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면 일독

by 헬로해피 최유영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우며, 손톱을 바싹 깎아 끝이 뭉툭한 손이었다. 내 손보다 삼 센티미터 정도는 더 길었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 역시 내 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내 손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잘못 놓인 다른 사람의 손이었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손이었다.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남자의 손은 내 손목에 붙은 채로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최정화, 모든 것을 제자리에>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나는 전보다 한결 자유로워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브래지어를 더 이상 착용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은 체모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으며 공공장소에서 생리대를 꺼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피해를 당한 일에 자책감을 갖고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내 예민함 탓으로 돌렸던 불편함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도 얻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못했다. 내 안의 여성혐오가 튀어나올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여성인데도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행위에 가담할 때가 있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재단하거나 내 성정체성과 위반되는 문화를 즐길 때가 있었다. 이 소설을 쓸 때 역시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개될 이 소설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오염된 일부가 발견될 것 같았다.
두려움을 이기고 단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이 소설을 썼다. 때로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남성의 목소리로 세상을 말하는 것에 더 익숙한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해방되로 싶다. <최정화 작가노트>


현재 나의 페미니즘의 정도를 말하라면 최정화작가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분명 주변의 남자들로 인해 상처도 많이 받았고 생물학적 젠더의 역할의 한계를 느끼며 분노를 느끼고 있는 지금이지만,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던 이중적 감정으로 인해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했다. 최정화 작가처럼 때로는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남성의 목소리로 세상을 말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남 오빠와 같은 남자친구를 가진 여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으며 남편의 예쁜 소품처럼 살고 싶을 때도 많았다. 사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남편 없으면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한다. 아마도 내 상황과 사회가 만들어놓은 의존적 성향일 것이다.


사회인으로서는 여자라서 힘들었지만 가정에선 여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여성으로 사는 것,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여성운동이 사회에 진정성 있는 울림을 주려면 여성이 자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모든 것들이 그렇다.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는 혁명은 남 탓만 하는 비루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때 사회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혁명을 이룰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버린 습관과 생각들로 남성의 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최정화 작가가 표현한 "나는 그 남자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남자의 손은 내 손목에 붙은 채로 분명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 표현은 여성으로서 정말 뜨끔 한 표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남성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일침이다. 나는 최정화작가의 글이 여성 스스로를 뒤돌아 보게 하는 가장 교훈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여성은 여성 스스로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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