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씨가 통영에서 왔다고 하니 수년 전 독서 모임에서 다녀왔던 통영 여행이 생각났습니다. 통영에서의 우연 씨는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다고 해요. 아... 정말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드라마에서나 여행을 떠나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겠어요? 우연 씨를 알고 나니 수년 전 가물가물해진 통영에 대한 기억이 나서 그때 써 놓았던 수필을 펼쳤습니다.
<한국의 나폴리, 통영>
소피 독서모임 선생님들과 통영을 다녀왔다. 통영을 다녀온 후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 있다.
‘이곳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내가 다시 둥지를 틀 곳을 찾는다면 통영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통영은 소박한 멋이 있다. 게다가 고요한 세련미가 있다. 애써 멋을 부리지 않아도 기품 있는 고고함이 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이 고장의 풍광을 보며 통영이라는 곳을 어떤 말로 표현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이 낯선 느낌이 이국적이면서도 정서적 안정감을 주었다. 이곳에 내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편안했다. 이 낯선 곳이 가져다주는 편안함, 무엇 때문일까. 설레면서도 안도감을 주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가진 문장력으로 통영의 매력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나름에 굉장한 심리적 압박감을 안고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통영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대부분 옛집이며 건축물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새로 지은 건물들은 원래의 주인인 옛 건축물에 누를 끼치기라도 할까 봐 모두들 자세를 낯추고 비어있는 옆자리에 조용히 둥지를 틀었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밀어내는 폭력은 없었다. 통영의 사람들은 조상을 섬기듯 현대적인 것들의 화려하고 테크니컬 한 것들을 과시하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전통을 따르는 모습이다. '과거의 것들을 낡은 인습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함께 공존되고 있는 모습’이 통영의 모습이다. 옛 건축물은 자기다움을 품고 현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재 탄생되었다.
통영에서의 현대성은 자본의 폭력인 도시의 침입이 아니다. 새로운 것이 기존의 형태에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하는, 과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현대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그 공존이 주는 품격과 세련미가 느껴진다.
소박하고 고요함 속에서 뿜어 나오는 거대한 아우라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내면이 튼튼한 사람은 낡은 재킷을 걸치고 있어도 기품이 느껴지듯 통영에서는 그 고고함이 느껴진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이곳, 소박한 항구, 통영을 마주하는 순간 이미 통영을 흠모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통영의 매력은 ‘소란스럽지 않음’이다. 바다조차도 요란한 파도소리를 품지 않는다. 보통 바다라 하면 망망대해의 광활함을 떠올리게 되는데 통영의 바다는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아늑하다. 아마도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 남해 지형이 품은 특별함인 듯싶다. 남해의 섬들은 손을 뻗치면 서로 맞닿을 곳에서 서로를 바라봐주고 힘이 되어준다. 서로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서 함께한다. 서로에게 거친 바다와 거센 파도의 방패가 되어준다.
바다를 똬리를 틀듯 감싸고 있는 항구는 거친 파도와의 싸움에 지친 뱃사람들을 품어줄 것 같은 아늑한 품이다.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나그네와 삶의 고단함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 품어줄 것 같은 너그러움이 있다. 거친 파도의 성정을 달래어 되돌려 보내는 지헤로움이 있다. 통영은 응석 부릴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노스탤지어의 향수이다. 어머니의 가슴을 품고 있는 통영이 나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 고요하고도 고즈넉한 통영을 한바탕 소피스럽게 소란을 피우고 돌아다녔다. 15인승 승합차는 통영의 거리거리를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왁자지껄 종횡무진했고 어린아이와 같은 즐거움에 시종일관 까르르 키드득 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래도 통영은 우리에게 너그러운 달관의 미소를 보낸다.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들이 한바탕 까불어 대는 것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준다. 통영은 도보로 여행해야만 이 고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느낀 통영도 여행자가 그냥 스쳐 지나갈 도시가 아니었다. 골목길을 누비며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야 할 곳이다. 떠돌던 여행자가 통영의 삶에 취해 머물다 가고 싶은 곳이다.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어진다. 나의 나라임에도 낯선 이 느낌, 그러나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고향 같은 곳, 한없이 편안한 이유로 우리는 사진 속의 지중해를 동경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햇살, 순한 바다의 물결, 밤의 고즈넉함, 나를 꽉 안아주는 항구, 고요한 마을의 풍경, 통영은 내가 상상하는 지중해의 모습이었다. 나는 지중해의 환상을 통영에서 보았다.
저는 통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군요. 지금에도 제가 떠올리는 통영의 풍경은 고즈넉한 안정감을 주는 곳이에요. 우연 씨의 차분한 안정감이 제가 느꼈던 통영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바닷가 사람인 우연 씨는 저처럼 자연 풍경에 대한 로망이나 간절함은 없다고 해요.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서정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 살다 보니 그렇다고 해요. 아름다운 자연을 실컷 영위한 사람의 여유로움이랄까요? 대신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시 문화에 대한 로망이 더 커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도시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데이트 코스를 추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심리가 사람들을 여행가로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지 지금 세계는 여행가로 넘쳐나고 있어요. 많은 정보가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참 이상하죠? 자신과 다른 낯선 문화나 사고방식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이국적인 풍경은 굉장히 좋아하니 말이에요.
우리 세계에 필요한 것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가가 아닌 정착해서 삶을 살아보는 여행가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곳의 음식을 먹고 골목길을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는 것들 말이에요. 그런 여행을 한다면 그곳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자주의를 존중하는 마인드를 키우는 것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을테니까요.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타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낯설움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익숙하면 그냥저냥 견딜만해지고 오래 보면 아름답게 보이거든죠. 오래 보면 아름다워진다는 건 이제는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 아니겠어요? 여행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죠.
'동경 한다'는 말속에는 그곳이 나와 체질적으로 잘 맞을 것 같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거예요. 내게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공기의 냄새와 습도... 뭐 그런 것들 말이에요.
저에겐 여행지의 냄새가 중요한 것 같아요. 대만에 갔을 때인데요 그곳의 특유 향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어요. 풍경은 너무 좋았는데 도저히 그 습한 공기와 냄새를 적응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며칠이 지나자 조금 적응이 되었지만 처음 느꼈던 냄새가 지금도 생각나는 것 같아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통영은 제가 한번 살아 보고 싶더라고요. 우리 나라의 익숙한 공기와 습도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나를 꼭 안아 줄 것 같은 항구가 마음에 들었지요. 드 넓은 바다는 무서운데 마을이 품은 항구는 참 아늑해요. 마을이 꽉 품고 있으니 얌전해 진거에요. 조각배들이 마을 앞바다에 평화롭게 떠있고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항구는 참 예뻤어요. 통영은 제게 그런 평화와 따뜻함을 주었던 기억이 있어요. 우연 씨처럼요.
동경하던 통영에서 잠시 살아 볼 생각을 하니 잠시 설렜습니다. 훗날 통영 한 달 살이 계획을 세워 봐야겠어요. 저랑 놀아 줄 좋은 친구도 생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