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Oct 08. 2019

탄피가 한 발 없습니다?

탄피란 탄환의 화약 부분을 감싸는 원통형의 부품을 말하며, 탄환의 장전이나 사용을 쉽게 만들어주는 보조장치이다. 총을 쏘고 나면 탄환만 앞으로 나가고 탄피는 옆으로 빠진다. 탄피가 빠질 때 그냥 빠지는 게 아니라 튕겨져 나가기 때문에 이리저리 튀게 되고 탄피 받이를 끼고 사격을 해서 탄피의 분실을 막는다. 

흔히 군대에서 탄피를 잃어버리면 X 된다고 하는데 정말 주옥 된다. 사격하다 탄피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정말 뒤집어진다. 사격이 지연되는 것은 둘째치고 찾을 때까지 휴식 따위는 없어진다. 


미군은 탄피 따위 안중에도 없다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 군대는 이토록 탄피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원절약이다. 황동 재질로 만들어진 탄피는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 자체가 낭비다. 군수 관련 업무를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나가는 소리로 듣기로는 탄 한 발에 500원 정도 한다고 들었다. 한 번 사격할 때마다 몇 천발을 쏘다 보니 없던 시절에는 정말 귀중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국민의 세금인 만큼 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 한다.


두 번째는 총기사고 방지이다. 사실 첫 번째는 부차적인 이유고 가장 큰 이유가 총기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총알도 없이 탄피만 갖고 뭔 총기사고가 일어날까 싶지만 사격이 계속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탄을 쏘았다는 정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게 탄피인지 실탄 일지 알 수가 없다. 쏘았다는 증거가 있더라도 탄피를 갖고 있다가 나중에 실탄 사격할 때 쏜 척하고 탄피를 제출해버리면 실탄을 빼돌릴 수 있다. 그렇게 빼돌린 실탄으로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자신이던 타인이던 한 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탄피 한 발만 없어져도 발칵 뒤집어져서 찾는 것이다.


탄피가 없어지는 경우는 보통 탄피 받이가 없는 상황에서 사격을 하는 경우이다. 탄피 받이가 이상 있거나 사수가 탄피 받이를 잘못 끼워 사격 중에 탄피 받이가 빠지면 탄피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부사수나 대기인원이 탄이 어디로 튀는지 봤으면 다행인데 보통 표적이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경우가 많다. 가끔 탄피 받이 지퍼가 열린 상황에서 사격을 하다가 없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엔 탄피가 멀리 안 튀기 때문에 찾는 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그렇게 탄피가 없어지면 사격을 중단하고 모든 인원이 투입돼서 근방을 샅샅이 뒤진다. 사격을 하다 탄피가 하나 없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보통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아낸다. 


하지만 탄피를 끝끝내 못 찾아낸다면 어떻게 될까?




사격집중주를 앞두고 부대 뒷산에 있는 영점 사격장에서 사격을 할 때였다.

보통 영점사격 간에는 탄피를 분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영점 사격장은 25M 거리의 표적에 쏘기 때문에 사격장이 좁고, 영점사격의 목표가 천천히 정확하게 쏘는 것이기에 급하게 사격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사수가 표적이 아닌 사수가 사격을 다 했는지만 보고 있어서 탄피 받이가 빠져서 탄피가 튀더라도 어디로 튀는지 쉽게 발견핟다. 하지만 거의 없다고 해서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부가설명 : 사격에는 실거리 사격이랑 영점사격이 있는데, 실거리 사격은 순차적으로 올라오는 표적을 맞추는 사격이고 영점사격은 사람마다 총을 쏠 때 보는 위치가 다르고 총알이 맞는 위치도 달라 그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사격이다. 영점 사격은 25M 표적지에 3발씩 3번 쏘며 맞는 위치를 보고 총기를 조작한다. 그래서 실거리 사격을 하기 전에 영점이 안 맞는 인원들은 영점사격을 실시한다.)


당시 우리 포대 이등병 중 한 명이 영점이 전혀 안 맞는지 6발 사격을 했는데 표적에 2발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3발을 쏘고 표적지를 회수해오는 동안 부사수들이 탄피를 세고 이상 유무를 보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등병 사로에 있던 부사수가(당시 부사수는 간부들이 하고 있었다) 탄피 이상 유무 보고를 하지 않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왜? 탄피가 안 맞아?"  


"탄피가 한 발 안 보입니다."



탄피가 안 맞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끔 탄피가 탄피 받이 구석에 껴서 안 보이는 경우가 있어 탄피 받이를 뒤졌으나 탄피는 없었다. 그다음으로 사수 밑에 깔고 있는 판초우의를 들쳐보았다. 거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부사수에게 물었다.


"탄피 받이가 중간에 날아간 적 없지?"


"예. 탄피 받이 잘 껴져 있었습니다."


"사격은 다 했어?" 


부사수는 머뭇거리다 '다 한 것 같습니다'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4개 사로 밖에 안 돼서 뒤에서 사격통제를 하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문제 될 만한 상황은 없었지만 표적지에 탄흔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다 쏘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사수들이 표적지를 회수해온 다음에 총기의 약실을 검사하고 격발도 해봤으나 이상이 없었다. 사수 장구류에 탄피가 껴있는 경우도 있어 이등병의 장구류를 해체시켜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찾으면 사격이 너무 지연될 것 같았다. 

우리 포대도 그렇고 본부 포대도 작업 인원이 부족해서 사격이 끝나는 대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여태껏 영점사격을 하면서 탄피 수색이 길어진 적이 없었기에 일단 사격을 진행했다.(사격통제는 대위급 간부들이 하기에 포대장이 중위인 본부 포대 인원들은 포대장이 통제할 수 없어 우리 포대에 같이 껴서 사격을 하고 있었다)  

사격은 계속되어 1차 사격이 다 끝나고 합격인원들은 내려보내고 재사 격 인원들만 남았다. 중간에 틈틈이 탄피를 찾긴 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사격까지 끝나고 남은 인원들을 모두 데리고 영점 사격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려 있는 판초우의를 모두 치우고 바닥을 뒤졌다. 탄피 받이도 하나하나 다 뒤져보았다. 그래도 안 보여서 포대에 있는 지뢰탐지기도 가져왔는데 사격장엔 지뢰탐지기가 반응하는 물건이 너무 많아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일과 내에 찾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대대장님께 보고를 하였다. 대대장님은 저녁을 먹고 포대 인원들 전부 올려 보내서 무조건 찾아내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해가 저물었다. 포대 인원들은 손전등을 들고 영점사격을 이 잡듯이 뒤져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탄피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탄피를 잃어버렸던 이등병은 사실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쏜 탄피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마 생활관에 가면 선임들한테 욕을 먹지 않을까 싶다. 

사실 공포탄이면 어디서 탄피 하나 구할 수도 있지만 실탄을 그러지 못한다. 설령 있더라도 로트번호가 달라 나중에 문제 될 수 있다. 


저녁 9시가 되어도 안 나오니 대대장님은 포대 인원 중 한 명이 갖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했다. 포대장으로서 당연히 우리 포대 중에 그런 짓을 할 인원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대장님은 포대 인원들한테 만약 못 찾을 경우 우리는 계속 탄피만 찾을 것이니 혹시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자수를 시키라고 했다. 

포대 인원을 의심하는 듯한 그런 발언은 하기 싫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인원들을 전부 불러 모아 혹시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탄피를 마음의 편지함에 넣으라고 했다. 혹시 소리 날 수도 있으니 휴지에 싸서 넣으라고까지 말하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포대장이 부대원들을 못 믿겠다고 한다면 부대원들도 포대장을 믿어줄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게 상황이 거기까지 가는데 나의 실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탄피가 분실되지 않을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사격을 강행한 점.

둘째, 탄피가 분실되고 늦게 보고가 들어간 점.

셋째, 탄피가 분실될 당시 자리에 있던 인원들을 내려보낸 점.


여기서 첫째, 둘째는 그냥 나 혼자 대대장님한테 혼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셋째는 치명적이었다. 

그 말은 정말로 탄피를 누군가 가져갔다면 그게 본부 포대 인원 일지 우리 포대 인원 일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우리 포대 인원들만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포대원들도 있는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과 우리 포대원들만 있는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적어도 보고를 미리 했다면 대대장님의 지침을 받아 자리에 있던 인원들을 내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지식에서 오는 안일함은 치명적이었다. 따라서 이런 발언을 함으로써 오는 페널티는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10시쯤 되니 일단 수색을 끝내고 병력들을 취침시켰다. 

취침 보고를 하러 지휘통제실에 들렸다 나오면서 선임 포대장을 만났다. 선임 포대장이 아직도 못 찾았냐고 묻는 말에 고개만 저었다. 

선임 포대장 말로는 탄피가 분실되었는데 이렇게 처리하는 부대는 처음이라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탄피가 분실되면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고 헌병대에서 조사가 나와야 한다고 한다. 

헌병대에서 당시 사격했던 인원들을 조사를 하고 기타 부대 정밀 조사를 한 다음 사유서를 작성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서 처리를 해야 하지만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서인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보고는 들어가지 않았다. 뭐가 현명 한진 모르겠지만 이래나 저래나 죽을 맛인 건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편지함을 열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늘도 탄피 수색만 할 생각에 골치가 아팠다. 지휘통제실에 내려가니 교육장교가 있었다. 교육장교랑 탄피의 행방의 대해서 논하다가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탄피 받이를 한 번 더 뒤져보자고 했다. 교육장교는 탄피 받이를 가지러 본부 포대 다목적실로 갔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왔다. 


"포대장님! 탄피 찾았습니다!!"


"뭐? 어디 있었어?"


"교보재 박스 열었는데 맨 위에 있는 탄피 받이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뭐? 그게 말이 돼?"


어제 탄피 받이를 반납하기 전까지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았었다. 누군가 일이 커진 것 같으니 은근슬쩍 탄피 받이에 넣어둔 것 같았다. 정황상 심증이 가는 인물은 몇몇 있지만 굳이 범인을 색출해내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더 이상 탄피 수색은 안 해도 된다는 점과 역시 우리 포대 인원은 아니었다는 점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그리고 탄피를 잃어버리면 X 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급장이 같다고 같은 계급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