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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Sep 28. 2019

계급장이 같다고 같은 계급은 아니다.

군대에서는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계급에 따라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같은 계급이라도 그 사이에 '호봉'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병사들을 월 단위로 구분하여 그 호봉을 구분 지었으며 병사들 사이에선 21개의 계급이 있다는 소리도 있었다. 

이러한 제도에서 이상한 점은 4월 첫째 주에 입대한 병사와 4월 마지막 주에 입대한 병사는 동기지만 3월 마지막 주에 입대한 병사는 4월 첫째 주에 입대한 병사의 선임이었다. 그래서 며칠 차이 안 나는데 선임 행세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이도 많았다. 

요즘은 병사들 사이에 선 후임을 최대한 줄여보고자 입대 후 앞뒤 1달은 동기라는 개념이 생겼다. 즉 4월 1일에 입대하면 3월 입대한 사람과 5월에 입대한 사람이 동기가 된다. 여기서도 이상한 점이 4월 입대자와 5월 입대자는 서로 반말하고 5월 입대자와 6월 입대자도 서로 반말하는데 6월 입대자는 4월 입대자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 즉, 본인에게 두 명의 동기가 있는데 막상 둘은 동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1살 차이 선후배 사이에 빠른 년생이 끼어있는 느낌이랄까? 뭔가 족보가 꼬인 느낌이 나긴 하지만 병사들 입장에선 입대 월로 끊는 것보다 낫긴 하다. 


그에 비해 간부들의 호봉 차이는 심플하다. 입대 연도로 끊기 때문에 딱히 논란거리가 없다.

초급간부일 때는 같은 년도라도 임관 월에 따라 선 후임을 나누기도 하지만 보통 장교는 대위부터, 부사관은 중사 때면 그냥 임관 연도로 구분된다. 그 정도 시기가 되면 같은 계급이라도 짬밥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기 때문에 임관이 몇 월이냐 이런 건 우스워진다. 

대위 같은 경우 초임 대위와 소령 진급에 들어가는 대위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7년 차 대위는 초임 대위가 고 1 때 소위로 임관해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대위라도 같은 대위일 수가 없는 것이다.



처음 중대장으로 갔을 때 선임으로 있던 중대장들과 5년, 6년 차이가 났다. 

보통 이렇게 짬이 많은 대위들은 중대장을 하지 않는다. 군에는 다음 계급으로 진급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보직이 있는데 대위의 경우 중대장을 적어도 2번은 해야 한다. 그 이상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만큼 힘들고 고된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대장 직책은 되도록 빠르게 마치려고 한다. 

하지만 윤 일병, 임 병장 사건 이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중대장을 해야 한다는 바람이 불어 3차 중대장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그 바람도 잠시였고 다시 중대장을 2차까지만 하는 추세로 흘러가 몇몇 사람들만 원치 않는 3차 중대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대대에 그런 3차 중대장이 2명이나 있었다. 

즉, 대대에 포대가 4개 중 대위급이 지휘하는 포대가 3개인데 그중 내가 막내고 나머지 두 명은 나랑 짬 차이가 5, 6년 나는 분들이었다. 

상비사단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데다가 다른 포대장들의 짬이 어마어마하니 그만큼 우리 포대가 약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정보급관은 상사 진급을 앞둔 중사였고 전포사격통제관도 중사 진급을 앞둔 하사였다. 즉, 우리 포대가 모든 직책에 있어서 막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병사들 사이에서 포대장이 짬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힘든 일은 다 우리한테 올까 봐 염려한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다. 막돼먹은 고참들 같은 경우 귀찮으면 짬 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인지 사람들이 좋아서인지 대대에서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포대장들끼리 있을 때는 잡일 같은 것은 눈치껏 하긴 했지만 업무적으로 대놓고 짬 시키는 일은 없었다. 

업무 분배는 상식선에서 이루어졌고 짬 차이는 많이 나지만 한 포대의 포대장으로서 존중해줬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나무라기보다 충고를 해줬다. 

한 번은 대대에서 대표로 한 명의 포대장이 브리핑할 일이 있었다. 보통 이런 일들은 서로 안 하려고 하기에 당연히 내가 하겠거니 했는데 선임 포대장이 먼저 나섰다. 내심 부담스러웠는데 해준다고 하니 기쁘면서도 괜히 눈치 본다고 빈말로라도 내가 한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면 나야 편하긴 한데 막내 포대장 시키면 욕먹을게 뻔하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해."


뭐든 처음이었던 나와 달리 그들은 호봉이 높은 만큼 모든 것에서 노련했고 여유로웠다. 

나설 때 안 나설 때를 적절하게 지키는 그들을 보면서 짬의 차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같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다 같은 대위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함정은 호봉이 높다고 다 노련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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