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orning

by 헬로해피 최유영
일산호수공원의 튤립


일요일 이른 아침, 햇빛 차단용으로 새로 구입한 모자를 쓰고 요조의 담백하고 풋풋한 음악을 들으며 호수 공원을 걸었다. 남편은 오늘도 새벽같이 산으로 떠났다. 혼자 남겨진 나도 오늘은 공원을 걷고 싶었다. 챙이 큰 아이보리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진 초록 점프슈트를 입었다. 이어폰도 챙겼다. 소품 몇 개를 더하니 여행이라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내 미소를 담은 셀카도 찍었고 이른 아침 찬바람에 아직 꽃잎을 열지 않아 입을 꾹 다문 튤립 사진도 찍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호수의 아침은 싱그러웠다.


요조의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아날로그적인 깨끗하고 소박한 그녀의 목소리와 노랫말이 마음에 들었다..


비 온 뒤 새벽 공기처럼 말랑하고 풋풋한 감성에 젖고 싶었다. 쌓인 시간을 잊고 젊은 감각의 세포들을 되찾고 싶었다. 젊은 감각의 예술을 접하다 보면 나의 세월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감각이 싱그러워질 마법 같은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함께 여행할 아티스트로 요조를 선택했다. 한기명과 인연이 있어 배리어프리 여행을 할때 적지 않은 후원금도 했다던 마음도 착한 요조. 요조는 남편이 좋아했다. 요조가 홍대 퀸카시절 남편 회사의 광고모델이었다고 한다.


상큼하고 맑은 감성의 요조 음색과 노래가 오늘의 내 기분과 잘 맞는 다고 생각했다. ‘giant’, ‘nostalgia’ 음악이 지나고 세 번째 곡이 ‘Sunday’였다. 오늘의 요일과 잘 맞아떨어진 노래 제목에 설레었다. 'Sunday'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래, 오늘이 일요일이지. 일하지 않는 날,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날, 또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날, 온전히 내게 허락된 날, 오늘은 Sunday.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요조의 'Sunday' 노래가 더 특별했다.


요조의 Sunday가 담긴 노래 가사를 이어폰 선율로 음미하며 읽었다. 살랑이는 아침 봄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지금은 제주의 바람을 맞고 있을 요조의 감성을 느끼기 위해 더욱 몰입했다. 지난 해 제주 여행 때 우리는 요조 책방 '무사'를 방문했다지.



Sunday, 오후 늦게 일어나 버린 Maybe Sunday

동네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 Happy Sunday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나갈 준비를 하지.


(......)


홍대 앞으로 일단 모이세요. 6시 반

뜬금없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 우습기도 했지만

너의 모습 보고 싶어

우린 서로 다른 공간에서 스물여덟 살의 길을 걷고 있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바쁘게 살아가)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하루하루를 흐르는 시간 따라

나의 꿈들도 너의 사랑도 제자리를 찾겠지




요조의 스물여덟은 바쁘지만 평화로운 일요일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처럼 막막한 청춘들의 삶이 아니라서 좋았다. 굴곡이 없고 담백해서 덩달아 편안해지는 일요일을 보내게 될 것 같은. 자연스레 나의 스물여덟의 일요일은 어땠을까,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을 상상하며 노래처럼 요동 없이 편안한 걸음을 걸었다. 시큰 거리는 무릎을 주무르면서도 내 마음은 스무 살 그 언저리에 먼저 가 있었다.


나는 평화로운 과거를 떠올릴 때면 어릴 적 살던 우리 집이 생각났다. 토방을 딛고 마루에 앉아서 마당으로 쏟아지던 비와 눈과 햇살을 바라보던 그때가 그려진다. 일요일의 한낮의 게으름은 정말로 달콤했었다. 따가운 햇빛이 창호지 문을 뚫고 들어와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을 정오가 되면 이웃 마을의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댔다.


댕 댕 댕!


그때가 되면 몸을 감는 게으름을 떨쳐내고 일어나야 했다. 어머니의 잔소리보다 더 부담이 되는, 방안까지 밀고 들어오는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나의 게으름을 더욱 타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스스 눈을 반쯤 뜨고 일어나 토방에 발을 딛고 마루에 걸터 앉아서 마당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한낮의 일요일을 나른하게 즐겼다.


이상한 것은 나의 과거의 기억은 항상 스무 살까지 살았던 우리 집 마당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마당에 쌓인 눈, 마당에 쏟아지는 봄날의 햇살,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콩 나무, 가지와 고추가 열리던 마당 한쪽의 텃밭, 심지어 마당 끝 쪽에 자리한 쌀 껍질을 소복이 쌓아 놓았던 헛간과 화장실까지. 나의 과거의 기억은 우리 집 마루와 토방 그리고 앞마당에 늘 머물러 있었다. 오늘도 나는 요조의 Sunday처럼 나의 스물여덟의 일요일을 찾아가려 했지만 내 기억은 어느새 우리 집 앞마당에 닿아 있었다. 나의 스물여덟의 일요일은 그 마당에는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건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우리 집에서의 기억이 내게는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나의 젊음의 일요일을,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한계 어린 말뜻을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은 마음으로만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세월의 흔적을 거부하고 내 젊음과 과거의 기억을 돌려달라고 아무리 때를 쓴들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할 때 요조라는 젊음의 감각을 내 안에 투영하여 상큼하고 싱그러운 글을 쓰고자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여지없이 나의 쌓인 묵은 시간들을 들추어내고 말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세월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얹혀진 내 시간들을, 내 육체에 쌓인 시간의 흔적들을. 어쩌면 이 중년의 나이에 요조의 스물여덟처럼 담백하고 잔잔한 일상을 원한다면 나이 들어가는 나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긍정의 희망만은 기억하자. 마음이 있다면 현상은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는 법이니까. 쌓인 시간의 관념을 넘어 먼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나의 일요일 아침이다.








<Hello Happy 시리즈 두번째 에세이>


https://brunch.co.kr/brunchbook/selfish


<Hello Happy> 시리즈로 기획했습니다. 전편 <나는 이렇게 히피펌 여자가 되었다>에 이은 연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수많은 고민으로 되새김질했으면서 나와의 관계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나의 태도를 ‘무지’로 일축하고 싶다. 불안한 내 감정을 돌보는 법을 모르고 살았던, 사유하지 않았던 ‘삶의 오류’라고 말하고 싶다. 무지한 나의 삶의 태도는 명백히 평화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 해방책은 바로 ‘이기적 삶’이었다." (5화 이기적으로 살기, 매우 권장합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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