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Feb 27. 2018

지휘실습 4편

군생활 이야기

동원사단 특성상 진급이 물 건너 간 중령들이 쉬러 오는 경향이 많아 연대장님이나 사단장님 보다 짬이 높은 분이 계시기도 한다. 우리 연대 같은 경우 4개 대대장이 모두 연대장님 보다 짬이 높아 연대장님이 지휘에 어려움을 느끼신다고 했다. 그중 우리 대대장님이 으뜸으로 ‘호랑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 선배도 얼마나 많이 당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정년이 얼마 안 남아서 2개월 후면 직보반(전역 전 직업교육을 받는 기간)에 가신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누가 오실지는 몰라도 지금보다 나을 거라고 했다. 회의가 끝나고 대대장님이 나가신 뒤 정작과장님은 늘 있던 일처럼 대대 간부들을 잘 다독이고 각자 자리로 가서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연대장님 신고를 하고 대대에 다시 와서 신고를 하는데 의외로 별거 없었다. 그냥 연대장실, 대대장실에서 신고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간단하게 면담하고 끝났다. 근데 대대장님 같은 경우엔 아침의 모습을 보고 나서 인지 덕담하는 것도 왠지 경고로 느껴졌다.     


신고가 끝나고 동원 훈련장에 갈 준비를 했다. 가서 사단장님이 주관하시는 훈련 준비사열에 참가하는데 정작과장님께선 그냥 어떻게 하는지만 보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너네들이 나중에 할 거니까 잘 봐 두라는 것이다.


우리는 1/4t(군용 레토나 차량, 흔히 지프차라 부르는 차종)을 타고 동원훈련장으로 향했다. 

군용 레토나. 뒤에 4명까지 탈 수 있으나 많이 비좁다.



가는 길 거리거리에 벚꽃이 핀 것이 보인다. 안 그래도 버스커 버스커의 신곡 벚꽃엔딩이 헤집어 놓은 마음이 더 헤집어졌다. 지휘실습만 아니었으면 주말에 외박 나가서 여자 친구와 벚꽃구경을 가는 건데 지휘실습 기간엔 외출 및 외박이 금지되어 있어 그러지도 못 한다. 어제 전화 통화하면서 여자 친구가 이번 주가 피크라 다음 주엔 벚꽃이 질지도 모른다고 칭얼대는 것을 달래느라 혼났다.  걱정마라고, 다음 주까지 벚꽃이 안 질 거라고, 거의 세뇌하다시피 했다.


20분 정도 가서 훈련장에 도착했다. 낡은 막사가 있고 그 앞 공터와 강당에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이것저것 올려놨다. 아마 준비한 것을 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내놓은 것 같다.

훈련장으로 올라가니 화포와 사격지휘차량, 통신장비 등등 각종 훈련에 쓰이는 장비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다. 그것들을 둘러보며 나중에 이걸 내가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지레 겁먹게 된다.

 

그때 무전에서 사단장님이 도착하셨다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 헐레벌떡 막사 앞 공터로 모여든다.

사단장님이 차에서 내리시고 연대장님이 큰소리로 경례를 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소위부터 대령까지 사단장님 옆에 따라다니며 준비한 것들을 하나하나를 둘러본다. 공터를 돌고 강당, 식당을 돌고 훈련장으로 올라간다. 

사단장님이 뭔가 지적하실 때마다 연대장님 대대장님 표정이 안 좋아진다. 특히, 교육훈련 준비를 발표하는 선배 중위가 버벅 거리니 사단장님이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가 그야말로 폭풍전야처럼 적막해졌다.


사열이 끝나고 사단장님이 다시 차에 타자마자 정작과장님은 자리를 피하자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사단장님 차량이 훈련소 위병소를 나가자마자 연대장님의 호통 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단장님은 사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대장 연대장 사열 생략하고 바로 사단장 사열을 하자고 했다던데 저럴 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연대장님이 가시고 우리도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돌아가니 체력단련 시간이라 환복하고 체육활동을 나갔다. 간단하게 풋살을 하고 저녁 먹고 감상문 쓰고 나니 또 하루가 갔구나 싶다.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병훈이가 '어후 쪽 팔려'라며 머리를 감싸면서 들어온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상급자인 줄 알고 경례했는데 병사였다고 한다. 


후보생 시절에도 선배인지 아닌지 확신이 안 가면 일단 경례를 하라고 했다. 선배인데 경례 안 해서 욕먹는 거보다 그냥 민간인한테 쪽 팔리고 마는 게 더 낫지 않냐고 하지만 쪽팔린 것도 그다지 좋은 감정은 아니다. 그 대상이 병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병사도 얼마나 당황했을까.  


금요일이 지나고 부대에서의 첫 주말을 맞았다. 주말의 부대활동은 단조롭다. 그냥 밥 먹고 족구하고 티브이 보고 종교 활동 가고 그런 평화로운 활동들. 게다가 우린 핸드폰도 있어서 따분하지는 않다. 간혹 주말에 일하러 온 선배들이 우리들을 잠깐 보고 가긴 했지만 그냥 말 몇 마디 나누고 가는 게 전부였다.  나갈 수 없어서 답답한 것 빼면 나쁘지 않다.      


평화로운 주말은 순삭 하고 300명 정도 되는 예비군들이 막사를 꽉 채우면서 동원훈련이 시작됐다. 우리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동원훈련에 참가하여 훈련장에서 지냈다. 현역용 자리가 부족해 예비군들 사이에 끼여서 먹고 자고 했다.  

준비사열 때 그 난리를 쳤어도 막상 훈련은 별거 없다. 난 관측을 맡은 선배를 따라 산 위에 올라갔는데 거긴 누가 올 일도 없어 평화로웠다. 초반에만 바짝 하고 나중에는 더 이상 할 게 없어 예비군들이 가져온 과자를 까먹으며 노가리 까면서 놀았다. 

그러다 가끔 누가 올라온다 싶으면 뭔가 하는 시늉을 했다. 예비군들도 이곳의 섭리를 잘 알기에 누가 온다고 하면 같이 열심히 하는 척해줬다.


지휘실습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고 어느새 부대로 복귀하는 날이다. 대대장님께서는 다시 학교로 복귀하면 잘 배워오라고 하지만 정작과장님은 거기서 배운 거 다 쓸모없다고 쉴 수 있을 때 쉬고 오라고 했다. 그때는 뭐가 맞는 말인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거기서 배우는 건 훈련용이고 평상시에 하는 것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는 훈련이 많지 않아 일상 업무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거기서 배운 게 쓸모없는 것이지만 훈련 때를 생각하면 잘 배워가야 한다.  

그래서 난 나중에 지휘실습 나온 후배들에게 적당히 놀고 적당히 배워오라고 했다. 그 적당히라는 게 가장 힘든 거 긴 하지만.   

  

학교로 복귀하니 각 부대에서 지휘 실습하고 온 동기들이 각자의 썰을 풀어놓기 바쁘다. 생활관에 누워 있다가 선배한테 걷어 차인 이야기, 가자마자 유격훈련했던 이야기, 또라이 같은 포대장 만나 욕 왕창 먹은 이야기 등등. 그 와중에 난 예비군들이랑 과자 까먹은 썰을 풀며 부러움을 받았다. 사실 소위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부러움 받을 것도 없었다. 물론 부대의 위치나 생활여건은 좋았지만 결코 녹록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여건이 좋은 곳은 있어도 결코 편한 곳은 없다. 직장이 서울에 있다고 직장생활이 편한 건 아니지 않은가.


지휘실습을 갔다 오니 동기들이 조금 변했다. 야전 용어를 쓰고 훈련 나가서 비닐봉지에 밥과 반찬을 넣고 맛다시에 비벼 먹는다. 그리고 지도 장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비록 중위일지라도 전방을 갔다 온 애들이 볼 때는 야전도 모르고 후방에서 꿀 빠는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선배니까 우리보다 잘 알거라 생각했지만 전방을 겪어보니 여기서 군생활하는 사람들이 뭘 알 거 같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가오 잡아도 뒤에서는 비웃었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가 야전 갔을 때 병사들의 태도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참고로 지도 장교 제도는 우리 다음 해에 폐지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휘실습 3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