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산책길을 걷는데, 눈앞에 도르르 뱅그르르 돌던 낙엽이 사뿐히 가라앉는다. 초록 내음, 초록 배경, 공기정화 등 할 일을 다 끝낸 가뿐한 몸놀림이 가볍다. 고개 들어 본키 큰 나무들 홀 딱 벗어버렸다. 내일은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더니 바람 속에 묻어있는 공기가 차다.
두툼한 옷을 한껏 껴입은 우리와 달리 하나둘씩 벗어던져 홀가분해진 나무들 그 사이로 보이는 까치들이 앉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옆에는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로 포개고 포개 얹어 만든 까치집.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세찬 바람비 다 통과해도 끄덕 않고 버티는 저 집들.
부리로 물고 나르며 견고하고 튼튼하게 엮어 만들었을 집 짓는 기술에 찬사를 보내며 올려다보던 중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지적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몸으로 체득한 한 걸 전수받았음인지 사람 못지않지 않은 능력을 가졌음에 분명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 포노 사피엔스, 로보 사피엔스 등 지성을 가진 사람이란 뜻과 함께 여러 이름으로 세분화하여 부르고들 있던데, 까치들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까로 사피엔스라고 해줄까.
응달진 곳보다 하루 종일 햇살이 잘 드는 곳을 골라 집을 지어 놓았다는 것. 경춘선 숲길에는
영조가 강릉과 태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능행길이 있다. 임금님이 잠시 앉아 쉬어 가던 곳엔 일월오봉도를 야외 전시품으로 설치해 놓은 곳.
임금님이 쉬어가던 곳인 그 자리가 좋다는 것을 어찌 알았단 말인가.
일월오봉도 바로 앞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에 까치집을 무려 네 채나 지어놨다는 건 알아도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새들 중 까치의 영특함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오래전, 수업하러 가기 위해 학교 뒷문을 통과하던 중 까치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어디 다쳐서 그런가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다가가니 까치는 건물 난간으로 올라앉아 내려다보며 울부짖어댔다.
아래를 봤더니 아기 까치가 쓰러져있다. 축 늘어진 게 죽은 듯 보이는데, 건들지 말라는 경고 같기도 한.
어미 까치의 울어대는 소리가 애처로워 살짝 자리를 피해 숨어서 보았다. 어미까치가 금세 날아 앉더니 죽은 아기 까치를 부리로 물었다. 날아오르자 무거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어쩔 줄 몰라하며 어미까치는 또 꺄악까악 울부짖었다. 안타까운 맘에 조금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주려 가까이 다가가면 퍼드덕 날아오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맘은 어미까치나 똑같았던 기억이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더 있으면서 도와주진 못하고 그 자리를 뜨긴 했지만, 오랜 시간에 지났음에도 그 울부짖던 소리는 귀에 쟁쟁하다.
찬바람에 나뭇잎 다 떨어지고 한눈에 드러난 겨울 까치집을 올려다보노라니 오래된 기억 속의 일까지 떠올랐다.
집 안엔 까치 식구들 중 누가 있는지, 어미인지 아비인지 집 앞에 나와 둘러보고 있다. 올 겨울바람 숭숭 드는 나무집 많이 추울 텐데, 따스한 햇살로 잘 이겨내길. 다치고 아픈 아이 없이 잘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