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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Oct 14. 2022

환대를 위한 집수리

가족 돌봄

작년부터 우리 집 집수리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았다. 남편은 이에 소극적이었다. 내가 어린아이 생떼처럼 한번씩 투정을 부릴때마다 남편과의 다툼이 있었다. 꼭 다툼이 있은 후에는 남편은 미안했는지 “왜 이렇게 보채? 조금만 기다려봐. 기다리면 내가 다 해준다 했잖아.” 라고 종전을 선언했고 그때마다 우리집 수리는 조금씩 진척이 되었다. 하지만 올봄이면 다 해주겠다고 하던 남편은 너무 비협조적이었다.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나는 사전에 남편과 함께 알아 보았던 시공업체를 불러들여 실측을 했고 집수리를 밀어 부쳤다. 그렇게 우리집 수리가 시작되었다.


우리집은 살고 있는 집이어서 집수리를 하기에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다. 수리비용 문제가 아니더라도 한꺼번에 수리할 수 없는 악조건이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갈 형편도 아니고 정이 든 이 동네를 떠나기도 싫었다.

나는 낡은 우리집에 대한 애정이 많다. 오래 정을 붙인 것에 대한 애착 형성같은 것이다. 생을 다한 자동차도, 붉은 패브릭 소파도, 우리 곁을 떠날때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한 내 소중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베어 있기 때문이다.


큰아이를 낳고 코엑스 가구 박람회에서 구입한 붉은 패브릭 소파는 나와 큰아이의 놀이터이자 휴식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유아용 비디오를 보며 아이를 안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초등학교 2,3학년때까지 사용했던 것 같다. 당시 꼬꼬마 둘째는 소파를 집밖으로 내보낼때 “그동안 고마웠어. 잘가.”라고 편지를 써서 소파 품에 쏘옥 넣어 주었다. 아이의 그 마음에 내마음이 더 뭉클했다. 나는 이렇게 소중한 우리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낡은 우리집이 하루 빨리 다시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왔으면 싶었다. 집수리 문제로 남편과 다툼이 있을때마다 나는 속으로 푸념했다.


'1년을 기다렸는데 얼마나 더 기다리라고…….’


아이가 어릴때 또 내가 젊을때 나는 이웃과 내 가족들을 잘 초대했다. 공간이 깨끗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시간을 나눌 수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집 환경이 대책이 없어지자 다른 사람들이 우리집에 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가끔 아들들이 우리집에 친구를 초대 할때도 부담스럽다고 말을 했다. 그래도 아들들은 꿋꿋이 친구들을 데리고 왔지만 나는 어느새 사람을 환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우리집은 집수리가 완성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환대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요즘 세상이야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일이 많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환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환경에 따라 타자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가 달라 지는것 같다. 우리 집 수리는 내 마음의 공간을 넓혀 주었다.


“여보, 우리 조카가 걱정이야. 이제는 우리집도 안정이 되었으니 내가 얼마간 데리고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여건이 되면 그렇게 해. 제주 한달살이를 조카를 데리고 가는 건 어때?”


헉…… 이번엔 남편이 너무 앞서갔다. 우리 자식들의 문제도 만만치 않아서 남편한테 면박을 당할 줄 알았는데 너무 잘 이해를 해줘서 고마웠다. 우리집 환경의 변화가 남편에게도 닿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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