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꼬마 숙녀가 할머니를 앞세우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손님으로 오긴 했었다. 제 발로 걷는 어린 꼬마 손님으론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난 본능적으로 어린 쪼꼬미에 눈이 반짝 뜨였다. 그들과 오래 생활한 덕분인지 그 또래들만 봐도 힘이 솟는다. 이야기 나누면 오래전 친구 만난 듯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거 같다. 잠시 후 간호사로 일한다는 꼬마의 엄마가 들어오셨다. 전세 얻을 집을 같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원하는 집을 찾는 동안 할머니께선 손녀의 하는 말 한마디 몸놀림 하나하나 손녀 자랑에 여념이 없으셨다. 똑같은 행동을 이어하고 있는 꼬마인데. 엄마는 사관생도 가르치듯 엄한 통제가 눈빛과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자세를 바로 해라, 말을 왜 그렇게 하냐, 좀 더 예쁘고 똑바로 말하지 못하냐 등등 일거수일투족이 고칠 거 투성이다.
아이 엄마가 서류 출력할 게 있다며 근처 PC방엘 다녀온다고 했다. 반사적으로 아이가 먼저 나설 준비를 했다. 할머니는 엄마 주사 맞으러 병원 간다며 너도 주사를 맞을 거냐고 했다. 엄마 바짓 자락을 꽉 붙잡았던 손의 힘이 살짝 풀리는 거 같았다.
“D도 같이 가서 주사 맞고 와요!”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힘 풀렸던 손을 아예 놔 버리는 게 보였다. 지적하고 고칠 점만 얘기하는 엄마인데, 엄마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맘이 느껴져 맘이 아렸다. 아무리 야단치고 혼내고 소리 질러도 세상 가장 좋은 엄마였던 것이다. 그놈의 주사 때매 할머니 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을 보노라니 내 아이 어릴 때가 생각났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다 컸으니 엄마가 일을 하든 안 하든 별 관심도 없다. 아이 둘이 어렸을 때 큰 아이 낳고 3개월 후부터, 작은 아이 낳고 1년 후부터 다니던 일을 계속 다녔었다.
우리 어머님들 이상으로 아이를 정성 들여 봐 주시는 분을 만났다. 친정엄마 집 드나들듯 어린애를 맡겨두고 일을 다닐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 엄마의 정을 아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빠이빠이하던 아이 어디 가고 따라가겠다고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온갖 말로 어르고 달래고 마지막엔 주사 맞는 걸로 협박해도 소용없었다. 껌을 좋아하는 걸 알고 껌을 사주기도 했다. 껌마저 소용없는 때가 와 버린 것이다. 바짓 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뿌리치듯 떼놓으며 껌을 던져주고 나오는 내 맘이 어땠는지 잊은 줄 알았는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잠시 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을 심심해했다. 몸이 뒤틀리고 바닥으로 미끄러질 거 같았다. 사무실에 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둘러보았다. 장난감이 있을 리 없고, 의자에 앉혀 갖가지 색 펜과 하얀 종이를 주었다.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걸 대부분 좋아했고, 낯선 사람과 마주하는 이 시간을 자기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편한 시간이 될 수 있으니까.
꼬마 숙녀는 금세 안정을 되찾은 듯 내 얼굴도 그려주고, 가족들도 뚝딱 그려주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녀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자랑이 줄줄이 나오신다. 기저귀를 뗀 뒤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는 것도, 혼자서 밥을 잘 먹는 것도, 말할 때 꼭 존댓말을 쓰는 것도, 징징대는 일이 한 번도 없는 것도!!
어른들도 실수하고, 반말하고 징징댈 때 많은데... 다섯 살 된 아이가 할머니께 사랑받을 방법을 터득하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아무 말 않고, 어린 꼬마 손님을 내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내 어릴 적 아이들을 안아주기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