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무르익을 때면 무거워지는 것이던가. 말 배우기 시작해 일곱 살을 지나면서 어휘력 폭풍 성장기. 따발총보다 더 빠르고, 줄줄이 사탕이나 비엔나소시지보다 더 길고, 끝없이 이어지는 끝말잇기보다 더 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 일곱 살.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생각나는 말이 생기고 퍼내고 퍼내도 솟아나는 샘물 같은.
그 시기 거치고 청소년기에 들면서 밥 먹고 숟가락 놓기 바쁘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말이 익어 무거워져서 그런가. 스무 살 넘기면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데, 한 집에 같이 있어도 먹는 시간도 제각각이라 얼굴 보기 쉽지 않으니 말소리를 더 듣기 어려워진다.
밥도 주구장창 그이와 둘이 알아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다 아드닝이나 따닝과 둘이 먹게 되는 날이면 그냥 좋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도 물을 수 있고, 이런저런 얘기 나눌 수 있어서. 그런데 좋다는 건 나만의 생각임을.
뜻하지 않게 이야기가 훅 들어가거나 묻지 말았어야 할 부분까지 툭 건드리게 되는 꼴이 발생하는 거. 대책 없는 질문으로 맘 상하고 얼른 자리 뜨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명절날 가족 친지 얼굴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부모 또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아드닝과 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난 딱히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없다. 아드닝은 런닝맨이 최애 프로그램인가 싶을 정도로 챙겨보는 거 같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맘으로 웃으며 볼 수 있어서인가. 밥 먹으며 틀어놓은 걸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멤버 한 사람 한 사람 프로그램 살리기 위한 노력이 가상하고 기특해서.
보다 보면 녹화본이니 한참 전에 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런 건 별 개의치 않는지 언젠가 미쿡 몇 달 다녀온 뒤 정반대 계절 담긴 걸 보는 것만으로 더워하고 추워하며 순서대로 봐 나가고 있었다.
한두 주 전의 것을 보는 건 아주 양호한 편에 속하는 것이다.
장혁이 게스트로 나온 날, 멤버들 모두는 중년의 가을 등산복 차림이 컨셉인 듯했다.
늘 젊음을 앞세워 발랄하고 유쾌한 전소민도 중년의 차림으로 알록달록 화려한 옷차림이 잘 어울렸으며 나이는 들어 보였다.
“아드닝, 옷이 날개라더니 입는 옷에 따라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하는 거 같아.”
프로그램 내용은 별 관심 없고, 멤버들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무이가 못마땅했을 테다. 표정으로 읽혔으니. 건성인 듯 마지못해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옷 이야기를 듣고서야 멤버들 옷차림이 보였나.
“어무이, 유재석은 편하면서 예전의 옷을 입어도 촌스럽지 않고 잘 어울려요.”
아드닝이 이야기를 받아주니 신이 났다. 일곱 살 아이들 묻고 또 묻는 것처럼 줄줄이 이야기가 이어져 나온다.
“지석진의 캐릭터는 오십 중반 넘어서 그런가 어르신 캐릭터. 재빠르지 못하고 쉬엄쉬엄 움직이고
실수투성이 말도 잘하는 게 어무이를 보는 거 같아.”
그러면서 덧붙였다. 젊은 친구들 사이 있으니 나이 든 사람 취급받지 자기 또래들 사이에선 엄청 젊어 보이는 거라고. 연예인이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잖는가.
“아부지도 회사 갈 때 보면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 보이던데요.”
묻지도 않은 아부지 얘기가 나왔다. "집에 며칠 있을 땐 바로 노인티 나지 않던?"
"그런 건 잘 모르겠던데요."
아드닝이 보는 거랑 내가 보는 면이 다른 건가. 노인티가 나도 한참 나 보이던데...
지석진과 동갑인 아부지께서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니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가 싶었다.
“아드닝, 어무이는?”
그 옛날 말문 트인 어린애 붙잡고
엄마 좋아, 아빠 좋아? 물어보던 어미처럼 아부지에 대한 것만 얘기하고 끝내 버리는 게 못내 아쉽고 서운했나 생각 없이 툭 튀어나왔다. 유치원 시절 일곱 살 되기 전까진 엄마가 세상에서 젤 이쁘다고 말해주던 때도 있었는데... 기억에도 없다고 하니.
“어무이 그럴 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이렇게 적어 놓았으니 너는 보고 읽기만 하면 되니라. 그런 거나 다름없어요. 그런 때 답정 너라고 하죠.”
아뿔싸! 동그랗게 눈 뜨고 아드닝을 쳐다보며 물었던 조금 전의 내 모습이라니.
“그렇게 물어보는 어무이께 제가 뭐라고 답하겠어요? 아부지와 티브이 나오는 저 사람들보다 엄청 나이 더 들어 보여요. 이렇게 답 할까요?”
그러니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런 말씀.
아드닝 말을 듣다 보니 유치뽕짝 같은 말을 물은 거 같아 멋쩍어서 하하 호호 웃었다.
어쩌면 아드닝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그 어릴 때 묻고 또 물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답정 너 같은 말이라도 묻지 않았을까.
퇴근길, 징징거리며 엄마 시간 맞춰 하원한 아이와 퇴근한 젊은 엄마의 끝없는 말이 오가고 있다. 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엄마에게 투정부리듯 불만을 얘기하고 징징대는 말론 알아들을 수 없으니 또박또박 말해야 들어 줄 수 있다는 도돌이표같은 말이 한 없이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