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씨가 빌려 준 소설 한 권을 더 읽고 감상문을 적어 봅니다.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입니다. 이미 석화되어버린 사랑이란 감정을 '후~~' 하며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읽는 기분이 들더군요. 먼지를 털어냈다고 다시 피어오를 일은 없겠지만 사랑이라면 창석과 미영처럼 희생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진짜 사랑이겠지요. 지금의 우리들은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은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 있는 것일까요? 문득 궁금했습니다.
32.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9.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82. 창석과 미영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나. 아니면 그저 욕망에 도취한 불장난이었나. 그 둘은 어떻게 다른가.
100.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도담이 외롭다는 것을 감지하고 남자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접근했다. 시체를 뜯어먹으려고 강바닥에 숨어 있다. 모여드는 다슬기처럼.
100.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졌고, 쉽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도담은 고백해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195. 상처를 자랑처럼 내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가난한가.
227. 7년인가 지나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가 교체된대. 10년이면 도담 씨의 온몸의 세포가 교체된 거야. 그러면 이제 도담 씨도 그 사람도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289.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이미 늙어버린 내겐 감동이 덜 하지만 젊은 청춘들에겐 가슴 저린 사랑으로 와닿을 것 같습니다. 최근 누군가가 내게 사랑은 인내하며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그 말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말인지 사랑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 없이 인내하고 오래 참는 것이 가능한 행위인가요? 또한 상대의 상처까지도 인내하며 보듬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더더욱 자신이 우월한 입지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도담과 해솔은 같은 상처를 공유했기에 서로의 상처를 용서하며 보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데렐라 신드롬은 서로에게 공허와 결핍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많은 드라마에서 볼수 있듯이요. 돈 많은 재벌집 왕자님이 왜 신데렐라급 여자를 사랑할까? 정말 현실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역시나.... 왕자님에게는 큰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하며 사랑까지 이어지게 되는 거에요.
이 책의 본문에서 읽을 수 있듯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내상이 있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픔이란 건강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서이기에 굳이 상대와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들의 삶의 방식인 것을. 아니 그러한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소설에서 배워야 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 빠졌을 때 수면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숨을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소용돌이의 중심을 피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삶도 사랑도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하는 걸까요? 빠른 결과를 바라기 위해 발버둥 치면 안 된다고, 더 역효과가 날수 있다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창석과 미영처럼 급류에 휩쓸려 갈지라도 손을 놓지 않는 사랑 또한 얼마나 숭고한가요.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라고 소설이 말했던 것처럼 창석과 미영의 무모한 사랑을 불륜으로 폄하할 수는 없었습니다. 급류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 순간만이라도 그들이 행복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요? 정말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참 좋겠군요.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현재형일 때 힘이 실린다'는 것도 새삼 와닿게 합니다. 그래요. 사랑은 현재형이어야 하며 과거와 미래형은 힘을 잃습니다에 한표.
ps. 사정이 생겨 이 글을 끝으로 <우연이 본 세계>를 마칩니다. 비록 이 글들을 읽는 독자는 없었지만 글을 쓰는 동안 저는 참 행복했고 감사했네요. 우연 씨를 정말 우연히 만나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우연 씨에게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