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제가 초심을 잃었습니다

by 헬로해피 최유영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굳은 각오를 표상하는 말로 ‘초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선거철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인 것도 같다. 그리고 오래된 익숙함으로 일에 대한 창의와 열정이 식어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채찍 하기 위한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구호와 함께. 이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처음의 마음가짐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세상을 만나면서 무수한 첫 만남을 하게 된다. 첫사랑, 첫 직장, 첫 출근, 첫 아이, 첫 여행, 다양하고도 많은 첫 경험들. 처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함께 품고 있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에 힘을 주어 다짐해 보곤 한다. 그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각오와 기대가 바로 ‘초심’이다.


익스트림 같은 처음의 경험이 반복되어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관계의 삶이다. 그 익숙한 삶이 쌓여 우리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다 익숙함이 나태함으로 느껴지는 어느 순간이 찾아오면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자극과 회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매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체된 곳에서 영혼 없는 삶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영혼이 없다는 것은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것, 살아있지만 죽어 있는 삶이다. 변화와 성장이 없는 삶이다. 그렇게 한번 멀어진 첫 마음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처음이 주는 설렘과 긴장의 감정들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마음은 오직 처음에만 찾아오는 것 아니던가.


모든 것은 현재와 같은 찰나이며 점·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다.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과의 첫 대면을 한다. 익숙해져 반복되는 평범한 오늘은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다. 100세 노인도, 1세의 유아도 오늘을 처음 만나게 된다. 나의 오늘, 당신의 오늘은 모두 처음인 것이다. 오늘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경이로이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의 감정, 느낌, 생각, 행동,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간과 현상의 흐름은 첨단의 과학이나 어떠한 신비한 주술을 사용한다 해도 처음과 똑같은 상황으로 되돌릴 수 없다. 아무것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금과 같은 찰나이며 점·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과거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과거로 사라져 가는 현재의 ‘변함없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식했기에 ‘초심’을 숭고한 무엇으로 생각해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초심을 잃은 어떤 관계가 끝이 난다 해도 너무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쿨 하게 떠나면 된다. ‘초심을 잃는다.’는 것은 ‘변화를 멈추었다’와 같다. 초심은 ‘불변’을 주장하지만 삶은 ‘변화’를 원한다. 고로 우리가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라이브함이 사라진 것들과 이별을 고(告) 해야 한다. 변화를 꿈꾸어야 한다. 대개 '변화'는 우리를 좋은 삶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또는 당신이 초심을 망각하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라이브함을 잃고 있는 상태라면 그 자리에 또는 당신 자신에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그 자리를 과감히 떠날 것을 권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는 초심이 소멸되는 순간을 알아챌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멈춰야 할 순간을 알아채고 떠나갈 용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제가 초심을 잃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떠나갈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모두를 위한 삶의 미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떠나 왔다. 그리고 또 그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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