로와 상관없게 되어버린 거.


몇 년에 걸쳐 쿵쾅대는 공사로 노후된 집에 틈만 더 생기고 벌어지며 여기저기 삐걱대기만 할 뿐. 피해 보상이 턱없이 작아 그 돈으로 완전 수리를 하기도, 직접 고쳐주는 걸 택할 경우 겉 부분만 때우는 식이라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한 부분이라 결정을 못 내린 상태라 김장을 도우러 간 건지, 도로공사 관계자와 협상을 하러 간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아들 둘을 붙들고 젊은 니네들이 담당 직원을 만나 얘기해 보라고 하셨지만, 어무이께서 원하는 부분과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어무이댁은 진해 시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 위의 집이다. 큰 도로에서 걸어 올라가려면 조금 걸어야 하지만, 차를 타고 다녀 잘 몰랐다. 높다란 언덕 위에 있었다는 것을.

집 뒤로 다리가 놓이고 차들이 오가는 걸 보고서야 높은 언덕에 집이 있었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는.


집 아래는 진해고가 내려다보인다. 진고를 나온 그는 담벼락만 넘으면 학교였을 텐데, 정문을 통과한 날이 있기나 할까. 3년 동안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곳인데도 지름길을 찾기 위한 담벼락을 오르내리는 일부터 얽히고설킨 일들이 좀 많았을까.


골목이 살아 숨 쉬며 앞산 뒷산 옆 산 저 멀리 탑산과 진해 앞바다까지 내려다보이는 곳.

밤에는 달과 별이 초롱 거리는 작은 마을. 이곳에 어무이 텃밭도 있었다.

김장 준비를 마친 어무이. 일 년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지점인 것이다. 김장이 끝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노인정에 잠깐 가셨을 때 홀로 텃밭을 찾았다.

전날 출산을 마친 듯한 배추와 무. 배추가 벗어놓은 자궁과 댕강 자른 탯줄을 보는 듯 아직 뜨듯한 출산의 희열이 남아있는 듯 어무이의 온기가  감돌았다.


여남은 몇 몇 배추들이 출산의 고통을 치르지 않았음에 야호 소리를 내며 방글거리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겪을 아픔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 이럴 땐 덜 먹고 덜 자란 게 최고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우쭈쭈 젖 먹듯 양분을 쭉쭉 빨아올리며 몸 덩치 뽐내던 옆 친구들. 댕강댕강 잘려 나갈 때 기쁨의 환호인지 슬픔의 아픔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 듣는 이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고  아예 들리지 않는 외침들을.


“올 한 해 김장해주고 내년 한 해 더 해 줄랑가 모르것다.”

울 어무이 해마다 이 말씀하시는데, 점점 힘에 부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듯하다.

“퇴비 남은 것만 쓰고 나면 그만 할란다.”

그러면서 퇴비를 창고에 쟁여놓을 궁리를 하고 계시니.


'올해 한 걸로 끝내시고 그만하세요.' 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있다. 어무이 힘드실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 그만 하시란 말이 나오고도 남음이다. 어무이께서 두 아들네 챙겨주는 낙이 크다는 것도 알고 생명을 키우는 재미를 누구보다 좋아하며 존재가치를 느끼며 찾으시는 곳.


작은 생명이 커가는 환희를 잘 아는 우리들로선 어무이의 기쁨이 무언지 알 거 같은데, 어마어마한 일거리로 이어질까 봐 걱정 또한 되는 것이다.


배추와 무가 자라던 그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서 마늘과 양파 모종이 보인다.  올 김장을 버무리기도 전인데. 어무이 텃밭은 내년 김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 바퀴 돌고 오니 씻어놓은 배추의 물기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할 때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우르르 몰려오신다. 코로나로 서로들 도와주기도 꺼려질 텐데, 인심과 입심들로 하하호호 웃으시며 신나 보이셨다.

김장 도와 주신분들 가실 때 가지고 가서 저녁 맛있게 드실 것도 싸 놓으시고.


이웃 분들과 오순도순 정답게 사는 마을, 사람의 온정이 느껴지는 마을. 어무이 댁에서 사람 냄새나는 향기에 풍덩 빠졌다.


어무이의 깊이를 잴 수 없는 이 사랑,

이 맘으로 올 겨울 아궁이 연탄불만큼 뜨겁게  뜨듯하게 지낼 거 같다.

 살아갈 에너지 팡팡 충전되었으니  온정 내뿜으며 12월을 살아가 보자.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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