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힘들지 않아?

by 헬로해피 최유영

“다녀올게요.”


아들이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성인이 되었으면 자기 독립적 삶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들이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티셔츠와 검은 운동복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했다. 아들이 원한 일이었고 조금 하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아들은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아르바이트를 군입대를 앞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컴퓨터를 샀고 고3 때에는 유학 갈 때 사용할 맥북을 구입해서 떠났다. 그 맥북으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 자기는 이제 군입대를 할 거니까 자꾸 나 쓰라고 해서. 학업에 필요한 노트북은 아들이 사지 않아도 남편이 사주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자기가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아마도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조르는 것이 아들 성격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을 결핍된 존재로 키운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뜨끔 거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들의 아르바이트 첫날의 모습이 내게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몸에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너무 놀랐고 가슴이 아팠다. 기름을 잔뜩 뒤집어쓰고 온 나의 작고 작은 아이… 도대체 아들은 무엇을 하고 왔단 말인가.


나는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일이란 것이 티브이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문이나 받고 주문된 음식을 포장해서 손님에게 전달해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작은 아이는 시간 내내 감자를 튀기다 왔다고 했다.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요즘은 모든 주문은 기계로 하고 한두 명의 알바들이 주방에서 감자와 패티를 튀겨 햄버거를 완성시켜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에서부터 매장관리까지 도맡게 된다. 어느 하루는 아들 혼자서 2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적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로봇이나 기계가 발달되면 사람의 일이 줄어 들것이라는 착각을 하는데 노동하는 인간은 더욱 바빠진다. 기계가 빨라진 만큼 빠른 스피드를 요구하고 적어진 인원만큼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의 과중은 높아진다. 패스트푸드 점 역시 수동으로 주문을 받을 때보다 일의 속도가 더 빨라져야 했고 사람을 대신한 기계 때문에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봤던 회사 유니폼과 회사 로그가 박힌 모자를 쓰고 트렌디하게 손님을 기다리던 시대는 이미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지금은 키 182의 듬직하고 훤칠한 아들이지만 고 1 때 아들은 아이의 티를 채 벗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런 아이가 기름 냄새에 절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욕실로 들어갈 때 엄마인 내 마음이 아리지 않았을 리 없지 않겠는가.


우리 아들 아가 때 사진


“아들, 힘들지 않아? 힘들면 그만해. 엄마 마음이 너무 안 좋아.”


나는 수시로 아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했지만 처음부터 아들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은 3년 내내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도 감자를 튀기고 햄버거를 만들며 살고 있다.


“아들, 난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집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좀 그래.”

“왜 요?”

“너 고생하니까 그러지. 내가 일 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서 미안해.”

“제가 왜 일을 하는지 아세요? 제가 노는데 쓰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다 쓰는데요 뭐.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용돈 받아서 쓰는 거잖아.”

“아니에요. 제 친구들도 모두 자기가 벌어서 써요. 용돈 안 받아요.”

“아… 그런가? 이제는 너희들은 성인인 거지? 맞네. 성인이면 독립하는 게 당연한 거네.”


아들은 고등학생 때도 그렇게 말했다. “친구들도 다 해요. 저만 하는 거 아니에요. 공부에 전념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저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일 하는 애들도 많아요.” 그러면서 나를 안심시키곤 했었다. 남편도 애들은 재미로 하는 거라고, 가여울게 뭐 있냐, 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아들의 첫 알바의 날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눈물이 났고 마음이 울컥거렸다. 왜 이렇게 아들이 가엾게 만 생각되는지… 이쯤 되면 이것도 병이 아닐까 싶지만….


이제 아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자기 일쯤은 자기가 해결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노동을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노동하는 삶은 독립된 삶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노동하는 아들을 가엾게만 여길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자꾸만 아들이 가엾게 느껴지는 것일까. 나도 아들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게나마 용돈을 내 손으로 벌어서 썼었다. 그때의 나도 아들처럼 어머니에게 용돈 달라는 소리를 하기 싫었다. 어머니의 고생이 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숲에서


나는 대학시절, 하교 후 옷가게와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일은 쉬웠다. 옷가게 아르바이트는 옷을 팔면 되는 일이었고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는 데스크에 앉아서 학부모에게 오는 전화나 받고 아이들 등원 체크 정도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노동 시간도 훨씬 짧았다. 어떤 위험도 없었고 어떤 억울함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아들은 나보다 더 어린 날부터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더 낮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노동은 내게 더 아픔으로 다가왔다. 더더욱 나는 평소 청년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죽어 나가는 것을 무척이나 마음 아파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내게 노동은 살고자 하는 것,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피할 길이 없어서 해야 하는 일로 인식된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어른이 되어 겪어왔던 경험치로 인한 불안에서 기인된 것 이리라.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사회는 계급의 차이는 있었지만 노동(농부)을 천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노동하는 사람을 중요시했다. 노동자가 없으면 그들의 안락하고 호화로운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는 노동자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고대의 신성했던 노동자의 자부심은 점점 추락했다. 지금은 보다시피 노동자가 골칫덩어리로 전락할 위기마저 맞고 있다. 실업자가 늘어 일 좀 하게 해달라고 구걸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마음 아팠던 것은 아들에게 맞닿아 있는 노동의 레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추락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자존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검정 운동복 대신 좋은 옷을 차려입고 번듯한 일자리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면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불렀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들은 내가 힘들지 않냐고 물어볼 때마다 힘들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아들의 노동이 정말 힘들지 않을 리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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