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 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로해피 Jan 13. 2021

눈 오는 날.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동그란 놀이터는 마치 비밀 요새와 같다. 놀이터 주변의 나무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았다. 나무 가지 층층이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와 덮이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금방이라도 울려 퍼질 것 만 같다. 얼마 전 지나간 크리스마스가 다시 come back이라도 했나? 하얀 트리까지 완성이 되니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에나 있을 법한 고요한 마을 풍경이 연상된다. 차갑고 맑은 햇살이 눈 덮인 교회 지붕 위를 반짝반짝 걷고 있을 것 만 같은.


한 아이가 썰매를 끌고 나와 미끄럼틀 위에서부터 썰매를 타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옛날 옛적 라떼는 비료포대를 들고  언덕으로 올라가 썰매를 탔는데  도시 아이들은 언덕이 없으니 미끄럼틀을 언덕 삼아 플라스틱 썰매를 탄다. 눈이 제법 내리자 사람들이 놀이터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썰매로 눈을 끌어 모은다. 동글동글 눈을 뭉친다. 눈사람을 만들겠지. 어떤 눈사람을 만들게 될까. 코도 삐뚤, 눈도 삐뚤, 몸은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은 잔뜩 화가 난 나의 악동 꼬마 친구처럼 뾰로통할까?


창가에 서서 사람들이 아파트 정원에 모여 설 눈 파티를 하며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감성이 몽글몽글 동글동글 눈덩이처럼 굴러다녔다.



나는 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차가운 기온 속에 머무는 따뜻한 온기를 사랑한다. 눈이 오는 계절이라 그런 것 같다.  연말연시의 따스한 사람의 온기 때문인 것도 같다. 서로 선물을 나누고  축복의 언어와 덕담을 주고받는 겨울이 좋다. 춥지만 따뜻한 계절 겨울,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따뜻함은 두 배가 되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세 배로 커진다. 그리고 눈은 가끔 사...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없던 감성도 일으켜 세워 감상에 젖게 만든다.


오늘 감성의 이상 전선을 만난 사람은 겨울눈을 그토록 사랑한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톡이 왔다. 남편이 ‘눈’ 이 아파 안과를 가는데 ‘눈’이 내렸다는 것이다. 또 아재 개그인가? 그래서 뭘 어쨌다는 건지... 그리고는 바로 눈 위에 그린 하트와 메시지가 가족 톡 방으로 날아왔다.



"애들아! 쑥스럽지만 모두 사랑한다~"


이 남자 일생 처음으로 아이들과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내게 처음 고백을 할 때도 "내가 당신에게 좋은 마음이 있어요!"가 전부였다.


나는 남편의 이례 없는 사랑 표현에  아일랜드에 있는 두 아들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엄마의 애정공세는 지겹도록 받고 있을 터지만 아빠의 고백은 난생처음일 테니 얼마나 쑥스러울까. 나도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그런데 둘째가 4시간 만에 회신을 했다.


"저도 사랑해요~"


우리 집 친데라 귀염둥이니까 뭐 당연하다 치고.


8시간 뒤 첫째에게도 회신이 왔다.


"저도요."


첫째는 절대 일상의 시시한 말들에 대답 따위를 하지 않는 녀석이다.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 화상 전화를 해도 화면을 꺼버리는 불친절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가장 절실할 때 가장 먼저 달려올 것 같은 따뜻한 녀석이다. 오늘처럼.


첫째는 오늘 남편을 구해준 확실한 구원타자다. 첫째 녀석의 오늘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 시원하게 그냥 넘길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첫째가 "저도요."라고 답 톡을 보내온 것이다. 남편은 첫째의 홈런 한방으로 안도의 숨을 골랐을 것이다. 남편의 사랑고백에 두 아들의 반응이 없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를 대신하여 남편의 어색한 사랑을 두 녀석이 잘 흡수해줘서 고마웠다.


2021년 1월 12일. 오늘은 사랑이 내렸다. 우리 집 기념일로 정해야겠다.


“고백데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생애에 푸팟퐁커리는 처음이라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