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장혜영의『어른이 되면』을 읽고,

by 헬로해피 최유영

1. 울림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하나의 울림이 되기를 희망한다." 238


장혜영의 ‘어른이 되면’은 내가 소속된 ‘소피’라는 북동아리의 토론 책이다. 최근 북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던 내게, 이 책만큼은 함께 읽고 토론에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멤버의 권유가 있어서 읽게 되었다. 멤버들은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은 정의당 국회의원이 된 영화감독 장혜영이 발달장애인인 자신의 동생 혜정의 ‘탈 시설’을 도우며 느꼈던 사유들과 혜정과 함께 한 400일간의 특별한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혜정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때마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혜영은 궁금해진다. ‘혜정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 왔을까. 이 말을 한 사람들은 30살의 혜정이 어른이 된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았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 혜정이 탈시설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이다.


부모님과 언니 둘이 함께 살고 있었던 혜정은 13살 되던 해에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설로 가게 된다. 그 후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언니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혜영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혜정의 가족은 해체된다. 18년 뒤, 혜영은 동생 혜정의 ‘탈 시설’을 돕기로 한다. 그녀는 혜정이 수원의 한 시설에 있는 동안 학대와 인권침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혜정을 두고서 행복할 수 없었다. 독일 유학의 기회도 포기한 그녀가 18년 동안의 마음의 짐과 고민을 깨고 혜정에게 자유롭고 평범한 일상을 찾아주기로 용기를 낸다.


그러나 시설 밖에서의 혜정은 누군가의 희생과 보호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적 지원들은 기약 없는 대기 리스트는 기본이었고 어느 서비스는 서울시 거주 6개월 이상이어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혜영은 혜정과의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6개월의 기한을 정해두고 자신이 오롯이 혜정을 위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혜영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으므로 생활비용이 필요했다. 해결책으로 펀딩을 받아 혜정과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한다. 펀딩은 클라우드 펀딩 서비스인 ‘텀블벅’으로 정했다. 펀딩은 다소 무리였고 불확실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결국 성공을 해낸다. 5,400여만 원의 자금이 생긴 혜영은 친구들과의 협업으로 카메라에 400일간의 혜정의 일상을 담게 된다. 이렇게 혜정이 어른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의 과정을 담고 쓴 이야기가 바로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이고 책이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우리의 의지만 있다면 발달장애인인 혜정에게도 얼마든지 삶의 자유권과 행복권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감동의 경험과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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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탈 시설이란.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의 목적은 장애인도 ‘탈시설’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인격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인식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절심함을 호소하는 데 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정의된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산다는 의미는 폐쇄성이다. 시설에서의 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된다. 이에 ‘탈시설’은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살아가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은 1980~1990년에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구체적 서비스를 지원 확대하였고 1997년 ‘특수병원 및 요양시설 폐쇄법’을 통과시켰다. 1999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시설은 폐쇄되었고 시설 중심의 서비스에서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 전환되었다.

스웨덴의 탈시설을 주도한 사람은 킬 그룬빌트 박사이다. 그룬빌트는 스웨덴 보건복지부 공무원으로 거주시설과 전문병원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며 발견했던 시설들의 폐해를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그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의 자유가 없는 삶에 더한 학대와 폭력, 그리고 비윤리적인 의료실험을 폭로하며 탈시설 여론을 형성해 갔고 인권운동가와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지금은 각자의 니즈에 맞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매월 지급되는 지원금을 모아 세계여행도 갈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복지가 마련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이런 사회로 가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성숙된 인권의식이 고양되어야 할까.


또한 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탈시설 정책을 논의하다가 1997년 ‘지역사회돌봄법’을 제정해 장애인에게 서비스 대신 현금지급을 허용했다. 이로써 장애인 당사자가 복지 서비스를 통제하고 결정권을 가지는 게 가능하게 됐다. 뉴질랜드 또한 지역중심의 서비스를 선택하고 2006년 모든 시설을 폐쇄했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도입했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기반을 만들고 부양자의 쉼을 위해서다. 장혜영 작가는 이 시스템이 좀 더 빨리 생겼더라면 동생이 시설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요즘 환경이라면 혜정 같은 경우엔 얼마든지 집에서 케어가 가능하다. 더 심한 장애인들도 대부분 집에서 케어를 한다. 지금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치료바우처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것들을 점차 사회가 책임지는 추세이며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정책에 대한 방향성은 아직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탈 시설의 문제가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장혜영 작가를 비롯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라는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탈시설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탈시설 시 발생할 문제들을 우려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경제적 문제와 관계가 깊다. 또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시설 사업주와 직원들의 반발과 불안한 미래로 인한 장애인 부모들의 반대도 있다고 한다. 부모들은 시설이 없다면 인지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이 아무런 연고지가 없을 때 어떤 보호 아래 살게 될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스웨덴은 반대로 장애인 탈시설의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했다. 법을 제정하여 강하게 밀어붙였다. 폐쇄하지 않는 시설은 국가가 사들여 폐쇄했다.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인간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회는 배려있는 소수의 사람의 희생 속에 세워진다.


나는 수어통역사 장수미를 알고 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청각장애인 미혼모를 돕고 있다. 당시 혼자 사는 것도 망막했던 미혼모는 아기(하율)를 낳자 시설로 보내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장수미는 자신이 도와줄테니 하율이를 직접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을 했다 한다. 그렇게 연이 되어 장수미는 11년째 하율이 가족을 옆에서 돕고 있다. 언어소통이 되지 않으니 병원 가는 일, 학교 문제 상담, 이웃들과 함께 여행하기, 각종 사회지원 서비스 정보나 방법 등을 일일이 챙기며 모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얼마 전에 모처럼 장수미를 만나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녀는 그날도 하율이 엄마와 소통하느라 바빴다. 하율의 학교에 낼 서류를 챙기기 위해서다. 장수미는 하율이 엄마와 문자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자 수어로 화상대화를 시작했다. 아름다웠다. 말은 상처가 되기 쉽거늘 손으로 하는 대화는 마치 나비의 춤 같았다.


나는 장수미에게 본인의 아이들 셋을 양육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도울 수 있었냐고 물었다. 11년 전이면 내 아이들도 장수미 아이들도 초등학생때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넋이 빠져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다. 이에 대해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하율이를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역할만 했어요. 아이한테 디테일하게 잘해주는 타입은 못돼요. 우리 가족과 마을의 이웃들을 하율이와 연결해줬을 뿐이에요. 그러면 알아서들 서로 잘 놀아요.”


이 쿨내 나는 대답이라니. 연결만 해주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잘 놀더라는 경험담이 진짜 마을 운동가의 정신이 아닐지 생각케 했다. 사회운동에 있어 주도자가 모든 걸 완벽하게 다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을 극복한 정수의 논리. 또한 장수미는 자신의 말로 발목이 붙들인것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그 속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내 삶도 벅찬 세상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장수미는 나에게도 그 잔잔하고 깊은 속을 들켜버렸다.


나는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 곧 장혜영 작가의 프로젝트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장수미는 하율이에게 자신의 이웃을 나누었고 평범한 일상을 선물했다. 장혜영 작가가 그토록 원했던 일, 장애인에게도 일상의 자유를 선물하는 것, 장애인 탈시설화의 비밀이 장수미에게 있었다.


혜정의 탈시설 생활은 언니 혜영의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장혜영이라는 오작교를 통해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정민, 은경, 인서, 든든한 동생들이 혜정에게 노래도 가르쳐 주고 함께 여행도 했다. 그리고 동네 카페 사장님, 음식점 사장님과 친구가 되어 혜정을 배려했고 아껴주었다. 그런 연결을 통해 혜정은 싫은 것 거부하기, 자신이 원하는 것 요구하기, 하고 싶은 것 해보기 등 자기결정권을 갖기 시작했다. 혜정은 이제 폐쇄된 공간에서 폐쇄적인 사람들에게 듣던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란 말을 멀리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의 사회시스템은 누군가의 배려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장수미와 장혜영 작가처럼.


그렇다면 사회는 늘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존재되는 것일까. 혹은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시스템은 작동이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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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탓하기보다 시스템 자체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개인만을 책망하는 것은 오히려 진짜 문제를 감추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어른이되면 166p)


최근 홀트의 성인발달장애인 보호시설에서의 사회복지사사의 상습 학대 정황이 수면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당연히 사회복지사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혜영 작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만을 책망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를 문제제기한 것이다. 그들의 노동환경은 어떠했던가. 인력은 충분한가. 왜 상습 학대를 방치할 정도로 올바른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나. 발달장애아 특수한 돌봄에 따른 노동시간과 보수는 적절했는가. 정기적인 전문교육은 받고 있었나. 혹은 아픈 사람들의 고충을 그대로 흡수해야 하는 이들도 정신과 상담이나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흔히들 인권을 다루고 있는 돌봄 노동자를 3D업종이라고 말한다. 3D업종이라 함은 보수는 적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구조를 말한다. 어느 지인의 아들은 대학에서 사회복지 전공을 하다 그만두고 경찰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경험해보니 적은 보수로 온갖 궂은일을 하는 일이 사회복지사라는 것이 이유였다.


나의 생각은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활동 전에는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만이 너무 커서 무조건 그들을 도와야 할 환경개선과 인식전환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돌봄 노동자의 현실도 함께 생각한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당연히 소중하며 많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신체와 정신이 자기스스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세심한 일인가.


발달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은 인내심과 체력의 싸움이다. 또 정신력의 문제다. 정말 선한 마음으로 접근을 했다 해도 매일매일 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좌충우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내심이 바닥나는 날도 점차 많아진다. 한두 달, 아니 1년쯤은 잘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다. 경험컨대 이런 순간들이 사건사고와 함께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일분일초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된다는 의미이고 발생하는 모든 충격들을 보호자가 그대로 흡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20대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을 둔 어느 50대 가장은 자신이 예비 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중증 발달장애인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을 한 바도 있었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사회복지사나 돌봄 노동자가 값싼 임금으로 그 고통들을 모두 감당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돌봄은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다. 환자의 다변하는 감정, 행위 모두를 의연하고 요동없이 받아낼 수 있는 좋은 인격은 기본이고 좋은 쿠션 같은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돌봄 일을 하기 위한 이런 인격 관리는 어느 전문직종의 전문지식보다 더 어렵고 가치가 있는 일일 수 있다. 인격수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좋은 인격은 삶 전체를 통해 쌓아 온 커리어이고 수양된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얼마만큼 인정해주고 값을 정하고 있는가. 이 또한 힘 있는 자-돌봄은 이 사회를 조직·구성한 권력과 가부장제의 관습에 의해 여성 또는 하급계층민에게 전가된 노동이다-들에 의한 강요된 희생은 아닐까?


공공의료 서비스가 잘 작동되지 않고 있는 미국은 돌봄 노동을 주로 유색인종이 도맡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돌봄 노동에 있어 외국 노동자(베트남 여성)의 비중을 늘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서 내놓은 대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중장년의 여성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지금, 돌봄 노동을 하겠다고 교육을 받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금 새 그만두게 된다. 인력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3D업종처럼 돌봄 인력에 투입하는 자본과 노동환경과 사회인식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돌봄은 재난상황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필수 노동자이다. 하지만 이들은 저임금, 산재위험,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직업이라지만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 인력이 3D업종이라 천시받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듯한 이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환자의 신체와 감정까지도 항상 대면하고 케어하는 가장 섬세한 일인 돌봄 정책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서비스 이용자에게서마저 하대 받는 돌봄이(실제로 서비스 이용자가 활동지원사를 가사도우미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가진 전직 사회복지사 출신 5년 경력의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계층을 케어하는 자신들이 가장 약한 계층이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을 겪는 체감 비율이 몇 퍼센트이냐고 그녀에게 묻자 그녀 생각엔 7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적합한 대우를 받으며 공평하고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지금의 돌봄 노동처럼 약자 위에 약자가 생성되는 또 다른 희생을 돌출해내는 것이 아닌 모두가 ‘불편’과 ‘평안’을 공평하게 함께 나누는 사회는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는 있는가. 우리는 장혜영 작가의 말처럼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되는 사회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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