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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Sep 19. 2019

전문하사는 아무나 하지 못한다


전문하사

유급지원병제(有給志願兵制) 또는 전문병제(專門兵制)가 제도의 공식 명칭으로, 2008년 병 복무기간 단축에 의해 숙달된 인원들이 빠져나가 병력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

-출처 : 나무 위키-


전문하사는 쉽게 말하자면 병으로 복무기간이 끝나고도 하사로 지원하여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이다. 전문하사와 유급지원병 두 분류가 있는데 전문하사는 일반적으로 입대하여 복무기간을 만료하고 하사가 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라면 유급지원병은 입대 때부터 복무기간이 끝나면 하사가 되기로 내정되어 있는 것이다.


부대 입장에서는 전문하사를 권장하고 한 명이라도 더 임관시키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가 전문하사 한 명은 어마어마하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군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작업들은 간부의 통제하에 진행해야 되는데 휴가나 근무 등 이런저런 이유로 간부들이 빠지고 나면 작업을 통제할 간부들이 부족해진다. 그러다 보면 간부가 없어서 작업을 못 하는 경우도 생겨 한 명이라도 많은 간부가 있어야 부대 운영이 수월하다. 물론 간부가 없어도 분대장급에게 지시하고 병사들만 보내도 작업은 된다. 하지만 작업을 하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대처가 힘들어지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지휘관에게 돌아온다. 지휘관 입장에서는 차라리 작업을 좀 늦어지는 게 낫지 괜히 간부 없이 작업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게 훨씬 골치 아파진다. 

뿐만 아니라 전문하사는 초임 단기하사 보다 숙달된 인원이기 때문에 주특기 및 작업에 능해 부대 적응기간도 필요 없다. 그래서 부대에서 전문하사를 하겠다고 하면 쌍수 들고 환영한다. 아니 전문하사를 시키려고 꼬시기도 한다. 하지만 병사 입장에서는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모진 군생활 이겨내고 병사들 사이에서 왕고가 되었는데 전문하사를 할 경우 간부 중에 막내가 되기 때문이다. 만렙 찍고 전직 퀘스트를 하고 나니 다시 레벨 1이 되는 기분이랄까? 물론 전직 퀘스트를 한 대가는 주어지지만 레벨이 오르려면 훨씬 많은 경험치를 얻어야 한다. 게다가 전역을 하게 될 경우 동원훈련을 2년 더 가야 한다. 따라서 군생활이 적성에 맞거나 직업군인 할 마음이 있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한다. 

전문하사가 정말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대장으로 부임하고 수연(가명)이는 초도 면담 간에 전문하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상병이었고 분대장을 달고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군생활을 해왔기에 전문하사를 한다면 포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그가 관심병사에 선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사회에 있을 때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손목에 상처를 낸 적이 있었으나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얕은 상처였다. 지금은 부모님과 사이도 괜찮고 군생활도 잘하고 있어서 병력 결산할 때마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자살 시도라는 이력 때문에 관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그가 전문하사를 한다고 했을 때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과거와 상관없이 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병장 달기 한 달 전에 사고가 터졌다. 


인근 부대에서 전문하사 한 명이 자살을 한 것이다. 같은 사단은 아니었지만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부대였다. 그 여파로 군단에서 전문하사 자격 판단을 강화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 후.

수연이의 전문하사 지원서를 보며 많은 고민이 들었다.

분명 수연이는 겉보기에 아무 이상 없이 군생활을 잘 해왔다. 그는 자신의 자살시도를 후회하고 자신의 흑역사라고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다시 자살시도를 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연이가 임관을 해도 될 만큼 간부로서의 자질이 있냐는 것을 따져봤을 때,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땐 문제가 없지만 서류상으로는 불합격이었다. 행보관 역시 같은 생각이었고 우리는 이 사항을 대대장님께 보고했다. 결국 우리가 판단하기 애매하여 책임 소지를 대대장님에게 넘긴 것이다. 대대장님 역시 고민을 하다가 임관을 시키지 말라는 결론을 내렸고 지원서는 제출을 했지만 임관을 하지 못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문하사 지원 결과 발표가 있던 날 수연이는 포대장 실을 찾아왔다.  


"포대장님. 혹시 제가 왜 떨어진 건지 알 수 있습니까?"


많은 고민이 들었다. 과연 뭐라고 해야 이 친구가 납득을 할 수 있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영부영 적당히 둘러댔으나 그 역시 전문하사는 정말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다 임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납득하지 못했다. 더 이상 어떻게 둘러대야 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좋겠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수연이의 임관을 막은 것은 나였기에 그러지 못했다. 상급부대의 지시가 있었지만 사실 상급부대는 중대급 부대에 있는 전문하사 임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말은 결국 중대장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대대장님께는 임관시키겠다고 적당히 보고만 하고 지휘관 추천서를 써줬다면 그는 임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나 하나 피본 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그러지 못했다. 나야 전역하면 그만이지만 군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행보관은 직격타가 될 것이고 어쩌면 대대장님이나 주임원사도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직접 설득시키기보단 행보관에게 넘겼다. 다행히 군생활 많은 행보관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줘서 수연이는 납득을 했고 무사히 전역했다. 


사실 수연이 같은 경우는 운이 나쁜 케이스지만 애초에 전문하사를 아무나 시키지는 않는다. 수연이 이후 유급지원병이 3명이 있었으나 그중 임관을 한 것은 1명뿐이었다. 나머지 2명은 자격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유급지원병을 취소시켰다. 아무리 간부가 부족하더라도 부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임관시키지 않아야 한다. 자격이 안 되는 간부 때문에 장 힘들어지는 것은 병사들이기 때문이다. 간부는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시켜서는 안 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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