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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Apr 26. 2021

쇼핑

화창한 봄 어느 일요일에 나는 혼자 집에 남아야 했다. 두 아들은 유학중에 있고 남편은 인생친구 70대 노인과 산으로 떠났다. 이렇게 혼자 남는 날엔, 기분이 마냥! 더! 좋기만 하다. 그러나 막상 혼자 있으니 쓸쓸함이 몰려온다. 너무도 좋은 날씨탓일것이다.


‘이런 날엔 나도 어디라도 나가서 놀아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상념에 외로워졌다. 별 일이 없는 나는 다소 쓸쓸한 기분으로 늦은 아침까지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을 하며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주간의 일상의 피로를 내려놓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위안을 하면서.


그러나 왠종일 침대 속에 있기엔 너무도 화창한 날이었다. 늦은 잠을 털어내고 부스스 일어났다. 쌓인 설거지를 하고 라면을 끓여서 먹고 집을 나섰다.


나는 한동안 쇼핑의 재미를 잊고 살았다. 원래부터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게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한해서 값싼 물건을 사기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여 쇼핑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게 ‘돈이 없음’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일이 쇼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박탈감’을 느낀 것이다. 맘에 드는 물건을 살 수 없어 초라해지는 내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가진 돈을 생각하며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선택의 기로에 선 그 찌질한 감정싸움이 너무나도 피로해서 점점  쇼핑은 내게 맞지 않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쓴 기분이 싫어 쇼핑을 멀리 해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평소 여자로서 패션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런 내가 오늘은 쇼핑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복잡함이 예견되는 이런 날엔 모름지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여행만큼 길고 힘든 과정이 쇼핑이라는 것이니까. 나는 최대한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 무거운 자동차는 가볍게 집에 두고 대신 묵직한 대역을 맡아줄 남편의 카드를 들고 집을 나섰다. 나를 집에 혼자 두고 놀러 나간 남편의 잘못이 더 클 것이라는 정당한 이유를 붙여가며 당당하게, 신이 나게. 아리따운 물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쇼핑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놀이라지? ’


일단 가격대가 만만한 중저가 쇼핑몰에서 부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드는 것이 싫어서 10여년동안 발길을 끊었던 곳. 돈도 많지 않은 사람이면서 내 삶 마저도 덤핑취급 당 하는 것 같아 싫었던 곳, 지난겨울 두어 번 이용을 한 뒤로 다음에 또 와보기로 맘먹은 곳. 나 같은 서민이 이용할만하다고 생각되었던 곳. 그러나 이곳의 물건가격도 비싸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잘못 되었군. 이제 이곳에서의 서민의 옷값도 만만치 않게 비싸구나. 혹시 바가지는 아닐까? 그럴 바 에야 차라리 쾌적한 백화점에서 누워있거나 모여있는 애들을 공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 생각하면서도 뭐라도 득템을 해보겠다고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만만한 천 쪼가리 하나를 사들고 그 쇼핑몰을 빠져 나왔다. 이 결과물이라도 없으면 오늘의 쇼핑이 정말로 시간낭비로 끝나 버릴까 두려워서.


‘역시, 시간낭비야….’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간간히 다니던 백화점으로 다시 옮겨 갔다.


‘쇼핑은 참 어렵고 지치는 일이야.’


다시 이런 생각을 할 무렵, 가방 하나가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그 가방을 손에 쥔 순간, 꼭 사야겠다는 충동욕구가 내 정신을 지배했다. 이리 저리 고민하는 척 했지만 벌써 이 가방을 가지게 될 기쁨에 약간의 흥분상태가 되어 가방을 샀다. ‘잘산 건가?’역시 내 결정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오늘의 내 취향과 선택에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 가방을 사버렸다. 물건을 살때의 설레면서도 피하고 싶은 갈등의 심리전을 넘어서고서.


차라리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면 돈을 절약해서 좋을 텐데, 나는 긴 시간을 투자하고도 빈손으로 돌아 올 때의 허탈감이 내 기분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한 시간낭비를 했다’와 ‘내겐 그 물건들을 가볍게 살 돈이 없다’라는 기분 나쁜 감정들 말이다. 그래서 맘먹고 쇼핑이라는 것을 했을 때는 기필코 무엇이라도 사 들고 와야지 기분이 좋아지는 쪽인 것이다.


그래 맞다. 나는 이런 이상한 조급함에 이끌려 물건을 구입해 버리는 충동구매의 전형적인 유형에 속한다. 눈에 띄고 가격이 적당하다 싶으면 무조건 사오고 보는, 또 급한 마음으로 생각 없이 구입해서 실패한 물건들이 쌓여가고, 그러나 다행히도 쓰다보면 어느새 정이 들어 그럭저럭 적응해가는.


 이런 물건 구입에 대한 자신 없는 마음 때문에 나는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쇼핑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애써 시간을 투자하여 들고 온 물건에 대한 회의감이 너무도 씁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며 가며, 또는 장을 보러 갈 때, 시간을 쪼개서 백화점을 휙 둘러보다가 내 기준에서 가격이 맞는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후다닥 집어 오는 식이다. ‘맘에 들 때! 보일 때! 얼른 사자!’ 라는 마음으로 깔 별로 사기도 부지기수다. 그러면 후회가 덜 된다. 적어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내가 요즘은 긴 시간을 요구하는 쇼핑의 재미에 빠졌다. 한번 풀린 고삐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물건에 대한 탐욕이란, 보면 볼수록 내 것으로 취하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속 기저에 깔리게 되나보다. 오늘의 쇼핑에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것을 다음에 꼭 사야겠다는 구체적 욕구까지 더 절실해 지고만다.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여가를 위한 시간과 비용은 겁내지 않으면서도 쇼핑을 하는 시간이 아까운 나였다. 시간과 감정과 체력을 소진 하면서 까지 물건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들이 벅찼던 내가, 지금은 내가 나에게 헌정하는 선물의 시간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젠 나자신에게 이 정도의 선물, 문제없는 거잖아?’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하는 당연함을 알았다고 나 할까.


나는 남편에게 산 가방을 메고 찍은 사진과 영수증을 톡으로 보냈다.


“어때? 내게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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