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통을 끊고 살았던 조카가 고모인 언니에게 상담을 해왔다 했다. 언니는 그동안에 그녀와 주고 받았던 톡 내용을 내게 보내며 내가 조카를 만나보기를 원했다. 자신은 너무 겁이난다고. 나라면 이야기가 더 잘 통할 것 같다면서.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야말로 너무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이 아닌 이상 타인에게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 도와줄 사람은 없다. 섣부른 마음으로 다가 섰다가 조카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혹여라도 내가 소홀히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자신이 없었다.
2018년도에 장애인 친구들과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황선애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경증 지적장애인이다.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나를 잘 따랐다. 여행 중 자신의 이야기를 쉼 없이 전했다. 무릎이 아파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과 의사의 의학적 소견까지 막힘없이 술술 말했다. 나라면 기억하지도 못할 것들을 디테일하게 전해서 조금 놀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비장애인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빠가 소개해 준 첫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대가 되어서야 뒤 늦게 장애인 등록을 했다고. 지금은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어서 좋다고 했다.
황선애는 여행 이 후에도 내게 카톡을 해왔다. 나는 실제로 바쁘기도 해서 그녀의 카톡에 바로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뒤 늦게 “바빴다. 이제 회신을 해서 미안하다”고 답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내게 정말 중요한 톡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미루지 않았을 것이다. 황선애는 그런 나에게 서운 했는지 그 후로는 톡을 보내지 않았고 2회 여행 때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황선애 뿐 아니라 내 경우도 있었다. 내가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무관심하고 서운하게 할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의지하는 습관을 버리려고 부던 애를 쓰며 살았던 것 같다.
한때 나는 남들과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쉽게 연민과 동정을 표현했었다. 사실 그 사실이 부끄럽다. 그동안 내가 책임지지도 못할 연민의 말들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내뱉고 살았는지 황선애를 대하는 나를 보며 느끼게 되었다. 그런 나를 알기에 조카에게도 상처를 주게 될까 걱정이 되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가장 이성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전했다. 적어도 정신과 의사는 나같은 사람들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내가 조금은 냉소적으로 말하자 언니가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언니는 집안에서 내가 가장 젊은 사람이라서 나를 조카의 이야기 상대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조카는 혹시 상처를 입게 될수 있을지라도 또래 친구와 소통하고 싶다고 했단다. 조카에게 또래 친구는 자신과 거리를 두는 상처고 가족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어른이라 했다. 그러나 조카가 이야기 상대로 친구를 원했다는 것은 세상을 이겨낼 용기를 내고자함이라 생각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가족보다 더 안전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언제든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직관적인 판단을 하는 그녀가 오히려 마음에 놓였다. 세상을 바로 보는 단단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터득한 ‘스스로 도는 힘’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타인에게로의 의존을 줄이는 것. 홀로 서는 법을 알아가는 것.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이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상처의 반은 치료가 된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내 상처는 나 자신만이 치유할 수 있다. 나를 구원할 자도 나 자신이다. 친구도, 신도, 정신과 의사도, 완벽하게 나를 치유할 수 없다. 내 정신의 힘, 의지에 따라 나는 변화되고 치유될 수 있다. 야박한 말이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 시인 김수영이 말하는 팽이처럼 '스스로 도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는 ‘스스로 도는 힘’을 기르는 노력으로 지난한 내 삶을 지나 왔다고 자부한다. 나는 후에 조카를 만나더라도 너무 친절하지 않게 조금은 무심하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에 대처하는 법’에 대한 내 노하우들을 말해 줄것이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기술들을 알려 줄 것이다. 그렇게 당당하게 홀로 서서 당당해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 방법이란 것은 제일 먼저 절대 배신을 하지 않을 작가(책)라는 찐 친구를 만드는 일과 일기를 쓰며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내공이 쌓이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나는 헤세와 하루키와 쿤데라와 친구가 되어 수다를 떤 후로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