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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Feb 22. 2022

내 안에 ‘지중해’ 있다

김화영 산문집, 행복의 충격을 읽고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오후 세시에 떠납니다.”


 프랑스 번역작가 김화영의 지중해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적어 놓은 산문집을 읽었다. ‘행복의 충격'이다. 작가는 청소년 시절 어느 영화를 보고 뇌리에 남게 된 저 문장이 후에 청년이 된 자신을 지중해로 이끌었다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인 한 문장이 작가의 일생에 있어 제2의 고향을 만들어 준 셈이다. 흔히 지중해는 우리들에게 환상을 꿈꾸게 해주는 곳으로 인식된다. 마음의 안식과 파라다이스가 있는 환상의 여행지, 낯선 풍경에서 밀려오는 미지의 세계와 이국적 풍경이 낭만으로 다가오는 곳, 우리는 그곳에 가면 비 현실의 여유로운 삶과 정신의 만족으로 마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그곳에 가면 ‘행복의 충격’이 내 심장을 강타하여 지중해의 바다처럼 아름답게 출렁이는 행복의 물결이 내 가슴에 넘치게 될까? 그곳에 가면 우리가 꿈꾸는 삶의 해답이 춤추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도 저 문장처럼 가슴이 기억하고 있는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내게 기록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한참을 망각 속에서 나의 온갖 기억들을 꺼내보며 찾아 헤맸다. 역시 어느 쪽이건 또렷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행복의 충격이란 신선한 단어로 내 가슴을 강타당한 순간, 나도 그 충격을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울림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지중해’를 찾기로 결심했다.



[누구나 영원한 봄, 영원한 여름을 프로방스의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햇빛이 참으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프로방스의 속담처럼 '나의 살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 모든 부질없는 허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38p.]


작가는 프로방스의 속담처럼 나의 살을 노래하고, 지중해의 사람들처럼 현재를 뜨겁고 육감적으로, 의식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삶을 살라 말했다. 작가가 말하는 ‘나의 살’ 같은 삶이란 부질없는 허영을 버리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파리지앵이 되어 지중해에서 행복의 충격을 직접 목도한 것처럼 난 나만의 지중해를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가? 과거의 유령 앞에 나의 삶을 제물로 받쳐 지중해의 터질듯한 지금의 봄날의,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더 늦기 전에 모든 고통을 투영할 수 있는 투명한 지중해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행복의 충격으로 내 머리를 강타하게 될 나만의 지중해는 어디에 어떻게 놓여 있는 것일까?



[지중해안의 따뜻한 가슴, 프로방스는 완전히 절망한 사람이 올 곳은 아니다. 오직 행복한 자,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어도 이 땅 위에 태어난 것이 못 견디게 기뻐지는 자들만이 올 곳이다. 아니 적어도 많은 절망의 한구석에 아직 저 필사의 모든 생명들이 공유하는 생명의 행복감, 우리들의 건강한 육체가, 죄 없는 육체가 아는 행복감의 씨앗을 아직 죽이지 않는 자들만이 올 일이다. 39p.]


작가는 지중해는 절망한 사람들이 올 곳이 아니라 했다. 일종의 여행의 목적인 ‘위로’라는 진부한 이유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지중해가 외롭게 지친 우리의 상처를 어루어 만져 줄 것 같은 가난한 생각에서 벗어나 행복의 씨앗을 품고 있는 자만이 지중해를 만나야 한다는 명제를 나는 과히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절망하지 않고 행복해져서 지중해에 서고 싶어졌다.


행복은 이 땅 위에 태어난 우리의 하나뿐인 의무임을. 이 산문집에서의 충격요법이 있다면 행복이 유일무이한 우리의 의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지중해의 품속으로 가야 한다.



행복의 충격이라는 충격적 단어가 나를 찾아온 이후 나는 매일 여행을 떠났다. 나의 미지의 세계로. 살아있는 삶을 위해. 머리와 마음에만 머물던 것들이 나의 살로 느껴지는 순간을 위해. 나는 나의 내면을 탐색하고 그림을 그렸다. 시를 쓰고 글을 끄적였다. 음악을 듣고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내 마음의 열차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계속 달렸다. 때론 보고 싶은 이를 향해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때론 사랑의 온기를 머금은 한잔의 차를 마시는 붓다의 마음으로, 때론 그리움을 불러오는 비 내리는 창 밖을 응시하며 앉아있는 도도한 고양이처럼, 리듬을 타며 삶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나의 지중해는 다름이 아닌 ‘Inner Peace’에 존재한다는 해답을 나는 추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지중해'를 위해서 내가 가진 것들을 버리는 연습을 했다.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욕심,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심, 물질적 욕심, 비교하는 어리석은 욕심,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헛된 탐욕 등 내 것이 아닌 것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버렸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었기에 가장 버리기 쉬운 물질적 욕심부터. 나는 탐욕과 허영을 버린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지중해’가 될 수 있다는 아주 쉬운 진리를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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