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너무 좋아요.' 하며 내게 먼저 다가 온 여자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우연 씨의 등장은 제게 그만큼 참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우연 씨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조용하고 우아한 이미지에요. 그래서인지 우연 씨에게도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해요. 저도 선뜻 말을 걸지 못했으니까요. 늘 조용하게 소설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먼저 우연 씨에게 우연히 말을 걸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우연 씨 앞을 지나다가 읽고 있는 책 표지에 김주혜라는 이름이 보이길래, "무슨 책 읽으세요?"라고 말을 걸었어요. 우연 씨가 <밤새들의 도시>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읽었던 <작은 땅의 야수들>의 저자 김주혜가 맞더라고요. 우리의 대화는 그게 다였어요. 우연 씨가 너무 내성적인 성격 같아서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 씨가 제게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를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저주 토끼를 읽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모양입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우연 씨라서 저주토끼의 유혹에 이끌렸겠지요. 우연 씨는 <밤새들의 도시>를 제게 빌려 주었고요. 그렇게 책으로 우리는 서로 말문을 열었고 마음을 열게 되었어요.
우연 씨와 처음 속내를 텄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우연 씨는 아들이야기를 하며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민망했는지 자기는 눈물이 잘 난다고 말 끝을 흐리더군요.
첫 만남에서 눈물을 보는 것은 저로선 낯선 일이 아니예요. 왜냐하면 재활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픈 아이를 둔 엄마들이거든요. 우연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는 재활병원에서 만난 사이였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첫 대화는 주로 "아이는 어디가 아픈 거예요?"로 시작되거든요.
우연 씨는 통영이 집이고 아들 J가 갑자기 뇌혈관 질환으로 인지 저하와 신체 마비를 겪고 있다고 했어요. 처음 발병되고 서울과 일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지금의 파주까지 올라와 재활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햇수가 3년이 되었네요.
J는 고1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발병되어서 올해 수능도 못 보고 재활치료에 매달리고 있지요. 수능날 우연 씨가 유독 속상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J는 전교 순위를 다툴 만큼 공부도 잘했고 책 읽기도 무척 좋아했다고 해요. 성품도 강아지 같이 다정하고 밝은 아이였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인지며 신체며 너무 많이 망가져서 엄마에게 더 이상 살가운 아들이 아닌 조금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해요.
그러니 아들 이야기에 눈물이 날 수밖에요. 저는 건강한 제 아들이 무슨 일만 잘못되어도 눈물을 쏟고 안타까워하는데 우연 씨는 오죽할까 싶었어요. 보통 엄마들의 눈물 코드는 자식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우연 씨는 제게로 와 데일리 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이가 되었답니다. 서로 간식도 나눠먹고 차도 나눠 마시면서요. 지난번엔 제가 초대권이 생겨서 하늘 소리 색소폰 연주회도 데려가고 아보카도 연어 덮밥과 커피를 즐기며 첫 데이트를 했었죠. 두 번째 데이트에는 하늘소리 단장이 운영하는 황제 누룽지집에 데려갔고 교보문고와 제가 자주 다니는 대형 마트에도 갔어요. 황제 누룽지가 너무 맛있다며 아들 먹인다고 포장도 했지요.
두 번째 데이트는 우리가 병원에 있느라 하지 못했던 꼭 필요한, 주부로서의 일상을 함께 보냈지요.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알차고 즐거운 하루였어요. 제 위주의 볼일을 보러 다닌 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병원 생활에 지친 우연 씨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는 하루가 되었기를.
사람관계란 참 조심스럽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저는 우연 씨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저 잘할 수 있겠죠?
우리들의 돌봄 이야기 1편, <돌봄 이데아>
https://brunch.co.kr/brunchbook/care-society
전직 한국노총 직원으로 사회 문제와 노조인들의 이중성의 목격하고 퇴사 후 지역 소셜시민기자 활동과 돌봄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게 사회 문제에 비판적 시선을 가져다 주었고, 돌봄 노동 현장에서 마주한 사회적 구조와 돌봄 노동자로서 겪은 어려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하기 보다 통합적 시선과 사고로서 사회 전체의 균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생겼습니다. 통합적 사회를 위한 유일한 방법 중 하나가 '함께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가장 민주적이고 지금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돌봄 이야기 2편, <별 밤으로의 초대>
https://brunch.co.kr/brunchbook/carestar
우리들의 돌봄 이야기 1편 <돌봄 이데아>에 이어 발달장애아동 성장 스토리 <별 밤으로의 초대>를 소개합니다. 좌충 우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과 지내면서 느꼈던 소소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돌봄 이데아에 함께 엮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엮어봅니다. 우주의 은하는 항성과 행성이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밤 별들처럼 우리는 서로 도와 가며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우주에 함께 존재하고 싶은 여러분을 별 밤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