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는 힘
그렇다. 마음에도 습관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 온 마음의 습관대로 보여지는 것 같다. 밝은 사람, 에너자이저 같은 사람, 고요하고 잔잔한 사람, 우울한 사람. 모두가 마음의 패턴이 반복되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울도 마음의 습관 같은 것이다.
나의 삶의 주기를 보면, 나에게는 우울의 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우울뒤에는 활력의 주기도 함께 따라 온다. 에너지 넘치는 파이팅 뒤에 피곤으로 다운되는 우울이 찾아왔던가.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한참을 열의있게 살다보면 어느새 지쳐있는 내가 있었다. 이유로 다운되어 살다보면 어느새 힘을 내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러한 내 삶의 패턴을 알게 될때까지 반백년이 걸렸다. 이렇게 미성숙하고 철없는 내가 벌써…… 믿기지가 않지만.
1년 6개월쯤 열심히 일을 하다가 작년 7월에 제풀에 지쳐 휴식기를 가졌다. 나의 삶의 주기대로라면 나는 진한 피로감으로 우울하거나 침잠의 늪에 한동안 빠져 살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들들이 귀국한 후라 미루어 두었던 엄마노릇을 하느라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자책과 반성을 하며 틈틈이 짬을 내어 우울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나는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한 펌프질을 시작했다.
나는 우울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우울을 가볍게 앓아서가 아니다. 피로에 지쳐 몸에 에너지가 빠지거나 마음이 다운되는 일이 있을때 아주 깊게 앓곤 한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 나는 또다시 불끈 힘을 낸다. 다시 저장된 에너지를 쓸 곳을 찾아 헤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럴때 꼭 주의를 해야 한다. 에너지가 넘친다고 무리한 계획을 세우면 우울의 주기가 너무 빨리 찾아온다는 것. 이렇게 고무줄처럼 탄력있는 성격이다 보니 지금은 내마음을 나 스스로 나름 잘 극복할 줄 아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다.
40대에 나는 긴 방황을 했다. 그래, 지금 생각하니 나의 두번째 반항기가 찾아왔다. 그때 나는 그냥 맥없이 우울한 것이 좋았다. 세상과 단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했고 접촉했다. 지금은 죽고못사는 드라마도 전혀 보지 않았다. 우울모드의 음악만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원래 내스타일이긴 하다. 조금이라도 내 모드가 아니면 주변 소리가 모두 혐오의 소음처럼 들렸다, 그게 싫어서 이어폰을 꼭 착용하고 다녔다. 완전히 나만의 세계 속에 빠져 살았다.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어느 주말에 루이저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으며 우연히 나얼의 ‘바람기억’을 들었다. 두 우울모드 컨셉이 찰떡 궁합이었다. 특히 음악의 뮤비와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렸다. 그 뒤로 나얼의 ‘바람기억’이 너무 좋아져서 나는 이케아에서 산 연약한 흔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을때마다 들었고 잠자기 전에도 들었고 햇빛 좋은 날 커피를 마실때도 들었다. 그 부작용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남편이 악몽을 꾸었다.
남편이 정신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단다. 옆으로 나란히 3명씩 3줄로 서서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는 꿈이었다고…… 굉장히 무섭고 떨렸다고……
그때의 나는 습관처럼 내 마음에 우울을 붙여두고 살았다. 외로움을 타고 고독을 질겅질겅 거만하게 씹어 나와 다른 세계관과는 거리를 두었다. 되려 그런 내 마음이 좋았다.
그때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때의 내가 좋다. 스스로 고립이 되어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간 소중했던 시간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기분이 다운되어 있더라도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편안한 상태에서 즐긴다. 이 불안한 몇일을 살다보면 나는 다시 힘을 내게 될 것을 아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을 감기처럼 앓고 살아왔던 것 같다. 사실상 감기는 걸리지 않으면서 감기대신 우울을 앓았다. 감기라는 가벼운 통증, 내겐 우울이 그렇다. 그래서 마음의 습관이 된 우울의 주기를 기쁘게 맞고 쉽게 털어버리는 탄력있는 여자가 되어 있다. 감정에 탄력이 있다는 건 별로 기분이 좋은 표현은 아닌듯 하나(감정기복이 심하다?) 그런 과정들이 나를 마음이 탄력있는 여자로 만들었고 덕분에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아닌지……
나는 지금도 가끔씩 찾아오는 감기 같은 나의 습관성 우울의 주기를 기분 좋게 반기고 있다. 내 삶의 변환점, 성장을 위한 진통의 시간이라고나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