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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Jun 13. 2018

병사가 사라졌다

군생활 이야기 : 행사지원 나간 썰

소위 때 지역축제에 동원된 적이 있었다. 당시 각 대대별 병사가 2명씩 지원되었고 인솔간부를 우리 대대에서 지원할 차례였다.(보통 여러 부대를 대표로 한 명의 간부가 지원될 경우  부대별로 돌아가면서 한다) 만만한 인사장교 직책에 짬도 안 되니 내 의사를 물어볼 것도 없이 나로 지정되어 있었다. 병사들만 인솔하면 된다고 하기에 별 불만 없이 하고 싶었으나 문제는 본 행사가 주말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초과근무는 이미 다 채운 지 오래였고 당직도 아닌데 주말에 내내 부대에 잡혀있으려니 정말 행사가 취소되길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본 행사 전 날인 금요일 예행연습에 참가했는데 우리가 맡은 일은 포졸 옷을 입고 행사장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하는 것은 2명뿐이어서 시간을 정하고 교대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인솔 책임만 맡고 있어서 행사에 지원될 필요까진 없었다. 별거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예행연습이 끝난 밤에 생겼다. 그날 밤,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당시 여자 친구는 대학생이었는데 맨날 일에 치여 잘 보지도 못 하고 연락도 잘 못 하던 게 그날 밤 터진 것이다. 

당장 가고 싶지만 차도 끊긴 시간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일은 대민지원을 나가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날 몸은 행사장에 있었지만 영혼은 거기에 없었다. 여자 친구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그렇다고 당장 찾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마음만 조급하여 여자 친구의 친구에게도 연락을 해보고 친한 친구한테 상담도 하면서 끝날 시간만 기다렸다. 

겨우겨우 견뎌내서 복귀를 하고 그 길로 바로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꽃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갔다. 다시 마주 보고 얘기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냉랭했고 우리의 사이는 거기서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들고 갔던 꽃은 여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냥 그대로 숙소에 가면 늪에 빠질 것만 같았다. 친구들을 불렀다.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면 기분이 좀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그날 술을 진탕 마시고 새벽에서야 숙소로 들어갔다. 잠깐 자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아침에 출근을 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취해 뭘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점심까지는 버텼는데 점심을 먹고도 술이 덜 깨 타고 갔던 부대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1시간쯤 잤을까? 


갑자기 다급하게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앞에는 데리고 갔던 다른 대대 병사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했다. 


“인사장교님 지금 근무교대해야 되는 1대대 병사 한 명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입니다.”     


그 순간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던 알코올 성분이 한순간 증발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전우조를 하라고 강조했으나 잠든 사이 다른 대대 병사 한 명이 따로 놀다가 소재가 불분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술이 덜 깨 잠든 내 탓도 있기에 왜 전우조를 안 했냐고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일단 찾으러 나섰다. 설마 탈영을 했을까 싶었다. 누가 포졸 복장으로 탈영을 하겠는가. 어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행사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근데 보이지 않았다. 


두 바퀴 째 돌고 나서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탈영이라도 했다면 문제가 커진다. 일단 인솔을 제대로 못 한 책임이 크지만 제때 보고를 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일단 가장 만만한 당직부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1년 선임이었는데 행실이 약간 양아치 같아서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선임은 대수롭지 않게 그냥 잘 찾아보라고만 말했다. 아마 당직사령한테도 보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보고를 했으니 정말로 탈영했을 경우 보고 지연에 대한 책임은 넘어갔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가보고 이곳저곳 가보다가 혹시 정말 탈영을 했을 경우 군복을 입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옷을 갈아입었던 행사장 천막으로 들어갔다. 행사용 비품들이 잔뜩 쌓여있어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갔는데 군복은 그대로 있었다. 안 가본 데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비품이 잔뜩 쌓인 테이블 밑으로 삐져나온 발이 하나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병사가 테이블 밑 구석에 아주 잘 짱 박혀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아까 여기를 찾아보긴 했으나 비품들에 가려 미쳐 못 본 것이다. 안도감이 들었으나 일단 그 녀석을 깨웠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병사한테 큰소리를 냈던 것 같다. 그것도 다른 부대 병사한테 말이다. 

아무튼 별일 없이 상황은 종료되었고 그날 저녁 지급받은 식권으로 밥을 먹으면서 가볍게 막걸리 한잔씩 하며 해프닝 정도로 웃어넘겼다.

      

근데 참 재밌는 게 그 병사가 나중에 우리 대대로 전입 오게 된다.     

여기있는 5명 중 한 명 처럼 맘먹고 짱박히면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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