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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Feb 14. 2022

혼술

약간의 우울함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에 지쳤을 것이고 사람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의 행방을 찾는다. 모두 귀가가 늦는다는 알림을 받는다. 이런 날엔 홀로 있다는 것은 결코 외로움이 아니다. ‘나’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나는 사온 지 꽤 된 와인으로 눈이 갔다. 완벽한 혼술의 시간이 될 절호의 타이밍.


이처럼 혼술이 땡기는 날에 집에 와인이나 맥주가 비치되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는 혼술을 할 때에는 겨울엔 와인과 여름엔 맥주를 선호한다. 나의 혼술은 나름의 철칙이 있다. 한잔을 마시더라도 품위 있게 마실 것! 와인은 와인 글라스를 갖춰 투명하게 마실 것! 캔 맥주는 꼭 유리 글라스에 따라 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마실 것! 그리고 소주와 플라스틱 페트병 맥주는 사절이다. 이 고독하고 아름다운 혼술의 감성을 깨뜨리면서 마시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비좁은 주방에서 아주 오래도록 안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주황빛이 도는 SONY 오디오를 켰다. 오늘따라 주황색 식탁 매트가 깔린 밝은 원목 식탁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매트는 어느 날 남편이 사들고 왔다. 베이지색 천으로 된 식탁매트를 매일 세탁하는 어리석은 나를 비웃 기라도 하듯. 처음엔 왜 이렇게 화려한 색을 들고 왔냐고, 실리콘의 느낌이 싫다고 타박을 했지만 조금 두고 보니 내가 사랑하는 오래된 오디오와 원목 식탁과 꽤 잘 어우러지는 것이 그럭저럭 내 마음에 들게 되었다. 내가 선호하는 자연주의 콘셉트는 사라졌지만.


오늘은 어떤 안주와 함께 마실까. 어떤 음악을 들으며 마실까. 설렘이 두두두 마음을 두들긴다. 안주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집에 있는 견과류나 초콜릿이 함유된 과자나 짭조름한 비스킷 몇 조각이면 된다. 간혹 만사가 귀찮고 배가 고플 때에는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라면 한 개를 끓여서 안주로 먹곤 했다. 라면에는 소주가 딱일 테지만 나는 라면에도 와인과 맥주를 마신다. 시간을 들여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는 것보다 부르르 손쉽게 끓인 라면을 안주삼아 먹는 혼술이 더 나를 위하는 일임을 나는 안다. 내 수고와 바꾼 나의 혼술의 시간이 내게는 더 행복의 가치를 지닌다.  


오늘의 안주는 생선전으로 정했다. 육류는 레드 와인, 하얀 생선은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고 했던가? 음… 꼭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전에 와인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강사는 요리 소스의 자극성에 따라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생선 요리라도 자극적인 소스라면 레드 와인이 좋을 것이고 육류 요리라도 소스가 심심하면 화이트 와인과 궁합이 더 잘 맞는다고 했다. 참고로 수육은 화이트 와인과 잘 맞더라는 것.

오늘 나는 생전전 안주에 T7 멜롯 저가 레드와인을 마셨다. 생선전은 화이트 와인이 좋을 까, 레드 와인이 좋을 까. 집에서 마트형 값싼 와인을 마시면서 안주의 궁합까지 따져 마시기는 힘이 들다. 그저 와인이 있고 적당한 안주거리가 있으면 깔끔하고 간소하게 차려 그날의 분위기와 함께 마시면 된다. 그날의 음악 한 스푼, 그날의 고독 한 스푼, 그날의 그리움 한 스푼, 그날의 후회 한 스푼을 홀짝홀짝.


그리고 이 절호의 타이밍을 위해서는 나름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가령, 정돈된 테이블과 촛불,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과 술, 그리고 음악이다. 혼술이 감미로운 음악과 만나면 맬랑꼴리한 마음의 절정을 만든다. 이 맬랑꼴리한 음악은 시간이 쌓일 때마다 켜켜이 퇴적된 내 슬픔을 흐르게 한다. 주황색 불빛을 가진 SONY에서 가슴이 찡한 멜로디라도 만나게 된다면 내 가슴은 어느새 소리없이 녹아내린다. 거기에 공간에 머무는 자가 온전히 나 혼자라면 혼술에 대한 완벽한 예의를 지키게 된다.

이러한 혼술의 시간을 이끌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계가 있다. 나만의 공간에 나르시스 한 고독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이 날의 고독은 내가 나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드는 친구가 되어 나를 위로한다. 힘들었던 날의 피로를 위로하고 나를 상처 준 이들로부터 한 걸음 벗어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혼술이 땡기는 날이 오면 나는 ‘아~오~’ 하고 마음속으로 음률을 그린다. 눈이 오는 것을 핑계 대고 미친 짓을 해보고 싶은 그런 심리처럼 우울을 핑계 삼은 혼술의 시간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나를 고요하고 완전한 고독 속으로 이끌고 오롯이 나와 낯선 내가 대면하는 시간이 혼술의 시간이다.

나를 위로하는 의식의 시간. 나에게 혼술의 의미는 건조한 일상에 물을 주는 일과 같다. 고독한 순간을 완벽하게 삼키는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의 시간이다. 일상에 지친 마음이 한 숨의 호흡을 멈추는 시간, 팍팍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의 마음이 위로받는 시간과 같다. 내가 나 자신에게 위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인지를 알아채게 되는 낯선 시간이 된다.


오늘의 나는 와인을 글라스에 3번쯤 따라서 마셨다. 평소보다 조금 많은 양이다. 라디오에서 맬랑꼴리한 몽니의 ‘언제까지 내맘속에서’가 흘러 나왔다. 볼륨을 높였다. 자칫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던 나의 외로움이 깊어진다. 그러는 사이에 그동안 쌓였던 한무더기의 외로움과 슬픔들이 내 안에서 밀려 나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꺼억... 정말 낯설다. 내가 왜 ... 눈물을 ... 그러나 무언가 개운해지는 그런 느낌. 나는 비로소 내 안의 나를 만나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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