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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해피 May 12. 2024

누군가를 구하고 살게 하는 사람

‘누군가를 구하고 살게 하는 사람’

어제 드라마를 보다가 발굴한 문구다. 몸이 아파서 하루종일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 드라마를 뒤적거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내용이 순한 한국 드라마 시청이 제격이다. 자막 읽을 필요도 없고 내용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모국어로 된 것들에는 그런 편안함과 따뜻함이 있다.

어제도 아픈 와중에 반짝이 햇살처럼 저 문장이 내게로 스며들었다. 참 위로가 되는 문장 아니겠나. 아픈 사람이 원하는 그리고 필요한 그런 문구. 나도 저 문장처럼 딱 콕 집어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막연하게 갈망하던 말이었다. 아픈 나를 누가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내 맘속에 나약한 내가 세상을 원망하며 찾았던 참아 밖으로 뱉지 못했던 말.

그런데 우리 세상에는 누군가를 살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영웅 같은 존재들이 우리 세상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알게 된다. 또한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읽었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이자 사회운동가 홍세화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 그럴것이다. 이분들처럼 역사적 혁명투사가 그럴 것이며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미화원이 그럴 것이며(우리가 기피하는 일) 신약을 발명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그럴 것이며 저 문장처럼 따듯한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게 하는 작가들이 그럴 것이고……. 나는 분명 누군가(세상)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까? 누구를 구하고 살게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어떤 존재인가? 질문하게 만드는 저 드라마 대사. 안타깝지만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선 너무 쉽게 답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세상을, 타자를) 구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 내가 했던 일을 고작 내 가족 내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물론 이 일도 무척 중요하지만) 나는 항상 세상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다. 나를 구원해 줄 세상은 사람은 엄청 바라면서.

내가 아무리 내심 인간의 본질을 멸시하고 혼자 살아남은 것처럼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은 척 잘난 척 고고한 척해봐도 나는 세상을 의지하고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니 세상을 지탱해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특히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와 맞서 싸우며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을 이처럼 따뜻하게 만들어 준 우리의 모든 혁명 전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가장 먼저 내밀었던 사람은 그토록 얄미워하던 내 남편이고 나에게 계속 살아가게 할 용기를 준 구원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두 아들이다. 내 가족이 준 이 뜨거운 사랑을 외부로 확장하여 나도 ‘누군가를 구하고 살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혁명전사 될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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