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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Dec 03. 2019

게임 중독자가 군대에 왔다

지난 5월 세계 보건기구(WHO)는 게임 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겠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 중독으로 인한 사건이 각종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적으로 질병이라고 못 박아버리니 게임에 대한 시선이 더 안 좋아졌다. 

청소년기 이상의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세계 보건기구에서 저렇게 말할 정도이니 우리 아들이 게임 중독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도 할 것이다. 군대에 간다면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어쩌면 게임을 못 할 테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게임 중독이라고 불릴 만큼 게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집에서 게임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가시간 동안 하는 것이지 대부분 일상생활은 가능하다. 학교생활도 하고 직장생활도 잘한다. 당연히 군대생활도 가능하다.

그럼 정말 게임 중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친구들은 군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진출처 :디스패치

 정말 밖에서 게임만 하다 왔다고 한 친구가 딱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윤(가명)이는 전입 오고 첫인상부터 그리 좋지 못했다. 마른 몸에 심한 일자목, 구부정한 등, 어눌한 말투가 군대에 쉽게 적응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가정환경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혼가정에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아버지와는 가끔씩 보는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있다가 왔는데 정말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등이 구부정했으며 굳이 엑스레이를 찍어보지 않아도 일자목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씻지도 않고 게임을 했는지 치아 상태도 많이 안 좋았다. 어금니가 몇 개 안 남아 있었고 치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군대에 오기 전 치료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치아는 비싸니까 치료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이 사실을 모르는지 입대 전에 갈비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한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웬만한 건 할머니가 다 해줘서 혼자서 신발끈도 잘 못 묶는다고 했다. 군대생활은 고사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한지도 걱정됐다.

일단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통해 치아상태를 알리고 치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윤이에게는 군대에서는 밖에서 처럼 게임만 하려고 하지 말고 책도 보고 운동도 하라고 권장했다. 뭐 형식적인 말이긴 하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게 전부였다.  


그 후 몇 주 동안 정윤이를 지켜봤는데 주특기에 대한 이해능력이 떨어졌고 잘 녹아드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담당 간부를 붙여서 교육을 시켜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 가지 고무적인 점은 의외로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체력단련 시간에 축구를 못 해도 같이 하려고 나갔고 동기나 선임이랑 같이 뜀걸음 하는 것도 종종 봤다. 게임을 안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이 기특했다. 치아 치료도 꾸준히 받으면서 상태도 좋아졌다. 

시간이 지나고 주특기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있었다. 운동에는 재미가 붙였는지 몸이 점점 다부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역할 때쯤 일자목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입대할 때처럼 마르고 꾸부정한 몸이 아닌 근육질의 몸이 되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군대가 사람을 저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가 전역하고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성공한 군생활이 아닐까.


두 번째 친구 재훈(가명)이는 정윤이와 달리 외관상으로 밖을 때 평범해 보였다. 키도 컸고 말끔하게 생겼었다. 하지만 그는 비록 유명한 게임은 아니지만 게임대회에 나갈 정도로 게임에 몰두했고 공부나 운동과는 전혀 담을 쌓고 살아왔다. 

당시에 있던 부대는 PC방이 없었기에 그가 군대에서도 게임만 할 걱정은 없었지만 그의 체력이 걱정됐었다. 분명 게임만 해서 그리 좋을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체력단련을 잘 따라왔다. 아니 따라오는 정도가 아니라 피지컬이 남다른 아이였다. 

그의 생애 첫 3km 측정을 하는 날 그는 특급으로 들어왔고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는 아직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아 특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이등병들 이상은 했다. 그가 체력 올 특급을 받는 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운동하다 여기저기 다쳐서 입실을 자주 했는데 퇴원하고도 체력측정 따윈 문제없이 통과했다. 

학군단 시절 아침운동을 하기 싫지만 특급이 안 나와서 매일 아침 뜀걸음을 했던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 덕분에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형 주인공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라이벌 캐릭터의 기분을 살짝 맛봤다. 우리는 그가 타고난 재능을 낭비하고 있었음을 알려줬다.  


물론 이 두 사람처럼 게임중독이라 할 정도의 사람이 군대에 들어온다고 다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적응하는 사람도 있고 적응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군대 적응 여부는 게임 중독과는 별개이다. 그냥 그 사람의 성격에 달려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에 "프로 게이며 OOO" 검색을 해봤는데 프로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 친구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서 한참 들여다봤는데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르지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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