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나홀로 여행
여자가 혼자여행이라니
“남편이 뭐라 안해요?”
지극히 예상된 질문이었다. 이 답답함이란. 남성 질문자들이 어떤 의도로 물어보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은 의미, 긍정적인 말은 아닌것 같았다. 아마도 남편 있는 여자가 그렇게 자유 분방하게 살아도 되느냐고, 정숙하지 못한것 아니냐고 묻고 있는것인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이제 51세. 이런 말을 두려워 할 나이도 나도 아니다. 갱년기가 가까이 온것이 너무도 슬펐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갱년기가 주는 선물인 육신을 뛰어넘는 해방감을 즐기기로 했다. 육신에 대한, 정신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는 나이듦이 좋았다. 암튼,
‘그러는 당신 아내는 당신이 혼자 다니는 것을 어떻게 허락할수 있나요?’라고 오히려 되 물어 보고 싶은것을 꾹 참고 대신 이렇게 사실대로 당당하게 대답해 주었다.
“네! 여행은 혼자가는 것이 진짜인것 아니냐고 남편이 적극 응원해줬어요.”
그래도 믿지 못하는 남자들의 표정이 불편했다. 재미있는 것은 여자 친구들에게 내 여행 계획을 말했을때는 ‘너무 멋있다’라는 찬사와 함께 부러움을 샀는데 남자들은 다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휴일이 달라서’라는둥 뭐 이런 변명거리도 덧붙여야 했다. 사실이긴 하다. 휴일이 달라 근 1년동안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지 못했다. (다만, 간혹 나를 응원해 준 깨어있는 남자 지인분들도 있었으니 불편한 오해는 없으면 좋겠다.)
내가 혼자 여행을 계획한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다. 나만의 로망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놀기의 정수를 찍고 싶었다. 집에서의 혼술은 일상이 되어 자연스러워 졌고, LP바에서 혼술 하기, 혼자 산책하다 비에 홀딱 젖기, 연극이나 공연 보기, 전시회 관람하기, 영화 보기, 혼자 노래방도 가봤으니 이제는 여행을 할 차례가 온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혼자일때의 고독감이 그리워져서 자발적 왕따를 자처한것 뿐이다. 그럼에도 난생 처음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이라서 조금은 두려웠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그냥 친구랑 같이 가자고 말해볼까?”
남편이 말했다.
“그냥 혼자 가. 혼자가는 여행이 좋지.”
아마도 남편의 속뜻은 ‘너도 의존성에서 벗어나 혼자 독립심 좀 키워봐라 쫌!’이라는 교육적 측면과 ‘너도 혼자여행의 낭만을 느껴봐’라는 따뜻한 마음에서 일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로 용기를 얻어 곧 바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N포털에 ‘혼자여행’을 검색 했더니 국내 여행지 몇 곳이 쫘르르 흘러 나왔다. 경주, 강릉, 제주가 유력했다. 아무래도 KTX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편리할 것 이라는 계산에서다. 그중 경주로 마음이 쏠렸다. 강릉은 봄에 갔다 왔고 제주는 첫 혼자 여행으로 가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포털을 스캔해 본 결과 예상대로 경주는 뚜벅이 나홀로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곳이라는 판단이 섰다. 경주는 도심 주변에 많은 유적지 및 관광지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숙소가 많은 시내를 기준으로 거리체크를 해 본 결과 20-30분 내로 도보나 버스로 이동이 가능한 곳이었다. 첫 혼자 여행지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뚜벅이로 사부작 사부작 걸어서 다닌다면 길을 잃을 걱정도 없을 것 같았다. 여차하면 택시를 타면 될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내친김에 숙소와 KTX를 예약했다. 숙소는 블루보트 호스텔로 정했다. 욕실과 주방은 공유 공간이고 침대 4개가 있는 공용객실이다. 1인 여행자로 합리적인 가격이라 좋았다. 숙소를 정하고 나니 밤 1시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혼자여행이라 눈치볼일없이 쉽게 결정할수 있었던것 같다. 이것이 혼자여행의 가벼움, 자유로움인 것일까? 벌써부터 혼자라는 홀가분한 마음이 생각과 행동을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타자와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이 혼자여행 중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경주 혼자여행을 아주 잘 다녀왔다. 관광컨셉의 계획을 세웠던 지라 조금이라도 많이 돌아 볼 욕심이 생겨 생각보다 낭만같은 것은 없었다. 길을 헤메이다 너무 많이 걸어 힘이 들었다. 그러나 관광지가 모두 숙소와 근거리에 있어서 길을 잃을 위험은 없었다. 경주는 길치인 나같은 사람에게 혼자여행을 학습할수 있는 아주 좋은 관광지였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혼자라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거면 충분히 성공적인 첫 나홀로 여행이 아니겠나.
혼자서 경주 관광지를 싸돌아다녀도 내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특별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내 주변 남자들처럼 왜 혼자온것이냐 묻는 촌스러운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당연한 일인듯 나를 대했다. 호스텔에서 내가 만난 외국인 여성 여행자(필리핀, 튀니지)도 모두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여행지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것이다. 다만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친구끼리 온 여성 여행자 두분이 내게 혼자 여행을 온것이냐 물었고 그렇다고 말하자, 나의 여행이 아주 멋있다고 추앙했다.
“정말 너무 멋지세요!”
나스스로도 정말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내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곳에서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낯선 환경에서 홀로 남겨진 내가 진짜 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벌써 다른 희망을 품어본다. 겨울엔 눈꽃여행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