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의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었습니다. AI에 의해 앞으로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적은 글입니다. 비망록이란 죽음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앞으로 같은 슬픔과 고통을 반복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해요. 그러나 작가는 사라져 가는 이 직업들을 무겁게 다루지 않았어요. 심지어 경쾌하고 유쾌해요. 무거운 것을 가볍고 유쾌한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 참 인상적이더군요.
'요리하다' 편에서는 여러 화구를 사용하는 것을 서커스 쇼 저글링으로 표현해요. 공을 허공에 띄우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묘기를 부려야 하는 일이 요리에선 화구를 사용하는 일이래요. 저글링을 실패한 작가는 그만 찜닭을 태우게 되었답니다. 그중 가장 어려운 요리가 스프라는 말도 왜 이렇게 공감이 되던지요. 스프는 아기 달래듯 살살살 저어주며 오래 지켜봐야 하는데 저글링 하듯 묘기를 부려야 하는 요리사의 입장에선 스프가 꽤 힘든 일이 되는 것이죠. 요리를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진리이기도 하지요. 요리계의 돌봄이 스프 끓이기 일까요?^^
이처럼 한승태 작가의 책은 허허허 실소가 터져 나와요. 처음엔 같은 신세여서 우울감으로 읽었지만 작가의 유쾌함으로 어느새 우울감은 사라지고 재밌어져요. 실제로 유쾌함은 고통을 감소시키는 힘을 가지죠.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란 것! 이 책을 보면서 다시 깨닫게 되더라고요. 행복도 직업도 남편도 자식도 운명도요.^^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쓰다'가 작가가 꼽은 미래에 사라지는 동사(직업)들이에요.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진실은 미래 직업에 대한 전문적 견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 예측은 전문가들이 다루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대신 작가가 직접 경험한 노동 르포에 가까워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은 무척 밀착된 노동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노동'이라는 화두를 놓고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해요. 자신의 삶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먹고사는 일이 노동이기 때문이죠.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버바'의 '새우'처럼 자신에게는 노동이 그런 존재라고 해요. 버바는 온통 새우 음식 이야기뿐이죠. 우영우 변호사(드라마 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고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요. 제가 현직인 돌봄과 노동에서 벗어난 글을 좀처럼 쓰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중 한승태 작가가 뽑은 최악의 직업은 콜센터 감정노동이에요.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언어라는 무기를 참 잘도 사용해요. 작가가 말했듯 어차피 사라져야 할 것이라면 콜센터 직업은 정말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실제로 콜센터는 AI의 등장으로 많은 인원이 감축되고 AI로 대체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AI가 저지른 그 많은 오류까지 해결해야 하는 역효과가 발생된 것이지요. 인원은 감축되었는데 인간의 일은 더 늘어난 참 안타까운 상황이 된 거죠.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인간을 해고하고 아직 덜 자란 어린 AI를 고용한것이지요. 그 뒤치닥거리는 오롯이 인간의 몫으로 되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랍니다.(이건 어느 기사 참고) 이거 미성년자 착취인데,,,, 노동법 위반 아닌가요? AI야. 빨리 무럭무럭 자라서 예의 없고 무식한 인간들을 모두 상대해 주렴!
사실 AI의 등장은 슬퍼할 일만은 아니에요. 인간에게 힘든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어요. 특히 AI가 주도하는 힘이 센 불멸의 로봇은 인간에게 엄청난 호감이에요.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면 인간이 빌딩을 올리다 죽을 일이 없어지겠죠. 일을 하다 죽을 수 있는 각종 산업재해에서 해방될 날이 올지도 몰라요. 음식을 빨리 만들기 위해 저글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칼질하다 손을 다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무모한 전쟁으로 인한 제노사이드를 막을 수도 있죠. 미래 전쟁은 디지털 전투로 승패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무모한 전쟁을 쉽게 일으킬수 없다는 거에요. 그뿐이겠어요? 더 똑똑해진 AI의 등장으로 최악의 콜센터 감정 노동도 막을 수 있게되는거죠.
그런데 이러한 기대감은 노동에 제한되지 않아요. 재활병원에서는 지체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자녀가 성장하는 것이 두렵기도 한 사람들이에요. 자녀의 몸집이 커가면서 돌봄 자가 신체적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지요. 정말 돌봄 로봇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지요. AI가 탑재된 정교한 기구를 사용하여 걸을 수도 있을 테고 손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어요.(이미 이것은 상용화중입니다. 너무 비싸서 병원의 돈벌이로 이용됩니다.) 이처럼 간병이나 돌봄의 영역은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예요. 기계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죠.
한 번은 명랑소녀 S엄마가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어요. 전신 마비 딸아이가 체격이 커져 이제 한계가 왔다고요. 평생 어떻게 살지 걱정이라는 거예요. 저는 위로랍시고 해줄 말이 기계의 힘을 믿어 보자고 했어요. 돌봄 로봇도 상용화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조 기구도 싼 값에 상용화 될날이 머지 않았다고... AI와 로봇의 엄청난 발전 속도를 볼 때 정말 곧 가능하게 될거라고.... 정말 그렇게 될까요?
우연 씨는 손상된 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전자 칩(뉴럴 링크)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사실 이것은 더이상 상상이나 판타지가 아니에요. 이 순간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라는 페미니즘 관점의 책에서 등장하는 도나 J. 해러웨이가 생각나네요.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을 하며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와 정상성의 기준을 허물어 버리죠. 인공관절과 철심으로 대체된 우리는 이미 사이보그형 인간인것이죠. 또 기억이 가물한 어느 책인가 영화에선 인간의 뇌와 로봇이 결합되는 미래 상상도 있었어요. 우연 씨의 바람처럼 인간의 뇌를 돕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이처럼 과학의 힘으로 손상된 뇌를 깨울 날이 곧 다가올 우리 미래의 모습 아닐까요? 아들을 향한 우연 씨의 안탑깝고 답답한 마음이 느껴져 조금 슬펐어요.
하지만 한승태 작가가 이 책에서 돌봄 노동을 다루지 않은 것이 조금 섭섭하군요. 작가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직업이겠죠? 직접 경험을 했다면 전화 노동자를 완패 시킬 일인 것 같거든요. 아무튼, 하루빨리 질병과 돌봄의 세계에도 성숙된 어른 AI 씨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네요.
비망록이 '돌봄 미래 희망서'로 읽히다니 전 정말 노동과 돌봄을 버바의 새우처럼 생각하고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