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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Sep 24. 2022

돌봄에서 히피적 삶으로

서문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이다. 이 일은 내가 여성의 입장에서의 ‘돌봄’을 진정성 있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글쓰기를 훈련하며 임 했던 직업이기에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 인생에서 ‘돌봄’이라는 화두를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누군가를 보살필 수 있는 존재로 자라났고 온 기류의 순환처럼 나도 내 가족을 돌보며 또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현재에는 돌봄 노동이 내 직업이 되어 있다. 그만큼 돌봄은 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 사회를 돌보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나는 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돌봄은 우리가 따로 분리하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 들어 있다. 정치도 노동도 여행도 유희도 일종의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한 행위이다. 행정이라는 기반 아래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는 일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돌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돌봄이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사람을 보살피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일임에도 사회의 낮은 계층에 일임이 되어버린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하여 나는 우리의 삶이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존속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나는 이 책의 섹션을 1부 가족돌봄(환대를 위한 집수리), 2부 사회돌봄(너의 오늘을 축복해), 3부 자기돌봄(내 안에 ‘지중해’ 있다)으로 나누었다. 이 수순은 내가 걸어온 삶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공식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처음 가족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부모가 나를 키우고 나는 또다시 내 자녀를 키운다. 가정 안에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의 고리를 체화해 간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배운 그 보살핌의 정서는 사회로 확장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노동으로, 정치로, 행정으로, 지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며 살아간다. 그 시스템으로 사회 저변에 깔린 인간 존엄의 추락을 건져 올리는 일이 사회 돌봄일 것이다. 성숙된 사회란 돌봄이 삶에서 어느 수준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불균형한 사회시스템이 불평등한 사회를 종용해 왔다. 그 기울어진 구조 안에서 상처와 회복이 반복되고 순환하며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자기 돌봄의 단계이다.


자기 돌봄은 가족 돌봄, 사회 돌봄의 과정을 지나야 진정한 자기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내가 성숙해져 가는 일종의 자기 성찰과 같은 것이다. 내가 내게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위로하고 안아 주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일 때,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한 지,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나를 알아채는 행위이다.


나는 가사와 육아, 사회 활동을 하며 수많은 갈등과 마주했다. 사람은 갈등이나 문제가 일어 날때 주변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회고의 시간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돌봄의 마음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불편하고 마음이 쓰여!’라고 나와 타자에게 전하는 자기 돌봄의 표현 방식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되어 고민한다는 , 갈등 한다는  자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시그널이 아닐까?


살아오면서 느꼈던  모든 외적 갈등 유발이  자신을 돌보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괜찮은  삶을 위해, 나의 평온을 방해하는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던 흔적들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삶과 관계에 미숙한 히피펌 여성이 아무 준비도 없이 가족 돌봄과 사회 돌봄을 겪어오면서 자기 돌봄의 단계로 들어섰다. 사회와 타자로 부터 받은 상처들을 인문학과 글쓰기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힙하게 보여주려 한다. 진지함도 잊지 않아 길을 잃지 않는다. 일상의 자유와 일탈로 치유된, 해방된 자기언어를 찾아 사람을 환대하는, 좀더 전문적인 돌봄자로서 가족과 사회에 다시 환원 되고자 한다.


이 책에는 이런 나를 내 방식대로 돌보는 부끄러운 내 마음들이 들어있다. 더불어 가족과 사회의 경험 속에서 건져 올린 나를 돌보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하고 있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던 어린 나로 다시 돌아가서 이제는 내가 나를 정성껏 돌보아야 할 때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를 잘 돌본다는 것은 내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얼마나 유기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아서 클라이먼 교수(‘care’의 저자)는 “돌봄은 사회를 하나로 이어주고 삶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고 환자를 간병하고 장애인을 돕고 죽어가는 사람을 지키며 우리 자신을 돌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와 사람을 돌보는 일이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성숙된 나로서 서투른 나를 이해하고 내 안의 고인 상처를 닦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사회와 가족을 돌보는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내게 치유된 자유로운 자아가 없다면 타인은 물론 나 자신 조차도 돌볼 수 없기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쓰며 내 몸에 밴 나의 상처 난 어린 자아를 쓰다듬어 고였던 슬픔을 흐르게 했다. 이는 내가 회복되는 과정이며 자기 돌봄의 가장 유능한 스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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