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과 예민함은 나의 벌거벗은 자아이다. 나는 나의 벌거벗은 자아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혀서 사람들이 보기에 무난하게 꾸며서 데리고 다녔다. 상냥한 모습을 비추고 모나지 않도록 둥글게 굴러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정체성처럼 굳어진 까칠한 예민함이 다 없어지긴 무리였나 보다. 간혹 나의 벌거벗은 자아가 툭 튀어나올 때마다 진땀을 흘리곤 했다. 휴….
어릴 때야 집안에서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애쯤으로 해석되었고, 어른이 되고 사회에서는 내세울 일 없이 소심하게 살았다. 주관적이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그럭저럭 타협하고 사는 일에 능했다. 그런 나를 내가 보아도 비굴해 보였고 위축되어 보였다. 그렇게 이중적 자아를 가진 나는 늘 흔들렸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고 싶은 주관적인 나와 타협하는 사회인으로서의 내가 충돌했다.
내가 추구했던 것들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바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진리는 변하며 완전한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 까칠한 기질로서의 내가 옳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타협하기를 포기했다. 그들을 밀어냈다. 꽉 막힌 터널 속에 혼자 고립된다 할지라도 내 갈 길을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 했다. 나는 어차피 혼자였으니까. 남자가 99.9%인 한국노총에서. 모두가 나의 갑인 노조대표자들 중에 아무 힘도 없는 내 편에 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틀린 그들에게 비굴해지지 않으리라.'
나는 부딪혔다. 어쩔 수 없이. 나의 까칠함을 따라서. 그들의 우습고 하찮은 권력 앞에 더는 비굴해지기 싫어서 타협의 두꺼운 화장을 지우고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계획한 것보다 조금 빠른 7년 차에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남편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다니고 싶었지만.
내가 퇴사하던 날 그들은 퇴직금과 한 달 치 월급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그들이 이것마저도 주지 않을 가봐서 조용히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의로 퇴사를 했지만 그 뒤로도 너무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당당히 말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질책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심하여, 여전히 소심한 투쟁을 할 뿐이었다. 정치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공식적인 민원을 넣어 해결하고자 했다.
'근로계약서도 없고 4대 보험도 없는 한국 노총이라니….'
그랬더니 저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 비로소 내일에 관심을 갖고 찾아왔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 변해갔다. 나로 인한 변화인지 수순에 의한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떠난 자리에는 작은 파란이 일어났다.
한국노총 어느 지역지부가 20년 만에 비로소 사무직원에게 4대 보험을 적용시켰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유명무실한 두 곳의 노동문제 상담실의 건, 대표자 세미나라는 명목 아래 무의미의 축제(?)들로 흘러들어 갔던 해외연수 지원금의 쓰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다. 왜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이 해외여행(세미나를 핑계 삼은 명백히 도 여행이 목적인)을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손으로 세미나 보고서 한 장도 작성하지 못하는 그들이.
4대 보험 부재가 내가 퇴사한 근본적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이 문제였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가장 근본적 질문이 이 속에 있었다.
“당신들 노동운동 하는 사람 맞아?”
어찌 되었든 나는 결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과정은 불편했다. 문제를 말하는 나에 대한 시선이 따가웠고 조직에 반기를 든 나만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그때 내가 좀 더 당당하게 그들 앞에서 내 권리를 주장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하는 마음이 더 크게 남았다. 7년 내내 시간제 노동자로 휴일수당도 없이 정규직처럼 일을 했던 최저임금 노동자의 그 자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나는 아무 말을 못 했을까. 소속감이 무엇이라고 이기적이고 속된 그들이 안타까워 내 권리를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선량함을 가장한 생존을 위한 비굴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은 나이 듦의 효과인지 깎이고 둥글게 되어 내 속을 다 보이고 살고 있지는 않다. 조용해지려 노력하고, 격동 없는 마음이길 바라고, 욕심 없는 삶을 살고자 애를 쓴다. 사회와 거리를 두고 나의 마음을 보살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평온하다. 까칠함이 부딪칠 환경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일들의 끈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땐 이런 평온한 내 마음이 미안할 때가 있다. 까칠하게 저항하는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 높여 투쟁하는 그들. 그들처럼 말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까칠하고 예민한 그들을 결코… 결코… 환대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에서의 내 상사, 국장이란 사람이 내게 충고랍시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을 너무 잘하려 들지도 말고, 너무 열심히도 하지 말 것이며, 알아도 모른 척, 보고도 못 본 척, 그림자처럼 살라"는 정언명령. 열심히도 하지 말라니. 나는 그림자처럼 없는 듯 숨 쉬고 살아야 그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 숨길 일이 많았을까.(?) 그 당시 안희정의 문제가 불거질 때였는데 그와 너무 닮아 있어 나는 너무너무 놀랐었다. 안희정 그도 그의 여비서에서 "그림자처럼 살라"고 말했다지.
나는 이런 이상한 세상을 향해 분노를 잃지 않는 까칠한 사람이 당신이라면, 당신을 열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