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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Oct 12. 2022

‘Reality’


퇴근을 했다. 택배 상자 한 개가 현관문을 기대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전혀 없으니 남편의 것일 것이다. 남편이 또 뭘 샀나 궁금해서 택배 상자를 뜯었다. 택배 상자 안엔 헤드셋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상자 하나가 또 들어 있었다. 나는 아들을 위한 전자 피아노 헤드셋일 것이라 생각되어 더 이상의 확인을 그만두었다. 밤늦게 남편이 귀가했다.


“피아노 헤드셋 샀어?”

“아니. 네 거야”

“요즘 누가 헤드셋을 써? 또 웹서핑을 하다가 충동 구매 했구나?”


나는 별 감동 없이 말했다. 남편도 내 말에 어떤 댓 구도 없어 헤드셋 구입에 관한 건은 그대로 잠잠해진 듯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맥없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조용하던 남편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머리 위에 헤드셋을 씌워 주었다. 익숙한 음악이 내 온 우주에 흘렀다. 우리 시대에 로맨틱 감수성의 최고봉인 영화 라붐 OST ‘Reality’였다. 머리가 화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폰과는 또 다른 감성과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머리 속이 나만의 우주가 되었다.


“으흐흐흐흐 우헤헤헤헤 하하하하하 크크크크”


남편은 가끔 아재 유머로 나를 웃기긴 했지만 이번 만큼 크게 웃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남편이 늙은 나를 대상으로 패러디한 이 장면은 영화 ‘라붐’이다. 80년대 최고의 로맨틱 장면으로 뽑힌다. 어느 날, 13살 소녀 빅은 친구의 초대로 파티에 가게 된다. 학교의 최고 인기남 마티유는 디스코 파티에 빠져 있는 친구들 틈 속에서 빅에게 헤드셋을 씌워주고 감미로운 음악 ‘Reality’를 들려준다. 그리고 둘만의 블루스 타임을 가진다. 광란의 우주 속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로맨틱 분위기에 빠져 있는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패러디를 할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그 대상이 이 나이에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피 마르소 같네.”


내가 헤드셋을 내 귀에 꼭 맞게 고쳐 쓰자 남편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히피펌을 쫙 편 소피 마르소와 같은 단발머리가 되어 있다. 남편이 툭 던진 이 말에, 이 Reality(실제성)이라고는 1도 없는 그 한문장에 시큰둥한 내 기분이 쨍하고 좋아졌다. 내가 단발머리에 헤드셋을 썼다고 해서 영화 속 13살의 소피 마르소가 어떻게 될 수 있을까마는……. 그러나 나는 남편의 이 허구적 표현이 듣기 좋았다. 비로소 이 남자가 허구의 맛, 허구의 필요성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 있어 Reality는 무의미하다. 흔히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표현을 한다. 즉 사랑이라는 허구에 빠졌다는 뜻이 되겠다. 상대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할 때에는 최대한 허구성이 폭발하도록 노력하는 연인을 절대적으로 믿게 된다. 허구 속 그를 좋아하고 허구 속 그가 진실인 것처럼 믿고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허구가 Realilty로 보이게 되는 날(콩깍지가 벗겨지는 날) 우리는 이별을 생각하게 된다. 이 콩깍지 이론만 보더라도 아마도 현실성에 충실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Reality' 가사를 보아도 “꿈은 자신의 현실, 실존하는 유일한 환상일지라도 연인이 있는 꿈속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내용이 있다. 사랑이 환상일지라도 연인과 함께라며 그 환상 속에 빠져 살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내 남편은 정말로 Reality에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애초 부터 허구가 없었던 우리의 인연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연애시절 한 번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가 내 미모에 자아 도취가 되어 “나 이쁘지?”라고 말해본 적이 있다. 왜……, 젊음 그 자체가 눈부시던 20대 때는 다들 뽀송하고 이쁘고 그렇지 않았나……? 그러나 내 남편은 “그런 말 하지 마!”라며 정색했다. 혹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나 안 이뻐?” 다시 작고 소심하게 물어봤다. 그는 정확하게 다시 말했다. “그러지 마라.” 정말 현실 감각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민망했다. 그렇게 우리는 진지한 닭살 멘트는 ‘절대사절!’하는 커플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랬던 남편이 지금 나를 소피 마르소 같단다. 물론 내가 남편의 이 표현을 로맨틱하게 여길 건덕지는 눈곱 만큼도 없다. 아재 유머의 확장된 버전일 뿐이란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감정이 몽글거리는 묘한 기분이 내 가슴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그 어색한 마음을 큰 웃음으로 표현해줬던 것이다.


“크크크크 푸하하하하 우헤헤헤”


왜 쓸데없는 걸 자꾸 사냐고 태클을 걸까 하다가, 아니지 아니지, 나는 세상 모든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책과 예술과 현실과의 커다란 간격을 보며 허구 속 삶을 동경하는 사람인데 이 허구적 순간을 무가치하게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Reality가 전혀 없다 해도 말이다. 마음이 몽글거리는 기분이 닭살 돋지만 이렇게 한번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헤드셋보다 오늘의 기쁜 기분이 더 의미 있는 것이다. 내 잔소리로 기쁜 이 소란을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헤드셋을 썼다 벗었다 하며 내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묻는다.


“좋냐?”

“웅…, 고마워.”


그런데 어쩌나……. 헤드셋은  한여름에 쓰기엔 너무 더웠다.  방한용 귀마개 같았다. 착용할 때마다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눈이 오면  헤드셋을   있으려나. 이걸 쓰고 호수공원을 뱅글뱅글 돌며 나만의 우주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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