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했다. 택배 상자 한 개가 현관문을 기대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전혀 없으니 남편의 것일 것이다. 남편이 또 뭘 샀나 궁금해서 택배 상자를 뜯었다. 택배 상자 안엔 헤드셋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상자 하나가 또 들어 있었다. 나는 아들을 위한 전자 피아노 헤드셋일 것이라 생각되어 더 이상의 확인을 그만두었다. 밤늦게 남편이 귀가했다.
“피아노 헤드셋 샀어?”
“아니. 네 거야”
“요즘 누가 헤드셋을 써? 또 웹서핑을 하다가 충동 구매 했구나?”
나는 별 감동 없이 말했다. 남편도 내 말에 어떤 댓 구도 없어 헤드셋 구입에 관한 건은 그대로 잠잠해진 듯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맥없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남편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머리 위에 헤드셋을 씌워 주었다. 익숙한 음악이 내 온 우주에 흘렀다. 우리 시대에 로맨틱 감수성의 최고봉인 영화 라붐 OST ‘Reality’였다. 머리가 화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과는 또 다른 감성과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머리 속이 나만의 우주가 되었다.
“으흐흐흐흐 우헤헤헤헤 하하하하하 크크크크”
남편은 가끔 아재 유머로 나를 웃기긴 했지만 이번 만큼 크게 웃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남편이 늙은 나를 대상으로 패러디한 이 장면은 영화 ‘라붐’이다. 80년대 최고의 로맨틱 장면으로 뽑힌다. 어느 날, 13살 소녀 빅은 친구의 초대로 파티에 가게 된다. 학교의 최고 인기남 마티유는 디스코 파티에 빠져 있는 친구들 틈 속에서 빅에게 헤드셋을 씌워주고 감미로운 음악 ‘Reality’를 들려준다. 그리고 둘만의 블루스 타임을 가진다. 광란의 우주 속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로맨틱 분위기에 빠져 있는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패러디를 할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그 대상이 이 나이에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피 마르소 같네.”
내가 헤드셋을 내 귀에 꼭 맞게 고쳐 쓰자 남편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히피펌을 쫙 편 소피 마르소와 같은 단발머리가 되어 있다. 남편이 툭 던진 이 말에, 이 Reality(실제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그 한문장에 시큰둥한 내 기분이 쨍하고 좋아졌다. 내가 단발머리에 헤드셋을 썼다고 해서 영화 속 13살의 소피 마르소가 어떻게 될 수 있을까마는……. 그러나 나는 남편의 이 허구적 표현이 듣기 좋았다. 비로소 이 남자가 허구의 맛, 허구의 필요성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있어 Reality는 무의미하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표현을 한다. 즉 사랑이라는 허구에 빠졌다는 뜻이 되겠다. 상대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할 때에는 최대한 허구성이 폭발하도록 노력하는 연인을 절대적으로 믿게 된다. 허구 속 그를 좋아하고 허구 속 그가 진실인 것처럼 믿고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허구가 Realilty로 보이게 되는 날(콩깍지가 벗겨지는 날) 우리는 이별을 생각하게 된다. 이 콩깍지 이론만 보더라도 아마도 현실성에 충실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Reality' 가사를 보아도 “꿈은 자신의 현실, 실존하는 유일한 환상일지라도 연인이 있는 꿈속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내용이 있다. 사랑이 환상일지라도 연인과 함께라며 그 환상 속에 빠져 살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내 남편은 정말로 Reality에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애초 부터 허구가 없었던 우리의 인연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연애시절 한 번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가 내 미모에 자아 도취가 되어 “나 이쁘지?”라고 말해본 적이 있다. 왜……, 젊음 그 자체가 눈부시던 20대 때는 다들 뽀송하고 이쁘고 그렇지 않았나……? 그러나 내 남편은 “그런 말 하지 마!”라며 정색했다. 혹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나 안 이뻐?” 다시 작고 소심하게 물어봤다. 그는 정확하게 다시 말했다. “그러지 마라.” 정말 현실 감각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민망했다. 그렇게 우리는 진지한 닭살 멘트는 ‘절대사절!’하는 커플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랬던 남편이 지금 나를 소피 마르소 같단다. 물론 내가 남편의 이 표현을 로맨틱하게 여길 건덕지는 눈곱 만큼도 없다. 아재 유머의 확장된 버전일 뿐이란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감정이 몽글거리는 묘한 기분이 내 가슴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그 어색한 마음을 큰 웃음으로 표현해줬던 것이다.
“크크크크 푸하하하하 우헤헤헤”
왜 쓸데없는 걸 자꾸 사냐고 태클을 걸까 하다가, 아니지 아니지, 나는 세상 모든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책과 예술과 현실과의 커다란 간격을 보며 허구 속 삶을 동경하는 사람인데 이 허구적 순간을 무가치하게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Reality가 전혀 없다 해도 말이다. 마음이 몽글거리는 기분이 닭살 돋지만 이렇게 한번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헤드셋보다 오늘의 기쁜 기분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내 잔소리로 기쁜 이 소란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헤드셋을 썼다 벗었다 하며 내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묻는다.
“좋냐?”
“웅…, 고마워.”
그런데 어쩌나……. 헤드셋은 이 한여름에 쓰기엔 너무 더웠다. 꼭 방한용 귀마개 같았다. 착용할 때마다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흰 눈이 오면 이 헤드셋을 쓸 수 있으려나. 이걸 쓰고 호수공원을 뱅글뱅글 돌며 나만의 우주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