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헬로해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해피 Jan 15. 2021

그녀의 재즈 카페


금요일 저녁이다. 습기가 온 대기를 뒤덮은 아주 후덥지근한 여름밤이다. 포털사이트 일기예보는 주말에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후덥지근하고 끈적거리는 것이 여름철 날씨의 극미가 저절로 느껴진다. 그녀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있는 독서 토론 모임을 가기 위해 분주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요즘은 휴가기간이라서  바쁜 일은 없었다. 그녀는 거의 혼자 일을 한다. 그녀는 늘 침묵하는 사무실을 좋아했지만 오늘만큼은 이 고요가 못 견딜 만큼 지루하고 따분했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사무실은 그녀의 놀이터이자 일터이다. 급여는 박봉이지만 그녀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그녀는 매월 박봉의 급여를 받아 책을 사서 읽고 소규모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가끔 미술관을 가기도 한다.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작은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준다.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그녀의 생활에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적막하다 못해 지루한 회사가 싫다. 벗어나고 싶다. 한정된 메뉴로 매일 혼자 먹어야 하는 점심도 지겹다. 때마침 정산서류를 제출을 해야 해서 그것을 핑계를 삼아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서 본다. 한낮의 태양이 자동차를 뜨겁다 못해 따갑게 달구어 놓았다. 좌석 시트에 앉으니 너무 뜨거워 바로 앉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여름의 날씨를 실감케 했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녀는 배가 고파져서 먼저 점심을 먹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해마다 직접 들고 가서 제출했던 묵직한 정산 서류를 이번엔 등기우편으로 보내기로 한다. 봉투가 터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신경을 써서 테이프로 잘 마무리하여 등기우편을 보내고 우체국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다. 여름 더위가 극성맞아 그런지 낮부터 도서관은 꽤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앉을자리를 찾아 기웃 가웃 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을 눈을 감고 피로감을 풀어 본다.

     

고백하자면 그녀는 독서 토론 모임의 다른 회원들처럼 책을 쉽게 읽어 내지도 빨리 읽지도 못하며 또 이해의 폭도 넓지 않아 점철되어 쌓인 지식의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그래서 그녀는 오히려 더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의무감을 안고 있었다. 그 통로만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고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 읽는 행위를 통해서 삶의 희망을 찾는다. 그녀에게 삶의 희망이란 깨달음이다. 혹자는 그녀가 더 이상 과거의 그녀가 아니라고들 말했다. 외형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변화되었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변화된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것일 뿐이다. 자신 안에 있던,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적인 작업을 통해 비로소 깨달아가는 존재이다. 태생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산물을 표면화시키는 과정, 평소 자신이 쓰고 있던 페르소나에 가려진 '그림자(진짜 나)'를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깨달음이다. 또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책은 지난날 무겁기만 했던 삶의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종교 같은 힘으로 해석된다. 문장에서 파생된 사유는  기적 같은 힘을 주는 기묘한 마술 같은 힘을 지녔다. 그리고 그 마술 같은 힘은 삶이 점점 가벼워지도록 하는 초인간적인 에너지로 발산된다. 바로 이것이 그녀가 버거워하면서도 읽고 쓰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도서관에 앉아 있다고 잡념이 완벽히 차단되고 집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음악을 찾아 듣고 SNS를 뒤적여 보기도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피로감에 잠깐 엎드려 눈을 감았다. 겨우 겨우 흐트러진 정신을 모으고 책 읽기에 집중을 했다. 대충이라도 생각 정리를 해야 멤버들과 토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마저 읽고 생각을 모으고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의 기록을 했다.

     

다시 여름 더위에 나른하게 지친 피로감이 밀려와 흐릿한 정신으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독서 모임 후 공원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발목에 있는 상처를 치료 중이지만 다들 불금이라 말하는 금요일 밤이기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나와 서둘러 불편한 걸음걸이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걸어서 돌아갔다. 아이들 저녁을 해야 했다.

     

저녁을 준비하고 독서모임에 가기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누르면 그녀의 새침한 자동차는 "나 여기에 있어요.”라고 삑삑 신호를 보내곤 하는데 이번엔 인기척도 없다. 건망증이 심한 그녀에게는 항상 있는 일이므로 곧바로 지상 주차장으로 가본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자동차를 어디에 세워두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시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눌러보지만 역시 아무 대답도 없이 조용하다. 


‘어! 자동차가 사라졌다.’


갑자기 그녀는 불안해진다. 분명 자동차 열쇠는 그녀의 손에 있는데 차가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놀라움을 넘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디 있지? 어떻게 자동차가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있지?’ 


한참을 걱정하며 차를 찾아 헤매다 불현듯 생각이 났다. 도서관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서는 집으로 돌아올 땐 걸어서 왔던 것이다.


휴~ 사라진 것이 아니었구나….'


이러 다 또 늦을 것 같았다. 오늘은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없으니 서둘러서 자동차를 그녀의 집 앞에 옮겨 놓고 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사랑방인 한양문고로 부리나케 달려가 독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간디의‘위험한’ 평화헌법>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끝나고 서둘러 공원으로 갔다. 매번 약속 시간에 늦었던 그녀였지만 다행히 토론이 일찍 끝나서 먼저 가서 친구를 기다렸다. 늦은 저녁인데도 거리에도 공원 안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침내 친구와 만나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후덥 근한 여름밤공기를 마시며 공원 안 편의점 파라솔 아래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끈적끈적거리고 무거운 습기가 목선을 타고 흘렀다. 친구가 송글 송글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말을 했다.


"여름은 이렇게 끈적끈적해줘야 제맛이지~”

     

원래 그녀는 습하고 끈적거린 여름 날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옷 안으로 흐르는 땀의 불쾌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의 한마디로  한 여름의 날씨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여름엔 땀 좀 흘려줘야 제 맛이지~"


친구는 그녀가 여름의 정석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녀는 이와 같이 모든 상황들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면 세상에 싫어질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면 티셔츠가 흐르는 땀을 모두 흡수해서 온 몸을 휘감는 불쾌함도,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것 같은 무거운 습도도 여름날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맥주 한 캔씩을 쉽게 비우고 또 한 캔을 땄다. 한여름 갈증으로 목이 말라 있을 때 캔 맥주를 따는 소리는 그야말로 낭만의 정석이었다. 손가락 반지처럼 생긴 알루미늄 고리를 당기는 순간 ‘펑~~’ 소리는 청량함을 넘어 ‘톡~~’ 쏘는 것이 상쾌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목에 넘기기도 전에 갈증이 해소될 것 만 같은, 마치 청각이 미각을 덮었다. 맥주를 시원하게 마신 후 그들은 핸드폰에 담겨 있는 재즈 음악을 함께 듣는다. 어둠이 가득 찬 공원은 재즈의 나르시스 한 음악이 덧입혀져 이국적인 공간이 된다.


뜨거운 사막의 바그다드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여름밤과 편의점의 파라솔과 재즈 음악이 끈적끈적 묘한 예술적 컬처로 융합된다. 재즈 음악의 나른함으로  시 공간이 멈춰 섰다. 그녀는 느림의 미학으로 바라보는 삶이 곧 이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Sonny clark의 Deep Night를 들으며 나른한 몸을 플라스틱 의자에 최대한 깊숙이 묻었다. 중세시대의 뜨거운 여름 한낮에 부드러운 새의 깃털로 만든 손부채를 느릿느릿 우아하게 부치며 흔들리는 마차를 타고 느릿느릿 먼지를 뿜고 흙길을 지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