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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Feb 13. 2018

지휘실습 3편

군생활 이야기

"충성!"

우리를 보고 반말을 하기에 당연히 선배라고 생각하고 경례를 했다. 그 사람은 뭔가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하던 것을 멈추고 일어나더니 옆에 기대 있는 목발을 짚으며 우리 쪽으로 왔다. 계급장을 보니 소위였다. 아마도 학사 선배인 것 같았다. 

보통 1년 단위로 임관을 해서 우리가 임관하면 1년 선배들은 중위를 달지만 학사장교는 육사, 3사, 학군장교랑 임관 시기가 달라 군번상 1년 선배라도 진급시기가 다르다. 그 선배는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1분도 채 안 돼서 중위 한 분이 들어오셨다. 현재 대대 인사장교를 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2년 선배, 즉 우리가 자대에 오면 전역을 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지휘통제실에 앉아서 그분이 주신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어디 학교 어느 학과냐, 운동 뭐 잘하느냐, 담임교관이 누구냐 등등을 물었고 질문거리가 떨어질 때쯤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여기 오자마자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현재 우리 연대가 동원사단에서 가장 큰 훈련인 동원훈련 준비 중이며 대부분의 간부 및 병사들이 거기에 지원 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내일부터 훈련장으로 갈 것이라 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연대나 대대가 돌아가는 것을 얘기해줬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일 지휘실습을 하면서 감상문을 사단장님께 보내는 게 있는데 거기에 유독 주의를 줬다. 


작년에 지휘실습을 하면서 누가 병사들이 수저가 없어서 밥을 못 먹는다고 적었는데 그것 때문에 사단 전체가 뒤집힌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수저가 없는 게 아니라 어디 지원 나가면서 수저를 과하게 챙겨서 잠시 부족했던 건데 그걸 그렇게 적는 바람에 사단장님이 노하셔서 졸지에 병사들 밥도 제대로 안 먹이는 부대가 돼서 숟가락 개수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결과보고하느라 난리를 쳤단다. 그래서 괜한 정의감에 불타서 이상한 소리를 하면 주변에서 피해보고 결국 본인한테 돌아올 것이라고 실상을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정말 적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고 적으랬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맡게 될 직책을 설명해줬는데 한 명은 인사장교, 한 명은 작전보좌관을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장기 희망자인 내가 작전보좌관을 할 것이라 했다. 둘이 비교하자면 장단점이 있겠지만 보통 작전보좌관이 더 힘든 직책으로 여겨진다. 사실 장기 희망자라고 말하긴 했지만 굳이 힘든 직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낼 순 없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후 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날 일과가 끝날 때까지 연대장님이 안 오셨고 대대장님 역시 볼 수 없었기에 신고는 다음날로 미뤄졌다. 우리는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풀게 됐다. 듣기로는 보통 지휘실습 가면 선배 방에서 같이 지낸다고 했지만 우리는 동원훈련 나가느라 비어있는 3층 병사 생활관에서 지내게 됐다. 병사들이 쓰던 데라서 대부분의 짐이 그대로 있어 필요한 것만 꺼내고 나머지는 가방에 그대로 두었다. 


저녁 식사는 병사 식당에서 해야 돼서 우리는 후보생 때나 OBC에서 하던 것처럼 줄을 맞춰서 가고 있는데 그걸 본 인사과장님이 여기선 병사들처럼 그러지 말고 자유롭게 다니라고 일러줬다. 저녁을 먹고 사단장님께 소감문을 메일로 보내야 돼서 사무실로 갔다. 아직 퇴근을 안 한 인사장교 선배가 보내기 전에 자기한테 확인을 받으라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일을 작성하는데 뭐라 쓸 말이 없었다. 하루 종일 한 거라고는 신고하고 교육받고 선배랑 대화하고 밥 먹은 것 밖에 없는데 뭐라 쓸지 막막했다. 

어찌어찌 3줄 정도 썼는데 너무 짧은 거 같아서 머리를 쥐어짜다가 동기한테 뭐라고 썼는지 물어봤다. 동기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머리를 쥐어짜다가 인사장교 선배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는 뭐 별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고민하냐며 쓸 말 없으면 교육받은 거 길게 늘여 쓰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받을 때 기억나는 거라곤 졸음과 싸운 거밖에 없는데 그걸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겨우 6줄을 만들어내고 검사를 받아 합격하고 메일을 보냈다. 생활관으로 올라가니 다른 동기들도 올라와 있었다. 이제 취침시간 전까지 쉬다가 저녁 점호만 참관하면 된다. 야간에 당직사관이 상사분이라 우리에 별다른 터치를 안 하셨다. 그냥 병사들이 움직이는 대로 청소시간에 청소하고 저녁 점호 시간에 당직사관이 어떻게 하는지 따라다니면서 본 게 전부였다. 점호가 끝나고 22시가 넘으면 잠기는 TV비밀번호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다들 피곤했는지 그리 늦은 시간까지 TV를 보진 않았다.      


다음날 일과는 이러했다. 아침 점호 참관 – 식사 – 간부 체조 – 상황보고 참석 – 연대장님 신고 – 대대장님 신고 - 동원훈련 준비사열 참가 – 복귀 – 저녁식사 – 저녁 점호 참관 – 취침.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그냥 신고하고 사열하는 거 보고 그러면 되는구나 했다. 하지만 앞으로 보게 될 광경들은 앞으로의 군 생활을 지레 겁먹게 했다. 


시작은 상황보고부터 시작했다. 상황보고란 대대 간부들이 모두 모여서 대대장님께 오늘의 예정사항을 보고하는 시간인데, 첫날 보고 그 시간이 얼마나 고달픈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 말투에 관한 지적이었다. 작전보좌관이 날씨를 보고 하는 중 갑자기 말을 끊으셨다.


“야 작전장교”


“네?”


“내가 저번에 날씨 보고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어? 오늘의 개황은 맑으며 남서풍에 기온은 10에서 20의 분포를 보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라고 하지 않았어?”


“네 맞습니다.”


“근데 넌 또 왜 그렇게 보고해?”


“죄송합니다. 말이 꼬였습니다.”


“한번 말하면 알아먹어야지 뭔 생각으로 사냐?”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보고하며 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인사행정관이 보고하는 도중 말을 끊으셨다.


“너 여기 적혀 있는 거 그대로 읽을 거면 뭐 하러 보고하냐? 내가 그냥 이거 읽으면 되지.”


“죄송합니다.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도 여기 적혀 있는 거 보면 알아. 네가 할 거는 여기 없는 내용을 보고해야지. 너 이번 동원훈련 준비 어떻게 돼가고 있어? 현재 입소 예정 인원 몇 명이야?”


“확인해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걸 확인 안 해보고 뭐했냐는 거야. 백날 연대에서 올린 예정사항 복사 붙여 넣어서 보고할 거야?”


“죄송합니다.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점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다음은 정작과장님이 보고 하는데 이번엔 중간에 끊는 것 없이 다 들으셔서 넘어 간 줄 알았는데 말이 끝나자.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냐? 중요한 게 이런 게 아니라 동원훈련 준비가 얼마나 됐으며 앞으로 뭘 더 해야 하는지를 보고해야지. 오늘 사열준비 참가하는 것도 뭘 중점으로 보고 어떻게 하겠다 이런 걸 말해야지. 거기 가는 거 누가 몰라? 닭대가리 마냥 뭐한다고 쫓아만 다니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해야 될 거 아냐?” 


회의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삭막했다.

그래도 지금 대대에서 대대장님 다음으로 높은 사람인데 아랫사람들 앞에서 ‘닭대가리’라고 표현하는데 나 같은 신입 소위는 어떻게 털릴지 벌써부터 뻔했다. 대대장님의 첫인상은 선배와의 대화시간에 들었던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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