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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Oct 14. 2022

나는 용기 있는 사람

지난밤 글쓰기반 회식자리에서 서로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는 시간이 있었다. 글쓰기 벗 나경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참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나경호는 이 말을 전에도 내게 가끔 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용기가 있다고?’ 반신반의하며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겉으로는 튼튼해 보였지만 항상 한방에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어설 준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나 오늘은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내가 어떤 면에서 용기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인 걸까. 나는 성공하지도 않았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냥 저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인데……. 찰나, 나는 내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인정하기로 했다.

자그마치 이 험한 세상을 50년이나 넘게 살아왔다. 변변치 않은 이 허약한 육신으로 별 탈 없이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그 얼마나 대견하고 그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나는 삶에 자신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름 씩씩하게 잘 살아냈다. 그것만으로 나는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인것이다. 내 인생은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산다는 것은 폼을 재는 일이 아니다. 내 형편에 맞게 그냥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남들처럼 폼나게 살고 싶어서 지난 내 삶이 그렇게도 힘이 들었나 보다. 아름다운 여자들처럼 더 아름답게, 부자처럼 더 풍요롭게, 자식들을 그 누구처럼 더 출세시키고 싶었나 보다. 뽐내는 사랑을 부러워했나보다. 자랑하는 삶을 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 욕망들 때문에 그렇게도 괴로운 시간들이 있었나 보다.


나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해 준 것은 다름아닌 내 가족들이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죽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가족. 내가 지금 돌보고 있는 차지증후군 J의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이 계시니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해요.” 그런 가족. 너무 아픈 말이었지만 나는 슬프게 듣지 않았다. 일생을 살면서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 없고 대부분 잘 이겨내며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힘으로. 곁에 있는 사람의 힘으로.  


'까지껏 그냥 주어진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지, 산다는 것이 별거인가?'


삶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것이다. 이 태도와 자세는 내 남편에게 배웠다. 지금의 나는 비교적 잘 나갔던 과거보다 지금의 내 남편의 삶이 더 커다랗고 아름다워 보인다. 삶을 단단하게 살아내는 모습에 숙연해 지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돌봄 노동에 종사 하게 되었을때, 나는 자존심을 많이 다쳤다. 남편도 가족을 위해 버스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의 심정이 이랬을까. 가슴이 아팠다. 내 남편은 40대 중반에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마을버스기사가 되었다. 버스기사라는 제2의 직업을 오로지 우리 가족을 위해 선택했다(지금은 서울버스기사로서 자신의 직업을 너무나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남편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라 하기에는 너무 미안함이 컸다. 그래서 나도 더 잴것없이 더 고민할것 없이 주어진 일에 주저없이 임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니까. 


마을버스 기사의 근무환경은 가장 열악하다. 남편이 마을버스 근무를 시작한 1년차엔 1일 근무, 1일 휴일의 격일제 시스템이었다.(1년쯤 근무를 하다 1일 2교대로 바뀌었다) 2시간 이상 운행하고 차고지로 들어오면 휴게시간은 5분 정도, 화장실 갈 틈도 없고 식사시간도 변변히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 16~17시간의 노동을 버틸 체력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얻은 요로결석은 이 시간들의 훈장이다.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 지난해 마을 버스 20대 노동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표면적 이유는 힘든 근무환경과 선배기사들의 따돌림이라고 했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호의적인 마음들을 주고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3년을 버텨냈고 남편의 종착역인 서울시내버스 기사가 되었다. 마을버스 노동자나 서울시내버스 노동자는 같은 직종이다. 그러나 두 부류의 노동자들의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버스 노동자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직업에 대해 만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중요성이다.


나는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좌절과 절망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을 찾아간다면 삶은 충분히 극복될 것이며 그렇게 어려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발을 맞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지인이 말했다.


“저는 이제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한번 바닥으로 떨어져 보니 삶에 대해 더 큰 용기가 생겼어요.”

“저도 이제 삶이 두렵지 않아요. 그래서 안정감이 생긴 것 같아요.”


나는 과거보다 더 잘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 대하는 태도가 ‘용기백배’가 되었다. 안정감으로 마음에 큰 숲을 이룬 느낌이다. 실패와 시련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만족감을 찾아주고 소소한 행복의 참 맛을 알게 해주니 말이다. 친구도 나도 시련된 삶을 일찍 겪고 지금의 나이에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 했다.


나는 내게 주어진 50년의 생을 내 방식대로 잘 극복 했고 무사히 잘 건너왔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삶이지만 내게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옳은 방식인지도 알게 되었다. 삶은 그냥 물흐르듯 살아도 무방한 것임을……. 삶이란 것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더 큰 것을 움켜 쥐고 싶어 했던 나의 한 때가 귀엽게 느껴졌다. 사회 기준대로 잘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얼마나 두렵고 힘들게 했는지를 비소로 알게 된것이다.


인생을 꼭 대단한 각오로 힘을 주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이 깨달음이 내 용기의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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