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되기

by 헬로해피 최유영

저에게는 우연 씨 말고도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또 한 명 있습니다. 서형이라고 우연 씨보다 더 어린 동생이에요. 저와 11살이 차이가 나는 친구입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나 집안에서나 저는 늘 막내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언니의 존재로 살아보니 제 적성에 참 잘 맞더군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인지 동생들에게 나이 든 사람의 역할을 제법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나이 든 사람의 역할이라.... 저는 어릴 때부터 나이 든 사람들의 고리타분하고 유교적인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가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저는 유교 걸과는 거리가 있었고 제 생각을 확고하게 표현하는 편이었습니다. 저를 포장하는 것에 서툴렀고 나의 주장을 직설적 언어로 표현하곤 했으니까요. 이렇게 유교 사회는 '흠'으로 생각하는 제 성격을 동생들은 좋아하고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11살 차이 나는 서형이에게는 '언니와는 나이 차이를 못 느껴요.'(사실 속이 깊은 서형이가 주로 저를 언니처럼 위로해 줍니다.)라는 말을 들었고 우연 씨에게는 언니와의 대화가 편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역시 저는 제 나이보다 10년 후쯤 태어났어야 했던 것일까요?


동생들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어른들이나 손윗사람들이 제게 했던 불편한 표현과 사고를 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이 노력은 동생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효합니다.


다만 저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저도 모르게 걸크러쉬 버전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 스스로를 평가하길, 강한 사람(어른, 윗사람)에겐 강하고 못된 사람에겐 못된 그러나 선한 사람에게 선한 사람인 것으로 강하게 어필하고 싶습니다. 태생부터 권력에 저항하는 습성을 가졌다고나 할까요? 음... 그러나 전 윗사람에게 버릇없는 사람의 유형일까요?^^


고1 때였을까요? 우리 반 영어 선생님이 미국에서 온 조카를 우리 반에 데려와 소개해 준 적이 있었어요. 그 미국 소녀는 우리와 같은 또래인데 무척 성숙해 보였죠. 피부가 까무잡잡하니 핫팬츠와 민소매 셔츠를 입어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한국말을 잘 못 하더라고요. 영어 선생님이 통역을 해주었나? 그랬던 것 같아요. 미국 소녀에게 질문 시간이 오자 극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제가 저도 모르게 손을 들고 소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너는 한국 사람인데 왜 한국말을 못 하니?"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무례한 일인던가요? '한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이런 정말 삐딱한 마음에서 질문을 한 거 였어요.


그 소녀가 우리 앞에서 너무 우월적으로 보였거든요. 아이들은 무슨 스타라도 된 것처럼 칭송하고 우러러보았고요. 마치 같은 또래 사이에 권력이 형성된 것 같았어요. 영어 선생님께서는 영어를 배우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라고 소개를 해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왠지 그 우월감이 권력처럼 느껴져서 싫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영어 선생님은 제 질문을 소녀에게 전하지 않았지만, 미국 소녀가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성향과 달리 저에게도 당연 잘못된 예외는 있었어요. 저의 인생 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겐 왜 그렇게 제 생각을 강하게 주입하고 권력적이었을까요?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욕심과 조바심 때문이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얼마나 부족한 사고이며 바보 같은 짓이 던지요. 나약한 아이들 앞에서 저도 어쩔 수 없는 어른 꼰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저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세월이, 경험이 저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것이지요.


정말 우리 어른들이 조심해야 할 딱 한 가지는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표현하거나 주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동생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것 중 예상되는 또 한 가지가 있어요. 제 친구가 말을 하더군요. 저에겐 '야료'가 없다고요. '야료'*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이해득살을 따져 사람 관계를 하거나 더 나아가 이용한다는 뜻이래요. 경계가 많아 보이는 조금은 어려운 친구에게 그런 인정을 받으니 이 친구가 나를 진실된 나다운 모습으로 봐줬구나 싶어 고맙더군요.


저 자체가 사람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우연 씨가 제게 털어놓은 첫 고민거리가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한 것처럼 사람 관계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감정이든 물질이든 이해 득실에 따른 관계, 생각만 해도 정말 피곤한 일이긴 해요.


제가 이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 중 한 가지도 밥을 얻어 먹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에요.


이렇게 동생들과 함께 삶을 나누다 보니 깨달은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언니 노릇을 제법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동생들 나이 때에는 지금처럼 포용적이지 못했을 거예요. 동생들에게 흔쾌히 밥을 사줄 경제적 능력도 없었고 마음의 폭도 좁았을 테니까요.


동생들이 느끼는 나에 대한 느낌이 살아온 세월 때문이라 생각하니 제가 그리 잘못 살아온 인생이 아닌 것 같아 저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저는 태어난 끼대로 윗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기보다 후배와 동생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고 '밥 잘 사주는 언니'로 남고 싶군요.



야료* : 사전적 의미는 시비를 걸기, 억지부리기, 말썽 트집 잡기의 뜻임. 친구가 잘못 이해하고 말한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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