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 씨
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 업(Stand Up) 코미디언이 있다. 우리나라 연예계를 통틀어 장애인으로 연예인의 꿈을 갖고 도전장을 내민 첫 번째 사람이다. 그는 스물여섯 살 한기명이다. 강남 공연장에서 선배들과 함께 스탠드 업(Stand Up) 코미디 공연을 하고 있으며, 지난주에는 KBS 2 “스탠드 UP!”이라는 공중파 방송에 첫 출연을 했다.
한기명은 여섯 살 때 태권도 학원 버스 사고로 후천적 뇌 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6개월 만에 의식을 찾은 한기명이 처음 본 방송이 개그콘서트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매번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여러분들이 장애인인 제가 하는 코미디를‘보고 웃어야 하나? 아닌가? 그렇다고 안 웃을 수도 없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힘드실 거 란 거 잘 알아요.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 같고, 웃으면 장애인 비하 같고 그러시죠? 하지만 오늘만큼은 저의 비하로 가겠습니다. 저의 개그에 편견 없이 마음껏 웃어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명은 세상 밖으로 나와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서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시선에 결투를 신청했다. 그가 대중 앞에 서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고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될것이다. 대중 앞에 선 '그의 말의 힘'이 곧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운동'이 아닐까?
'장애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환경에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생활비가 훨씬 많이 든다고 한다. 이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교통비 지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어쩌면 장애인들을 위축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불편한 도시 환경과 사람들의 인식 때문일것이다.
2019년 접근성 높은 도시상(2019 Access City Award)을 수상한 네덜란드 브레다는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소도시로서 돌로 수놓은 울퉁불퉁한 바닥이었기 때문에 휠체어 이동에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브레다 시는 돌로 된 바닥을 다 드러내어 휠체어의 접근성을 높였다. 가게 주인들은 가게의 문턱에 경사로를 놓아 장애인들을 환영했고 버스정류장과 버스도 휠체어가 완벽히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호텔은 장애인 투숙객을 위한 스파와 물리치료실을 갖췄고 민박집도 휠체어 접근성이 편리하게 되었다. 이어 브레다 시는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의 GDP는 17위이고 우리나라는 10위이다. 그럼에도 네덜란드는 선진국이라 불릴 수 있는 나라다. 그들은 ‘성장’이 아닌 ‘성숙’된 사회로의 방향성을 정한 것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물질적 성장이 아닌 정신적 성숙을 선진국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어느 날, 한때 절망에 빠져 있던 한기명 생각을 바꾸게 된다.
“나의 장애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나의 장애를 즐기자.”
그의 개그 소재는 장애를 가진 자신이다. 기명 씨 자신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웃음이 되어 대중에게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가 알을 깨고 문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편견에 용기 있게 맞서고 보니 그를 좋아하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젠 한기명 씨는 자칭 ‘인싸’라 부를 만큼 파주의 셀럽 인사가 되었습니다.
“기명이를 알게 되어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오히려 기명이에게 고마워요.”
친구들의 응원에 더 자신감을 얻은 기명 씨는 이제는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세상 모든 장애인 친구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의 편견과 맞서기로 합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편견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했던 원인들을 제거하고 싶은 소원을 품습니다. 기명 씨 친구들이 느꼈던 바대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서로 마주할 시간들이 부족해서 좁혀지지 않았던 낯 설움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그들을
문밖에 일상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 지점이 모두 다릅니다. 그럼에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보며 불행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가난한 삶 속에 더 진실된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부족한 이들이 오히려 그 누구보다 더 여유롭고 관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물질적 욕심도, 정치적 욕심도 많지 않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빠르게 삶의 철학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이들의 철학적 삶이 바로 행복이라는 단어에 순수하게 부합되는 것은 아닐까요?
때문에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 누구나처럼 장애인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행복할 권리를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애인들에게 일시적인 연민의 마음이 아닌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도시 환경과 공유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