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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Feb 07. 2018

지휘실습 1편

군생활 이야기



하아...


초저녁.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와 휴대폰을 보며 한숨을 길게 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 것인지. 아니, 떨리다 못해 지금 이 현실에서 도망을 치거 나미루고 싶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다 했다고 하니 도망칠 수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연락처 검색을 한다.


ㄷㄷㅈ


이렇게 검색을 하니 한 개의 연락처만 나온다.

이제 통화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손가락을 멈칫하고 다시 한번 멘트를 조용히 중얼거린다. 지난주 선배와의 대화 시간 때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더 긴장이 된다. 괜히 전화했다가 실수하거나 실언해서 초장부터 찍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지만 그렇다고 남들 다 안 하는 거 혼자 안 해도 찍힐 것이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머뭇머뭇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확 눌러버렸다. 통화 연결음이 흐르는 동안 머릿속에선 재빠르게 멘트를 되뇌고 있다. 

“네 3대 대장입니다.”

“충성! 이번에 3대대로 가게 될 소위 이산규입니다. 내일 모래 지휘실습 가게 되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누구라고?”

“이번에 3대대로 가게 될 소위 이 산규입니다.”

“아~ 그래? 내일 모래 온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오고 너랑 또 누구 온댔지?”

“장병훈 소위입니다.”

“아 그래 장병훈이. 그래. 잘 하고 내일 모래 보자.”

“예 알겠습니다! 이상이십니까?”

“어 그래~.”

“충성!”


전화를 마치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전화가 끊어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한다. 드디어 한 단계 끝났다. 이제 정작과장님과 포대장님한테만 연락을 하면 된다. 그런데 한번 하고 나서 인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장 두려웠던 사람을 먼저 겪고 나니 그다음은 쉬웠다. 보스몹 먼저 깨고 잡몹을 잡는 느낌이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막상 하고 나니 정말 별거 없다. 나머지도 단숨에 해치워야겠다. 


다시 전화를 돌리려고 연락처를 검색하다가 문득 전화 끊기 전에 ‘이상이십니까?’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며칠 전 대대에 있는 1년 선배랑 통화했을 때 그 말하는 거 대대장님이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 선배도 통화할 때마다 그러다가 혼났다고 미리 언질을 줬는데도 긴장해서인지 후보생 때 습관이 나왔다. 


말해줬는데도 바보같이 실수를 하다니... 학군단에선 왜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해가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후보 생떼는 정말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했다. 나름 군생활을 하면서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악폐습들이 행해져 왔지만 정작 필요한 건 없었던 것 같다. 애초에 군생활을 안 해본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라 현실과 전혀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은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했는데 다들 친절해 보였다. 하긴 선배와의 대화시간에 대화했던 선배도 대대장님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전화를 다 돌리고 나니 룸메들이 PX를 갔다 왔는지 손에 봉투 하나씩 들고 왔다. 같은 부대로 가는 룸메한테 방금 있었던 일을 말 하니 ‘으휴 X신’이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일 자책하면 뭐하나. 그보다 이제 곧 다가올 지휘실습이라는 것이 더 걱정이다.

     

육군포병학교

지휘실습이란, 군대 교육기관에서 이제 막 소위 계급장에게 단 장교들이 받는 OBC(Officer’s Basic Course, 병과별로 장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교육 받음. 초군반이라고도 함) 교육과정 중에 하나로서 자대로 배치 전 미리 가서 체험해 보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학군단 생활을 하며 예비군 선배들한테나 선배장교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 자대로 전입 가면 계급은 있지만 군생활을 모르는 건 이등병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병사들 사이에선 소등병, 쏘가리 등등으로 불리며 대놓고는 아니라도 알게 모르게 무시를 한다. 게다가 부사관들에게도 만만하게 보이면 먹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경험은 없지만 계급 하나로 그 사람들을 이끌어야 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배치받은 자대가 전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병과는 모르겠지만 보통 포병장교들은 전방으로 많이 간다. 병과 특성상 철책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 파주~고성에 연하는 선에 있어서 외진 곳이 많다. 현재 우리 학급 인원이 40명인데 그중 나와 김민우라는 룸메만 경기도에 있는 동원부대로 가고 나머지는 전부 전방이다. 같은 방에(4인 1실) 있는 다른 룸메들도 연천에 있는 부대로 가서 자대 이야기할 때마다 그 둘을 놀리곤 했다.      


지휘실습을 가는 날 아침. 갈 길이 먼 터라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강당에 모여 맛대가리 없는 2형 전투식량에(건조한 밥과 야채 같은 것에 물을 부어 먹는 형태. 잡채밥, 야채비빔밥, 김치 비빔밥 등이 있으며 맛도 없고 싱거워서 기피 1순위. 맛다시에 참치를 넣으면 그나마 먹을 만하다.) 물을 받아서 각자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학교기관 주변 기차역에서 내려주고 같은 부대로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기차를 탄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학교기관이 워낙 아래 지방에 있는지라 오후가 돼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는 기차가 다니는 곳이라 그나마 일찍 도착한 편이다. 역에서 나오니 역 앞에 중형버스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대위 계급장을 한 사람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딱 봐도 우리를 인솔하러 나온 것 같았다. 우리가 경례를 하니 가볍게 받아주고 버스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버스 안에는 운전병과 미리 와 있는 다른 병과 동기들이 4명이 타 있었다. 우리 병과는 8명이라 총 12명밖에 안 되지만 각자 의류대와 디지털 가방 하나씩 들고 와서 25인승인 버스가 꽉 차 보였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인솔장교가 선탑 자석에 타고 버스가 출발했다. 

도심지 주변에 위치한 부대이다 보니 부대로 가는 길은 그냥 시내버스 탄 것처럼 특별할 게 없었다. 차도 많고 아파트도 많은 그냥 그런 도심지. 그런 익숙한 풍경 속을 지나가다 도심지에서 살짝 벗어났다 싶을 때 부대 울타리가 보였다. 역에서 10분 정도밖에 안 온 것 같은데 벌써 도착하다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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