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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Oct 30. 2019

영창이 사라진다


영창


군대를 가지 않아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병영의 창고라는 뜻의 영창은 1896년 고종이 반포한 '육군 징벌령'에 있던 제도가 123년 동안 존속해오던 제도이다. 주로 군생활을 하면서 규정을 어기게 되면 가게 되는데 영창에 들어가 있는 시간만큼 지긋지긋한 군생활이 늘어나기 때문에 현역병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이었다.

지난 2월 국방부가 발표한 '2019~2022 인권정책 종합계획'에서 영창제도 폐지를 공식화했다. 

병사들의 어긋난 행동에 대한 처벌을 하기 위한 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는 '신체적 자유 침해'와 '영장주의 위반'이었다. 


영창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접했을 때 단순 영창이 문제가 많은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창제도'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스템'이 문제라고 본다. 이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 영창이라는 곳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영창은 군생활 중에 병사들이 받는 징계 중 하나로 교도소와 비슷한 곳이라 보면 된다. 다인 1실을 쓰며 일과시간 내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반성문을 쓰게 한다. (1인실도 있긴 한데 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병사들이 사용한다) 예전에는 식사시간, 취침시간을 제외한 일과시간 내내 정좌 자세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나아진 편이다. 단, 눕는 것은 취침시간에만 할 수 있다. 일정 시간 TV를 틀어주기도 하는데 대신 뉴스만 볼 수 있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는데 예전에는 자살시도 등을 방지하기 위해 오픈형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지금은 인권침해 논란으로 앉으면 얼굴만 보일 정도로 가려놨다.(하지만 아직도 몇몇 부대에는 오픈형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안에서 책이나 보다 나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다녀온 병사들 말로는 3~4일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그 이상 넘어가면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복무기간이 늘어나는 건 덤이다.

게다가 이렇게 영창 기간을 채우고 오면 보통 다른 부대로 보내진다. 사안에 따라 부대에 남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영창을 갈 정도의 징계는 병사들 간의 갈등이 원인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 차원에서 다른 부대로 보내진다. 중대 이동을 많이 하는 편이고 좀 심한 경우엔 대대 이동을 하기도 한다. 가끔 정말 심한 경우엔 연대를 이동하기도 하는데 주특기 때문에 연대 내에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영창 판결이 나면 징벌 + 복무기간 연장 + 북귀 후 부대 변경 3종 세트를 맞게 된다. 물론 전역하고 나면 별거 아닌 에피소드가 되지만 군대에 있을 때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신체적 자유 침해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피해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정도 처벌은 약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영창에 가느냐라는 것이다.  


군대에선 군기와 질서를 위해 병영생활 양정규정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와 다른 특수한 조직이다 보니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법으로 처벌하긴 애매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규칙들을 정해놓고 징계할 기준을 만들어 놓았다. 처벌에는 근신, 휴가제한, 영창, 강등 순으로 높아지는데 보통 징계사유가 발생하면 휴가제한이나 영창이 주로 나온다. 가끔 근신이 나오긴 하지만 강등은 거의 없다. 아마 강등까지 갈 정도면 아마 군내 처벌이 문제가 아니라 교도소까지 갈 것이다. 

(이 병영생활 양정규정에는 병사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의 징계 기준도 나와있다. 간부들은 경징계와 중징계로 나누고 경징계에는 견책, 근신, 감봉이 있고 중징계에는 정직, 강등, 해임, 파면이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경징계로 끝난다.)


그런데 이 규정에 대한 처벌을 집행하는 것이 지휘관한테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규정에 보면 영창에 가는 사유들이 상세히 나와있어서 사유에 해당하는 잘못이 아니라면 영창을 안 갈 것 같지만 사실 지휘관이 어떤 죄목을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예로 들어 욕설을 해서 징계위원회에 올라온 경우 보통은 휴가제한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욕설을 두 번 이상 했다면 반복적 행동으로 중대한 위반으로 간주하여 영창 사유가 될 수도 있고 지휘관이 욕설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욕설을 했다며 지시 불이행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영창에 가게 되면 법무부에서 적법성 검사라는 것을 거치는데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영창 기간을 줄이는 판단을 하지 영창 가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구색만 갖추면 지휘관의 의견을 들어준다. 따라서 같은 죄를 짓고도 지휘관과의 관계에 따라 처벌받는 수위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즉, 군 법원에 판단 없이 부대 지휘관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헌법에서 정한 영장주의에 심각하게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징계위원회의 판단에 항소는 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규정이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거나 지휘관이 내린 처벌에 반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군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법 전문가가 붙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시대에 흐름에 따라 영창이 폐지 절차를 밟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대신 간부와 같이 정직, 감봉, 견책 같은 징계를 내린다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병사들에게 실질적인 처벌이 되는지 아직 의문이긴 하다. 

영창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긴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잔존한 병영 부조리 방지나 갈수록 해이해지는 군 기강을 바로 세우려면 앞으로 신설될 처벌은 영창보다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간부들은 영창이라는 징계가 없다. 지휘자의 재량에 따라 간부도 영창을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 시행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그도 그럴게 간부들에게 영창이라는 것이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쪽팔리긴 하겠지만 군생활이 늘어난다고 해도 출퇴근이 가능하기에 병사들보다 체감하는 것이 적고 그 간부가 없으면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다른 간부들이 고생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간부들이 체감하기에 치명적인 것은 영창이 아니라 감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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