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by 헬로해피 최유영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아들들이 각자의 인생길을 떠나자 아들들을 돌보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외부 활동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있을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당연 집안 살림에 내 관심이 초 집중되었다. 그동안 불편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해결하고 싶은 충동이 컸다. 여기저기 때가 타고 파손되고 어지러운 집을 그냥 두고 보기엔 내 정신이 너무 산란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사를 하자니 비용이 엄두가 안 났다. 이사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집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출을 다시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빚, 이자,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운 우리 집을 너무 많이 사랑한다. 아니 나는 어쩌면 낯선 것들에 이상할만치 두려움을 느끼는 익숙한 것이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다. 우리 집이 주는 익숙함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래서 우리 집을 고쳐 쓰기로 결심했다.

제일 먼저 화장실 변기와 세면기를 새로 교체했다. 주방 가구와 전등을 교체하는 등 주방 전체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방문과 벽에 셀프 페인트도 했다. 중문을 달아 밖에서 오는 소음을 차단하고 거실 가구 자리도 바꾸어 좀 더 안정감 있게 변화시켰다. 안방엔 커다란 서랍장을 구입하여 옷장이 부족해서 선반과 박스에 켜켜이 쌓아놓은 옷들도 서랍 안으로 집어넣어 좀 더 깔끔해지도록 정리했다. 아! 거실 전등도 교체했다. 생각보다 지출이 과해서 안방 옷장과 거실장은 구입하지 못한 상태다. 오래된 외부 창호도 교체하고 싶었지만 그건 조금 더 먼 일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화장실 변기와 세면기를 시작으로 한해 한해 나누어서 수리한 것이 3년 정도 걸렸다.



올봄에는 언니네 텃밭에서 목화씨를 받아왔다. 우리는 커다란 목화 나무를 상상하며 희망을 품었다. 목화씨는 사흘 만에 발아하여 떡잎을 냈다. 화분에 옮겨 심어 베란다 밖으로난 화분대에 두었다. 여름을 나는 동안 벌레가 목화잎을 모두 뜯어먹었다. 당연 초보 식집사는 알도리가 없었다. 목화 나무가 살아남기 힘들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물은 열심히 주었더니 목화 나무의 맨 끝에서 새 잎이 다시 피어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국화 화분 3개를 들이고 지인에게 장미 허브와 나비란 화분과 콜레우스, 만손초 화초를 분양받았다. 나도 우리 집 아보카도 화분 하나를 지인에게 선물했다. 자식을 떼어 놓는 것 같았다. '내새끼 가서 사랑받고 잘 살아….’ 이렇게 어느 사이 남편과 나는 초보 식집사가 되어 갔다.

요즘의 나는 집에 있을 때 자꾸 창쪽으로 발길이 움직이고 몸이 향한다. 베란다 밖으로 꺼내 논 화분 덕분에 눈길이 창밖까지 향한다. 집안 살이를 하다 보면 창밖으로까지 시선이 옮겨가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창문은 가끔 열어 환기를 시킨다 해도 커튼을 닫고 사는 날이 허다했다. 그런데 지금은 국화 화분이 내 시선을 자꾸 창밖 풍경으로 유도하고 있다.

나는 우리 집에 햇살 한 톨이라도 더 들어올 수 있도록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창문을 열고 국화꽃에 코를 묻는다. 국화 향기가 찬바람과 함께 한 줌의 향긋한 숨이 되어 내 가슴을 물들인다. 내 안에 잠자던 생명을 깨운다.

오늘은 유독 해가 반짝이는 날이다. 국화꽃에 꿀벌이 날아들었다. 어제는 목화 화분옆에 사마귀가 앉아있었다. 나는 이를 메뚜기로 착각했는데 남편이 사마귀라고 말해주었다. 그 후로 내 눈길은 국화 화분에 날아드는 벌들을 계속 찾게 된다. 가끔 똥파리도 꽃을 찾아 오지만 그마저도 귀엽다. 한 치의 문을 열어 생명을 키우니 우리 집 곁에 생명이 찾아들었다. 생명이 생명을 불러들였다. 이 생명들이 내 곁에 있으니 나는 빈 둥지에서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