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는 힘
감정을 극복하지 마세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40대였다. 제2의 사춘기로 가장 불 완전했던 시간이 행복으로 여겨지는 그 아이러니라니… 나의 40대는 방황한 만큼 내가 내게 가장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철없고 어린시절의 사춘기와는 달랐다. 나는 이미 어른으로서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 되었으므로.
마음에 무언가를 막 주워 담아야 만족과 충족을 느꼈던 한 때, 나의 40대. 그렇게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길에서, 책에서, 전시관에서, 소극장에서 아무것도 주워 담은 것이 없는 날에는 마음이 불안했고 초조했다. 그래서 길을 걸었고 인사동과 대림미술관 등 값싼 전시 부터 예술의 전당 명화 전시까지 가리지 않고 싸돌아다녔다. 아들이 어릴땐 돈까스와 햄버거를 사준다고 회유해서 데리고 다녔고 그 즈음 같이 방황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지인 언니와 함께 했다. 간혹 남편이 함께 해주었고 때론 홀로 다녔다. 서울까지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그 먼길이 그 때에는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어느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헌정 연극인 <바보햄릿>을 혼자 보게 되었다. 2014년 6월로 기록 되어있다. 그 즈음은 내 우울의 주기였는지, 나라꼴이 참담하여 내 감정이 격앙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연극이 너무도 슬펐다. 내가 애국자라도 되는양 몰입이 되었다. 그 시기에 나는 편파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노무현을 기억하게 하는 <바보햄릿>의 대사가 내 마음을 울렸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연극을 핑계삼아 내 우울의 감정을 털어버리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슬픈 연극을 본다는 것은 맥락없는 눈물을 흘려도 신경쓸 사람이 없어 편안했다. 어두운 공연장은 혼자 감정놀이 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집에 돌아 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그날의 느낌을 정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1시간 30분의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되씹는 잔상이 마음에 큰 충족감을 주었다. 그 잔상을 생각하노라면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잔상은 나를 이상적인 사유로 이끌고 어떤 깨달음에 닿게 했다. 당시 연극을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메모한 리뷰를 찾아 보았다.
<바보햄릿>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치는 헌정연극.
생전에 정치권력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누구도 가지 않았던 외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냉담한 현실과 사투를 벌이다 끝내 뜻을 다 펼치지 못한채 우리곁을 떠난
고 노무현대통령의 참뜻을 다시한번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를…잊지말라”가 아니라 " 나를…버려야 한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그는 이제는 노무현이라는 자신을 버리고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
실천하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현재는 감상적 맹종을 할때가 아니고
자기의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참여시민이 되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 노대통령 목소리와 배우의 몰입연기에 울컥!!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정말이지 혼자와서 다행이다.
그 때의 시간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내게 외로움은 즐거운 것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무기로 자연의 길에서 또는 도시의 골목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나누는 진솔한 대화가 좋았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공허한 나를 채워 주었고 나의 진정한 벗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사랑한다. 오히려 방황을 벗 삼았던 사무치게 외로웠던(?) 아니 풍요의 감정이 넘쳤던 그 시절이 그립다. 너무 많이 싸돌아 다녀서 저절로 단단한 복근이 생겼고 마음의 근육이 생긴 그때가 그립다.
나는 내 감정을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내 감정은 마음이 흐르는대로 방랑자처럼 떠 돌아다녔다. 그 시절이 행복의 기억으로 남는다. 무모할 만큼 내게 솔직해서 불행했던 그 시간이 그리움과 행복으로 추억 된다. 나름 원없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흔들리는 반동이 적어진 느낌이었다.
감정이란 것은 억압하면 억압할 수록 언젠가는 더 크게 터지기 마련이다. 팽창한 풍선이 더 위험한것처럼. 감정도 그러한 것이다. 바람 구멍이 난 풍선은 터지지 않는다. 감정에도 바람 구멍을 내야 한다. 감정이 넘칠때마다 그때 그때 피쉬쉬 빠져나갈 감정의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쩌면 내겐 나의 40대가 바람 구멍 같은 시간은 아니었을지. (2022.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