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돌봄 - 너의 오늘을 축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탓하기보다 시스템 자체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개인만을 책망하는 것은 오히려 진짜 문제를 감추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정혜영의 어른이 되면, 166쪽>
최근 홀트의 성인발달장애인 보호시설에서의 사회복지사사의 상습 학대 정황이 수면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당연히 사회복지사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혜영 작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만을 책망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를 문제제기한 것이다. 그들의 노동환경은 어떠했던가. 인력은 충분한가. 왜 상습 학대를 방치할 정도로 올바른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나. 발달장애아 등 특수한 돌봄에 따른 노동시간과 보수는 적절했는가. 정기적인 전문교육은 받고 있었나. 혹은 아픈 사람들의 고충을 그대로 흡수해야 하는 이들도 정신과 상담이나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흔히들 인권을 다루고 있는 돌봄 노동자를 3D업종이라고 말한다. 3D업종이라 함은 보수는 적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구조를 말한다. 어느 지인의 아들은 대학에서 사회복지 전공을 하다 그만두고 경찰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경험해보니 적은 보수로 온갖 궂은일을 하는 일이 사회복지사라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내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활동 전에는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만이 너무 커서 무조건 그들을 도와야 할 환경개선과 인식 전환이 최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돌봄 노동자의 현실도 함께 생각한다. 사람을 돌보는 일은 당연히 소중하며 많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신체와 정신이 컨트롤이 안 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세심한 일인가.
발달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은 인내심과 체력의 싸움이다. 또 정신력의 문제다. 정말 선한 마음으로 접근을 했다 해도 매일매일 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며 좌충우돌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내심이 바닥나는 날이 찾아온다. 한두 달, 아니 1년쯤은 잘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일분일초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면 안 되는 일이고 발생하는 모든 충격들을 보호자가 그대로 흡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컨대 이런 순간들이 사건사고와 함께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면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작년 20대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을 둔 어느 50대 가장은 자신이 예비 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중증 발달장애인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을 한 바도 있었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사회복지사나 돌봄 노동자가 값싼 임금으로 그 고통들을 모두 감당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돌봄은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다. 환자의 다변하는 감정, 행위 모두를 의연하고 요동없이 받아낼 수 있는 좋은 인격은 기본이고 좋은 쿠션 같은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돌봄 일을 하기 위한 이런 인격 관리는 어느 전문직종의 전문지식보다 더 어렵고 가치가 있는 일일 수 있다. 인격수양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좋은 인격은 삶 전체를 통해 쌓아 온 커리어이고 수양된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얼마만큼 인정해주고 값을 정하고 있는가. 이 또한 힘 있는 자-돌봄은 이 사회를 조직 구성한 권력과 가부장제의 관습에 의해 여성 또는 하급계층민에게 전가된 노동이다-들에 의한 전가된 희생은 아닐까?
공공의료 서비스가 잘 작동되지 않고 있는 미국은 돌봄 노동을 주로 유색인종이 도맡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돌봄 노동에 있어 외국 노동자의 비중을 늘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서 내놓은 대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중장년의 여성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지금, 돌봄 노동을 하겠다고 교육을 받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금새 그만두게 된다. 인력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3D업종처럼 돌봄 인력에 투입하는 자본과 노동환경과 사회인식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돌봄은 재난상황에서 국민의 생명 및 안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필수 노동자이다. 하지만 이들은 저임금, 산재위험,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직업이라지만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 인력이 3D업종이라 천시받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듯한 이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환자의 신체와 감정까지도 항상 대면하고 케어하는 가장 섬세한 일인 돌봄 정책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돌봄노동이-실제로 서비스 이용자가 활동지원사를 가사도우미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적합한 대우를 받으며 공평하고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지금의 돌봄 노동처럼 약자 위에 약자가 생성되는 또 다른 희생을 돌출해내는 것이 아닌 모두가 ‘불편’과 ‘평안’을 공평하게 함께 나누는 사회는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는 있는가. 우리는 장혜영 작가의 말처럼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되는 사회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