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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Jul 16. 2022

아들 여사친이 내 팬이래요

가족돌봄 - 환대를 위한 집수리


“오늘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놀다 갈 거예요.”

“그래? 언제?”

“조금 후예요.”


큰 아들 친구들의 방문은 지난주에 통보받은 일이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부랴부랴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들 방을 먼저, 그리고 거실을 휘리릭 둘러보며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했다. 헝클어진 내 머리와 옷매무새도 확인할 사이도 없이 아들 일행이 들이닥쳤다. 여리여리 해 보이는 여자 친구 한 명과 미소가 아름다운 훈남 인상의 남자 친구 한 명이 현관에 서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당연히 남자 친구만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기뻤다. 일명 여사친을 집으로 데리고 와 준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이 남편과 나를 그리 꽉 막힌 꼰대로 보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 여자 친구가 올지 몰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어서 와요. 반가워요.” 라며 최대한 침착하고 반가운 기색을 전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어 여사친과 나 사이에는 인간관계에서 그렇게도 중요하다는 ‘티키타카’가 제법 잘 맞는 인사들이 오고 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너무 예쁘세요.”

“아이고, 그리 봐주니 고마워요.”


여사친은 내 손을 두 손으로 살포시 잡으며 공손하게 악수를 청하며 말을 이었다. 공손한 태도가 제법 어른스럽고 믿음직했다. 친구들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니 마냥 철없어 보이던 내 아들이 어른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현실감에 휩싸였다.


“ 제가 어머니 팬이에요. 팬!”

“응? 이건 무슨 소리야. 나를 어떻게 알아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호호호, 우리 아들에게 이렇게 멋진 친구들이 있었네.”


우리는 조금은 시끌벅적한 인사를 다정하게 나누었다. 여자들끼리 호들갑 떠는 것을 보다 못한 아들의 남사친이 “애가 사회생활을 참 잘해요. 하하하.”라며 웃음기 있게 한마디를 거들었다. 활짝 웃는 얼굴이 아름답고 편안해 보여 좋은 사람 냄새가 났다. 여사친의 칭찬세례로 조금(?) 많이(!) 붕 뜬 내 마음이 푸시 쉬쉬 가라앉았다. 그렇지 그렇지!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다.


아들과 친구들은 아들방에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이 젊은이들이 먹다 남은 위스키와 토닉워터 몇 병이 그날의 흔적으로 우리 집에 남겨졌다. 여사친은 밤 12시가 되자 집으로 돌아갔고 남사친은 하룻밤을 묵고 갔다. 내가 여사친을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하자 아들이 택시 태워 보내면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자 여사친은 “어머니와 데이트할 기회를 네가 왜 빼앗아?”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나는 맥주 두 캔을 마신 것이 생각나서 여사친을 데려다 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어? 저 아이 나를 정말 좋아하나?’라는 주책맞은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남성에게 구애받은 것보다 더 설레었다. 나도 아들의 여사친과 데이트할 뻔한 그 기회가 아쉬웠다. 여사친이 생각하는 내 아들의 이야기를 무척 듣고 싶었다. 아들은 평소 내게 대면대면 대했지만 친구들에게는 나를 은근히 좋게 말했나 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 알아주지 못하고 자랑스러운 엄마 노릇을 하지 못했음에도…….


아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친 이 해프닝은 아들과 나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여사친의 ‘팬’이란 말은 아들이 나에 대한 매력을 어필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표현이 아니겠나. 이날 이후 나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일말 사라졌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나는 아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 아들이 안심이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내 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들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어떤 친구를 만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다만 아들은 한참 내가 겪었던 청년 시절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을 것이란 걸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들 옆에서 무척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도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아들이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로 했다. 다만 아들에게 우리의 초조함을 들키지 않을 만큼의 관심과 응원의 말은 잊지 않고 있다.


“아들아, 엄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아들 편이야.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그땐 꼭 엄마를 찾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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