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씹던 껌과 같은 것

상처는 씹던 껌과 같은 것

나는 내 상처를 들키기 싫었다. 친구에게 터놓고 의지한 들, 글쎄,,, 그 순간 내 약점이 될 수 있다,에 방점을 찍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사람들이 내 약점을 알게 된다 한들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소 거만한 이야기로 불편함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므로 나는 내 상처를 애써 드러내고 들쑤시지 않고 싶다. 결코.

비밀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친구에게 또는 세상에게 고백하는 비밀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살뿐 비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몇 년 전 ‘비밀남녀’라는 연애 매칭 프로그램을 보았다. 자신의 비밀을 이해해 줄 연인을 찾는 프로그램인데 비밀이 하나씩 공개되는 순간 실망이 컸다. 그것들은 너무도 평범해서 비밀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비밀이라도 되느냐 터놓고 말하고 있는 것은 진짜 숨은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

그럼에도 비밀이든 흔한 고민거리든 무엇이든 당사자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는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주로 내가 도움을 주는 관계를 선호했고 의지하는 관계에서는 부담을 느꼈다. 그런 관계로 내가 거리를 두는 누군가는 이런 내게 차가움을 느낄 테고 또 내가 친절을 베푸는 누군가는 내게 따뜻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며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드는 생각은 스스로 나를 치유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씹던 껌이 굳기 전에 누군가 그 껌을 떼어내려 하면 끈적끈적 더 난감해지는 상황이 온다. 그러나 진저리 쳐지게 끈적거려 떨어지지 않던 씹던 껌도 그대로 두고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저절로 떨어진다. 껌을 그대로 무관심 속에서 방치하면 어느새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쉽게 떨어지게 된다. 어쩌면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촉촉하게 젖었던 습기를 건조하게 다 털어버릴 수 있도록 혼자 있을 시간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상처도 마찬가지 아닐까? 곪은 상처는 물을 닿거나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는다면 아물기 마련이다. 충분히 바람을 쏘이고 시간을 준다면 말이다. 상흔이 남더라도 오히려 피부는 더 단단하게 태어날 수 있다. 이처럼 상처는 시간이 명약일 수 있다는 우리의 통상적인 말이 영 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게 만들어진 상흔은 훈장과 같다. 내가 나를 이겨내고 바로 섰다는 훈장.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상처를 진지하게 마주하려 노력해야 한다. 오래도록 제삼자가 되어 자신을 관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조차도 나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자생 능력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살에 새살이 돋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어떤 상처든 아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저 상처를 자극하지 않고 덧나지 않게 가만히 두기,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혼술을 하며 묵묵히 나의 일을 하며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가장 쉽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이제는 친구에게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고 나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상처가 아문 상흔을 훈장처럼 달고 사람들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건강한 관계로, 건강한 나로 살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