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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Feb 08. 2018

지휘실습 2편

군생활 이야기

버스는 사단 본청 앞에서 멈췄고 우리는 인솔장교를 따라 본청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사단 지휘통제실과 사단장실, 회의실이 있었다. 우리는 그중 회의실로 들어가 군번 순서대로 일렬로 서서 신고 준비를 했다. 신고자는 군번이 가장 빠른 3 사관학교 출신 동기가 한다.(군번은 육사-3사-학군 순이며 같은 출신끼리는 임관성적에 따라 매겨진다) 신고를 연습하는데 멘트 하는 동기가 실수하니까 괜히 나까지 불안하다. 초장부터 실수하면 대참사가 일어나기에 아마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그 총대를 내가 안 메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신고 멘트를 계속 연습하니까 이제 어느 정도 입에 붙었다. 준비가 끝나니 인솔장교가 사단장님을 모시러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사단장님이 들어오셨다. 사단장님은 백발의 살집이 좀 있어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마 길 가다 마주쳤으면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아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계급장을 달고 있으니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겼다. 보통 병사들은 사단장 볼일이 거의 없지만(군생활 내내 한 번도 못 보는 사람도 있다) 장교들은 은근 많다. 특히 이 부대는 사단이 한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병사들도 오다가다 보기도 한다.


다행히 신고 멘트는 무사히 끝났고 사단장님이 한 명씩 악수를 하는데 다들 단전에서부터 호흡을 끌어올려 관등성명을 댄다. 또 이게 뭐라고 차례가 돌아오는 게 긴장이 된다. 보통 관등성명을 대고 ‘감사합니다’ 혹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무난하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앞에 있는 동기가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바람에 말이 꼬여 ‘감 사랑합니다’라고 해버렸다. 사단장님이 웃으면서 ‘감사랑합니다’는 뭐냐고 물으셔서 마치 일부러 한 척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라며 둘러댔다. 그 덕에 졸지에 튀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돼버렸다. 그래도 실수를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사단장님이 나가시고 잠시 후 부사단장님이 들어오셨다. 원래는 사단장님이 훈시를 해야 되나 바로 일정이 있으셔서 대신 들어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말을 시작하시는데 간단하게 할 줄 알았던 훈시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것도 아주 길었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는데 말씀이 자꾸 길어지다 보니 다들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표정이었다. 

듣는 척한다고 열심히 고개는 끄덕이고 있으나 잠이 조금씩 왔다. 나만 졸린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나 말고 조는 사람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너무 크게 졸아서 같이 들어와있던 인솔장교한테 눈치를 받았다. 여기서 졸다가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허벅지 꼬집고 머리 꼬집고 안감힘을 썼다. 부사단장님은 그런 걸 아시는지 모르는 척하시는 건지 그냥 할 말만 계속하셨다.


졸음과의 사투 시간은 얼마 동안 지속되었고 모두 지쳐갈 때 누군가 회의실로 들어와 회의시간 됐다고 말해준 덕에 겨우 끝날 수 있었다. 부사단장님이 나가자 인솔 장교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전 교육시간에 존 것 때문에 많이 화가 나 있었고 그 질책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졸다가 걸렸던 동기가 ‘지휘실습 기간 내내 지켜본다’며 경고받는 모습을 보고 버텨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자대에 들어온 지 2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지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사단장님은 원래 말씀하는 걸 좋아하셔서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주야장천 하시는 스타일이라 피곤한 분이라고 했다.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각 연대로 흩어졌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민우도 연대가 달라 갈라섰다. 우리 연대에 가는 것은 나를 포함 총 6명이고 포병 5명 통신 1명이었다. 병과가 다른 통신 동기는 물론이고 나머지 포병 동기들도 학급이 달라 사실상 오늘 처음 보는 애들이라 서먹서먹했다. 장병훈이라는 동기도 같은 대대로 간다고 이름만 들었지 오늘 처음 만나는 거였다. 연대는 사단 본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군대 건물이라는 게 지은 지 오래돼서 낡고 허름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사단에 들어섰을 때도 건물도 낡은 편이라 그 정도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연대 건물은 지은 지 1년 정도밖에 안 돼 외관이 깔끔했다.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깨끗해서 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아까 인솔장교가 가라고 한 대로 연대지원과로 들어갔다. 파티션으로 나눠진 사무실이 있었고 거기에 인사과장이라는 명패(명패라고 하기보단 인쇄해서 코팅해놓은 거지만)가 있는 책상에만 누가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인사과장님인 것 같아서 경례를 했다. 

경례 소리에 우리를 보고 ‘왔냐?’라는 짧은 인사를 건네고 잠시 앉아있으라 했다. 인사과장님은 마른 체형에 눈이 부리부리한데 얼굴도 하얀 게 환자 같은 느낌이었다. 인사과장님은 우리를 앉혀두고 컴퓨터 화면 앞에서 뭔가 골똘히 하고 계셨다. 우리는 앉아서 지원과를 둘러보다 천장에 있는 에어컨에 눈이 갔다. 적어도 한 여름에 사무실에서 땀 뻘뻘 흘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훗날 이것이 참으로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원부대에서 흔히 쓰이던 105미리 견인포(출처 : 72보병사단 블로그)


인사과장님은 현재 연대장님이 자리에 안 계셔서 신고는 나중에 한다고 우리는 각 대대로 가라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4개의 대대가 전부 모여 있었고 나와 장병훈 소위는 3대대, 통신 동기는 1대대, 나머지 3명은 2대대로 각각 흩어졌다. 대대 지휘통제실이라는 곳에 들어가니 컴퓨터는 많은데 사람이 1명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중하고 있었고 우리는 병사인지 간부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는 동안 문 앞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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