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헬로해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해피 Mar 20. 2024

뻔뻔하게 살아서 치유받기

뻔뻔하게 살아서 치유받기


10년 된 독서모임에서, 지금 적극적으로 참여 중인 여성 멤버는 나 혼자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곳에서 홍일점이 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1회 책을 읽고 모여서 독서토론을 한다. 어제도 히로세 다카시  ‘제1권력’을 읽고 토론했다. 제목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는 주로 사회∙과학서 부류의 책을 읽는다.

나는 고전이나 소설, 에세이 혹은 가벼운 철학 책을 혼 독하다 한계를 느꼈다. 때마침 신영복 교수의 <담론>에 관심을 갖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만난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2회, 여성 멤버가 많은 모임이었다. 1년 정도 유지 되다가 인원이 점점 줄어서 사회∙과학서를 주로 읽는 지금의 모임과 동맹을 맺고 지금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과정에서 여성 멤버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래도 사회∙과학서가 주가 되다 보니 여성분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모임이 좋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나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사회∙과학서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혼자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사실은 나의 뻔뻔한 태도가 그 비결일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친구가 없지만…… 어쩌고 저쩌고.”

남편이 대답한다.

“내가 보기엔 너 친구 많은데?”

내가 친구가 많다고? 금시초문이다. 나는 늘 친구가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해 봤다. 정말 어느덧 내 곁엔 괜찮은 관계의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내 삶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그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나를 변화시킨 계기가 있었다. 바로 앞서 말한 독서모임이다. 우리 모임은 우리 동네 보물, 한양문고에 적을 두고 있다. 한양문고는 각종 문화활동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곳이다. 다양한 독서 동아리는 물론 북콘서트, 하우스 콘서트, 인문학 강의, 미술 전시회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들이 준비된 곳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문화공간을 드나든 것도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아이들 문제집만 잔뜩 샀던 서점인데 내 인생의 습관을 180도 바꿔준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뻔뻔한 태도를 실험할 수 있었던 공간이다. 

독서 모임을 하며 한양문고에서 여는 다양한 강연이나 문화행사도 적극 참여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혼자 찾아가서 부딪혔다. 강연의 특성상 혼자 참석해도 무방한 곳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참석하는 사람들을 보면 친구들끼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 보고니 낯선 곳에서 혼자서도 아주 잘 적응하는 사람이 바로 나란 사람이었다.

그토록 소심하게 살던 내가 그런 자신감 아니 뻔뻔함은 어디서 솟아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다. 이미 대학로 공연이나 그림 전시회를 보러 혼자 다니던 내공이 있었던 터라서? 그러나 내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나의 실천력,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뻔뻔한 DNA를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고통의 폭발이 내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었던 뻔뻔한 DNA를 분출시켜 버린 것은 아닌지?

그 뻔뻔한 나의 태도가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여자인 내가 노총에서 제법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내게 내재되어 있던 뻔뻔함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들 무리와 상관없이 내 필요에 의해 나는 견뎌낼 수 있었으니까. 또 SNS를 하며 세상밖으로 나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며 나를 다독일 수 있었던 것도, 글로 나를 쓰는 훈련을 했던 것도, 세상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마도?

더 놀라운 것은 나는 그렇게 뻔뻔하게 살아서 치유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태도로, 내 방식대로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치유된 자로 살고 있었다. 온전히 나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자신감이 생겼을 정도로……. 이처럼 ‘뻔뻔하게 살아 가기'는 내가 돌봄 노동자가 부끄럽지 않은 이유도 되고, 소셜기자로 활동하며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비밀 병기도 되었다.

지금 독서모임 활동도 걱정되는 부분이 없진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 준 내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래도록 책 읽기를 함께 할 사람들은 우리 독서모임이 매우 강력하다.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좋아한다.  

또 하나의 근사한 이유가 있다. 여성운동의 실천이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성집단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의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성별이 아닌 인간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여성운동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한 개인의 여성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여성들은 자신의 개인적 태도는 바꾸지 않으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 또한 내가 뻔뻔한 DNA를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고 행동은 아닐지?

여하튼, 만약 내게 뻔뻔한 DNA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좋은 관계의 사람들을 다 놓치고 나는 아직까지도 내 환경과 주변을 탓하며 화를 표출하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 혹은 자존감이라고는 단 1도 없는 찌질한 모습으로 방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구원할 수 있고 자기 상처는 자기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 말을 다시 새긴다. 자신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뻔뻔하게 살아 가기’이다. 치유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뻔뻔하게 살아갈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매거진의 이전글 요조의 Sunday, 그리고 나의 일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