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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ug 08. 2021

조기 전역이하고 싶어요

현재 우리나라는 징병제이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집되다 보니 군대에 가기 싫어 수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입대 전은 물론이고 입대 후에도 많은 수를 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않는 이상 일단 입대를 하면 조기 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군생활을 하기 싫다는 이유가 아니라 신체적으로 복무가 불가하거나 정신적으로 복무가 불가하다는 판정이 필요하다. 이런 판정 없이는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조기 전역을 할 수 없다. 

매년 조기 전역자는 6000명에 달한다(자료 출처 : 병무청) 


채호(가명)는 이등병 때부터 현역 복무 부적합을 받고 싶어 했다. 물론 대놓고 조기 전역시켜달라는 말은 못 했지만 그 의도가 충분히 보였다. 첫 면담부터 그런 의도를 보였다. 지휘관 입장에서 이런 친구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열심히 복무하는 친구들에게 피해 주는 것보다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조기 전역시키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많은 병사들을 상대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 면담을 몇 번 해보면 군생활 적응이 힘든 사람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구분이 간다. 그중에서 단순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복무 부적합 대상의 여부도 어느 정도 가늠은 된다. 그런데 채호는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을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조기 전역은 어림도 없을 정도로 멀쩡한 친구였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가 원하는 조치를 취해줄 수 없었고 나한테 말해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대대장님을 직접 찾아가 면담을 신청했다. 하지만 대대장님 역시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도움이 필요한 용사로 관리하면서 적응을 유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복무 기피가 강한 친구라 처음 신병 휴가를 나갈 때도 집이 부산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휴가 출발과 복귀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먼 거리를 부모님이 오게 만든 게 미안했는지 첫 휴가 복귀 후 면담을 하는데 앞으로 휴가 갈 때 부모님 없이 혼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본인이 아는 투스타와 중령이 있는데 두 분이 이번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한 의도는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어봤다. 


"투스타 분이랑 중령 분이 결혼하면 혹시 재혼하시는 거야?"


"아닙니다. 초혼입니다."


"와 두 분 다 그 나이에 초혼이시라고?"


"그런 걸로 아는데 나이 별로 안 많으십니다."


"두 분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


"투 스타 분은 30대 중반 정도이고 중령 분은 29살인가 그렇습니다."

"응?? 무슨 소리야? 혹시 투스타와 중령이 서든어택 계급이니?"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으로는 중령을 가장 빠르게 달아도 30대 후반이고 투스타는 50대는 돼야 한다. 30대 투스타와 20대 중령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중령을 가장 빨리 달아도 우리 대대장님이랑 나이가 비슷할 텐데 그분들은 정체가 뭐야??"


채호는 당황해서 머뭇머뭇거리더니 자신이 나이를 착각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결국 채호가 일병 말이 될 때까지 휴가 나갈 때마다 부모님은 계속 부대로 오셨다. 


채호는 그렇게 일병이 돼서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말을 했다. 부대에서 포탄사격 훈련을 했는데 그 후로 귀가 이상한 것 같다고 했다. 포탄사격은 일반 소총 사격보다 소음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격 후 이명 현상은 종종 있는 일이기에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상세한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근처에 있는 군 병원이 아닌 수도통합병원까지 가야 하는데 부대에서 바로 외진을 받을 수 있는 차가 없어 행정보급관이 데리고 갔다 와야 했다. 

바쁜 부대 일정 와중에 행정보급관이 왕복 6시간 거리의 수도통합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고 왔는데 그날 저녁에 포대장실에 와서 진단서를 건네주었다. 행정보급관 말로는 간이 검사를 했을 때는 상태가 안 좋아서 정밀 검사를 했는데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간이 검사는 직접 물어봐서 상태를 확인했다면 정밀 검사는 기계를 바탕으로 청력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즉, 말로 물어봤을 때의 청력 상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인데 정밀검사 결과는 매우 정상이라는 것이다. 군의관의 소견으로 종종 이런 친구들이 온다면서 부대에서 잘 지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날 채호를 불러 추궁을 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답변도 못하고 울기만 해서 일단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자신이 진짜 귀가 좀 안 좋은 긴 한데 검사받을 때 과장을 좀 했다고 실토했다. 

채호는 그 후에도 농구를 하다 발목을 다쳤다면서 군 병원에 갔다 왔다. 채호는 군 병원 소견과는 다르게 잘 걷지 못하겠다고 했다. 꾀병이라는 심증은 가지만 꾀병 취급하면 다른 애들한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진짜 아픈 친구들도 꾀병 취급이 우려되어 말을 잘 못하게 될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검사 결과와 다르게 진짜 아플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그 부상이 2달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아무래도 조기 전역은 어려우니 최대한 편하게 있는 것으로 전략을 바꾼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전역을 해 이 친구가 전역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나중에 들은 말로는 전역할 때까지 아프다고 하면서 힘든 일은 빼려고 했다고 한다. 

무사히 만기 전역했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아픈 척하면서 꾸역꾸역 군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관리해야 하는 간부들이나 그걸 지켜보는 다른 병사들까지 여러모로 서로에게 피곤한 군생활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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