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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Oct 14. 2019

'라떼는 말이야'가 불러온 참사

"나 때는 말이야......"

꼰대들의 단골 멘트로 불린다는 도입부.  

주로 자신이 고생했던 것을 이야기하며 니가 힘든 것은 별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멘트이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언을 해준답시고 하지만 듣는 사람은 실상 도움 하나도 안 되는 이야기라서 저 인트로만 나와도 벌써 피곤해진다. 


군대가 수직구조의 끝판왕이라 그런지 군생활 내내 저런 멘트를 많이 들어왔다. 초급간부 시절엔 선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저런 소리를 해왔다. 그리고 초급간부를 벗어나고서도 대대장이나 작전과장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그런 소리할 때마다 거북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사람이 겪은 군생활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참고자료 정도로 들어줬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그동안 봐왔던 군대가 시대와 함께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군대가 변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탄하듯 내뱉는 느낌이었다. 간혹 시대에 분위기를 따라오지 못하고 예전 군대처럼 행동하다 징계받는 이들도 봤다. 


재밌는 것은 이런 꼰대성 발언이 몇 년간 복무해온 직업군인들에게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1년 9개월이란 시간 동안 복무하는 병사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분대장 결산을 하다 보면 한 번씩 후임들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하는 멘트는 '저 일병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라거나 '저희 때는 더 심했습니다' 등등.

그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후임들이 잘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나 역시 군생활을 해오면서 머릿속에 박혀버린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재밌는 것은 이런 불만을 하고 있는 이들이 일병일 때도 이들의 분대장들은 저런 말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들 분대장들도 똑같이 이야기를 해왔다고 말하면 '그래도 우린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며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똑같았다. 그저 후임의 자리에서 선임의 자리로 가면서 보이는 것들이 생긴 것뿐이다.

아마 그들이 후임들한테 교육할 때 똑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도 그냥 한탄하듯 내뱉는 말이면 좋으련만 가끔 이런 생각의 차이로 인해 참사가 일어나곤 한다. 



영호(가명)는 당시 분대장들 중에서도 웬만한 대대 간부들이 알고 있던 유명한 친구였다. 그는 포대에서 이발병을 맡고 있었는데 사회에서 미용을 배우다 온 친구라서 머리를 상당히 잘 잘랐다. 그러다 보니 간부들의 머리도 자르게 됐고 그게 소문나서 대대장님도 머리를 잘라달라고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주특기도 잘하고 군생활도 잘해서 분대장도 남들보다 일찍 달았었다. 하지만 간부들의 시선과 달리 병사들 사이에서 그리 행실 좋지 못한 친구였다. 


그는 평소 분대장으로서 후임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했는데 일병 때부터 봐왔던 후임은 그가 일˙이등병 때 했던 행동들을 보면 절대 지금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본인도 개판 치면서 다녔으니 군기를 잡으려고 해도 불만만 쌓이는 것이다. 지금도 본인이 할 일은 대충대충 해서 식당 청소를 하면 그가 닦은 식판으로는 밥을 못 먹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뭐 거기까진 그렇다 쳐도 가장 큰 문제는 욕설을 자주 했고 심지어는 폭행을 한 경우도 있었다. (팔뚝을 주먹으로 치는 정도였지만 폭행은 폭행이다) 


결국 그는 대대 마음의 편지에 적혔고 조사해보니 피해자가 몇몇 있었다. 피해자들의 진술서를 확보하고 그와 면담을 했다. 그는 순순히 본인의 혐의에 대하여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억울한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 하는 게 제가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정말 저 때에 비하면 지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최대한 순화하고 편의 봐주는데 요즘 애들은 진짜 편하게 군생활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때 불현듯 인사장교 시절 처음 징계위원회를 준비할 때가 생각났다. 

지난번에 군대에서 징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썼을 때 했던 이야기인데 그 당시 징계받은 병사의 사유가 가혹행위, 성추행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었지만 그는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장난'이라고 표현했다. 그 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전혀 다른 부대에 왔음에도 멘트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군생활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방식의 행동으로 피해자들을 만들었고 본인들도 불필요한 군생활이 연장되었다. 영호가 한 말처럼 그때는 그랬다고 그게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다. 

 

결국 영호는 영창을 가게 되었고 갔다 와서는 포대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동한 포대에서는 아무래도 선임 대우를 많이 못 받다 보니 후임들을 괴롭힐 일은 없었고,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말은 많았지만 주특기를 인정받아서인지 다시 분대장까지 달고 무사히 전역을 했다.


1년 9개월이 군대에 있을 때는 길게 느껴져도 막상 지나고 보면 짧은 시간이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의 분위기 때문인지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하는 친구들을 보면 군대가 꼰대 양성소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디 나가서는 젊은 꼰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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