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얼굴의 치장

당장 시작할 때다.

by 서비휘

대형 얼음 넣고 팥빙수 기계 풀가동시킨 마냥 쏟아져 내린다. 예쁜 그릇 들고 서 있으면 금방 가득 찰 거 같다. 푹 삶긴 팥이랑 곰젤리 콘프레이크, 마지막 인절미 떡 올려주면 전통 팥빙수, 샛노랗게 잘 익은 망고 네모 반 듯 잘라 올려주면 망고 빙수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아파트를 사야겠다며 찜해둔 집에 대한 전화 문의가 있었다. 오후 3시쯤 도착 예정이었다. 기다리는 분보다 맘 급한 눈이 마구마구 내려앉는 눈 위를 걸으며 망고 빙수 한 입을 떠 넣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르르 녹는 맛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네이버 지도가 안내하는 목적지에 가까워질 즈음 후딱후딱 후르르 마셔버렸다.

이른 아침 통화에서 많은 걸 얘기했었다. 1년 가까이 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송파구, 광진구, 노원구까지 발품을 팔고 계셨다. 이게 맘에 들면 저게 걸리고.

왜 안 그러실까? 작은 신발이나 손지갑 하나 고르는데도 신었다 벗었다 들었다 놨다 하거늘. 덩치 커서 목돈을 들여야 하는 집을 사는 일인데, 심사숙고하는 건 당연한 거다.


만난 분은 집을 샀다 팔았다와 산 집의 리모델링을 직접 해 보신 분이라 노하우가 대단하시다. 남향인지 동향인지 방 크기나 인테리어 상태, 거실 창으로 내다보이는 뷰를 살펴보며 집 안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은 기본이고. 복도 있는 아파트의 집 밖을 오래 들여다보며 두뇌 풀가동시켜 고민하셨다.


'집 안도 아닌 집 밖에 머무는 냄새까지 살펴볼 줄이야.' 냄새 빠지게 하려면 복도의 마주 보는 창문을 열었다 닫으면 싸악 가실 거 같은데, 춥고 거기서 사는 사람은 그 냄새에 익숙해 크게 못 느낄 수 있겠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집을 살펴볼 때와는 남달랐다.

비어있는 아파트에 올 인테리어 되어 있는 집인데,

“이 집은 음기가 넘 강해요.”

나오면서 덧붙이는 말을 들으며 풍수지리를 보는 이인가 아니면 역술가인가 . 화목해 보이는 집을 들어갈 때면 밝은 기운 그런 것쯤 느끼기는 해도 새로 인테리어 끝난 집을 보며 그런 기운을 느끼는 게 신기했다.

어느 아파트 매도인의 퇴근을 기다리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땐 H백화점에서 옷가게를 오랫동안 하셨다고 했다. 우아하고 럭셔리한 공간에서 옷가게를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어떤 상황일지 눈에 그려졌다.


여러 시간 서 있다 보면 다리가 아파 한 쪽 다리 ㄴ자로 구부려 서있기만 해도 살 거 같은데, 기대서는 안 된단다. 마땅히 기대 설 곳 없는 것도 문제라 하셨다. 이야기만 듣는데도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7년을 버티며 일하다 결국 발바닥이 병나고 고장 나서 잠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그만두셨단다.


그 후로 여러 일을 많이 하셨을 텐데, 지금은 경매 공부하며 아파트 임장 다니는 일로 전력을 쏟고 계신다고. 쉽지 않으시단다. 어디 하나 호락호락한 삶이 없다. 한 사람의 살아온 단면만을 듣는데도 내 이야기처럼 힘들고 어렵지 않은 삶이 없으니. 인생이란 삶이란 고난과 시련 없이 살아나기 힘든 거구나. 너의 삶도 나의 삶도 그 힘듦 속에서 서로 부둥켜 안 듯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끌어주고 끌고 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아파트 네 곳을 보여주고 나오니 가게 앞과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많은 이들이 분주하다. 팥빙수 만들 때의 하얀 눈이 사람들이 밟고 지난 곳은 갈색으로 변해 몸 구석구석 돌고 돌아 영양 공급 끝낸 똥 색깔처럼 되었다.

보여준 네 집 중 비어있음 비어 있는 대로 느낄 수 집 안 분위기와 다복다복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 참 소중하다.


그 사람이 지닌 모든 것이 또 다른 모습의 얼굴이듯 집은 그 속에 몸담은 사람의 덩치 큰 또 다른 거인 얼굴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집 모양의 거인 얼굴 치장해주기 당장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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