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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Oct 15. 2023

국화 앞에서

국화 앞에서


아보카도 덕분에 화원이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화원에 들어서니 국화향이 가득하다. 우리 집에도 예쁜 꽃이 핀 화분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화원에 있는 화분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어서 해가 '쨍' 하지 않아도 잘 자랄 적당한 화분을 찾는다는 나의 말에 화원 직원이 대꾸를 한다.'

“사람들은 보기에 예쁜 식물을 원하시는데 그러면 잘 살아남지 못해요. 식물은 키울 공간의 환경을 고려해서 골라야 합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정말 상식적인 말인데 나는 그동안 이 상식을 잊고 예쁜 화분만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금 키우다가 말라죽거나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간 화분들. 정성이 부족한 탓일 테지만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의 나의 삶은 육아에 지쳐 생활에 지쳐 식물을 보살필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보살필 것들이 태산인데 식물까지 보살필 여력이 내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당초 우리 집 환경을 고려해서 화분을 골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변명을 하며…. 

이번엔 화원 직원의 충고에 따라 우리 집 환경을 고려하여 화분을 골랐다. 우리 집은 실내에 화초를 키울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베란다 외부로 난 화분대에 놓고 키울 추위에 강한 국화 화분을 들이기로 했다. 화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내 코를 저격한 국화 향기에 반하기도 했고 이가을, 나 자신에게 가슴 한 가득 국화꽃을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크기가 조금 다른 국화 화분 2개를 집에 들이고 보니 좋았던지 남편은 다른 컬러로 큰 화분 한 개를 더 사 오길 바랐다. 나는 다음날 아침 부지런히 집안 정리를 마치고 국화 화분을 사러 갔다. 고를 수 있는 컬러가 한정되어 아쉬웠지만 꽃 분홍 국화 화분 하나를 골랐다. 국화 화분 3개를 나란히 베란다 밖으로 꺼내 놓으니 균형을 이루고 풍성한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집안에 있어도 자꾸 창문 근처를 서성이며 국화 화분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행복감이 솔솔 했다. 이 행복감은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를 지키는 내게 집콕의 즐거움과 위로감을 한층 올려주었다. 또 남편은 국화 화분을 들이고 결혼 후 난생처음으로 베란다 창문을 닦기도 했다. 웬일이냐고 묻자 “창문을 깨끗이 하면 햇볕이 더 잘 들어와서 아보카도가 좋을 것 같다.”라며 그토록 열심이다.

식물이 우리 집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며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무리수가 따르는 일이고 무지한 생각이었다. 식물에게는 자신의 기질과 생태 본능을 무시하는 폭력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집에 들였고 키워야 한다면 최대한 맞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이 돌봄자의 의무이고 책임인 것이다. 우리는 아보카도 한그루를 살리기 위해 작년 겨울 내내 전기밥솥 옆에서 사랑을 다해 키워내지 않았던가. 우리는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두 아들들을 키워내지 않았던가.

어렵게 키워낸 맏형 아보카도 한 그루를 계기로 우리 부부는 우리 집의 척박한 환경에서 식물을 키우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다. 둘이 함께 하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그렇게 버겁지 않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보살피는 일처럼 말이다. 

창문도 깨끗이 닦고 가을 국화 화분도 창밖에 내어 놓고, 아름다움을 창문 앞에 걸어두니 외출을 했다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즐거웠다.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 집이 나를 환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우리 집에 이렇게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지에서 고생한 아들들이 환대받는 느낌을 들 수 있도록 말이다.

커튼을 활짝 연 창(아보카도와 국화)을 바라보며 또 라디오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때마침 CBS 라디오 ‘아름다운 당신’의 김정원 DJ가 식물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면 아주 잘 자란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말로 오프닝을 하고 있다. 다소 익히 알고 있는 흔한 정보이지만 오늘의 내게는 마음에 깊이 박히는 울림을 주고 있다. 정말 사랑이 담긴 정성은 생명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가장 위대한 일인 것 같다. 아보카도와 국화가 들을 수 있도록 라디오 볼륨을 한껏 높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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