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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un 11. 2018

첫 휴가

군생활 이야기

체력 편에서 말했듯이 사단 내규는 전입 한 달 후부터 휴가를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연대에서는 연대장님 명에 의해 특급전사가 될 때까지 휴가를 낼 수 없었다.     


물론 마음은 '얼른 특급전사를 따서 휴가를 가자'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체력도 부족했고 사격실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는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노려 볼만 했다. 


문제는 ‘평가’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른 특급전사를 따서 휴가 가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과 달리 연대 인사과장과 교육장교는 바빠서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어서인지 체력측정도 사격 측정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선배들한테 같은 조건으로 휴가제한을 했지만 나중에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풀어줬다고 한다. 우리도 그렇게 하려니 싶어서 기다렸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오히려 나온 이야기는 ‘소위들은 특급전사 따라고 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왜 아무 소식이 없냐’ ,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였다. 


정말 억울했다. 기회나 줬으면 떨어진 내 탓을 하겠지만 기회조차 받지 않았는데 무슨 소린가. 그리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에 체력단련 시간에 남들 공찰 때 열심히 뜀걸음 뛰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동기와 그 얘기를 하면서 ‘뭐 어쨌다고 우리한테만 지랄하냐’며 흉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11월이 되도록 휴가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새롭게 나온 지시사항이 ‘당직부관은 하는 것도 없는데 월요일 아침 당직 브리핑은 당직부관이 해라’였다.(사실 일은 당직부관이 다 했다) 

그러한 지시가 있고 첫 스타트를 내가 끊게 됐다. 

당시 사령이 연대 정작과장이었는데 박학다식한데 성격이 까다로워 초급장교들의 기피대상 2순위인 분이였다. 근무를 서면서 부관 업무 하랴 브리핑 준비하랴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첫 당직 브리핑을 그분이 아주 꼼꼼하게 봐주셨다. 브리핑 내용, 시선, 자세, 말투, 지시봉의 위치 등등 준비는 피곤했지만 그만큼 연습했기에 막상 실전에선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브리핑 후 연대장님 표정을 보고 잘했는지 못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별말 없이 넘어가 한 숨 돌렸다. 


1달 후 두 번째 당직 브리핑을 할 때는 처음에 힘들게 해서인지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당직 브리핑이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연대장님의 표정은 여전히 잘 했는지 못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연대장님의 첫마디를 듣고 오늘 내가 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대장님의 첫마디는 ‘오늘부터 소위들 휴가제한 해지’였다. 비록 특급전사는 못 달았지만 휴가를 내 노력으로 쟁취한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지만 상황보고가 끝날 때까지 열심히 표정관리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뛰어올라가 동기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 동기들은 뭐 때문에 해제됐는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대망의 첫 휴가에 들떠있었다. 그동안 주말에 잠깐 잠깐 봐서 여자친구에게 미안함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드디어 마음놓고 놀 수 있게 된 것이다. 휴가 갈 수 있는 날짜를 체크해서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았고 여자 친구와 통화하며 어디 놀러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 드디어 휴가 출발 하루 전 금요일이 되었다. 토, 일, 월 휴가를 내서 내일이면 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해야 할 업무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그러다 15시가 되어서 결산회의에 들어갔는데 마침 보병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에 자기네들 포탄 사격인데 관측장교를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렇다.      


관측장교는 바로 나다.(인사명령 상은 관측장교, 실보직은 인사장교였다)


아니? 갑자기? 그것도 하루 전날? 


머리가 아팠다. 휴가 티오와 대리 업무자를 생각했을 때 이번 달에는 절대 휴가 갈 날짜가 나오지 않았다. 정작과장님도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원 요청을 거절하기엔 휴가라는 것은 사유가 되지 않았다. 결산이 끝나고 한숨을 깊게 내쉬고 여자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도 처음엔 실망했지만 이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안 괜찮았다.     


결국 휴가를 쟁취한 것은 나였지만 첫 휴가는 동기들 중 가장 늦게 나갔다.      



정말 슬픈 건 이정도는 비일비재한 일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병사들의 첫 휴가처럼 이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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